2015년은 금융인들에게 험난한 한 해였다. 3000명이 넘는 은행원들이 직장을 떠나야 했고, ‘우간다보다 못한 경쟁력’, ‘성과가 낮아도 억대 연봉을 받는 베짱이 집단’으로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러나 해가 바뀌어도 금융인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요 몇 년 어느 때 금융이 어려움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적이 있을까만은, 올해 금융권을 둘러싼 환경은 작년에 비해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구조조정에 따른 충당금 부담, 건전성 규제 강화 등 몸을 더욱 웅크리게 할 요인들이 산재해 있다. 은행들이 앞다투어 추가적 채널 축소와 인력감축 계획을 내놓고 있는 것도 닥쳐올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뿐 아니다. IT의 눈부신 발달과 핀테크의 시장 침투를 보고 있자면 은행원은 마치 멸종이 예고된 존재들처럼 느껴진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때 은행의 상징이던 텔러가 이제 ‘낡은 시대의 것‘이 되어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저렴한 수수료로 자산관리를 대행할 로보 어드바이저, 은행 창구를 대체할 무인 키오스크도 곧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올 예정이다.
축소 일변도의 경영, 기술 발달이 업의 룰과 풍경이 바꾸는 상황 속에서 ‘사람’의 이야기를 찾기 힘든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금융에서 ‘사람’의 역할은 사라져 가는 것일까. 은행 소비자금융 이익의 40%가 핀테크에 잠식당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예측을 내놓은 맥킨지는 변화의 파고에 맞설 은행의 생존 해법으로 ‘고객 중심 혁신’과 ‘기술 혁신’을 주문했다. 그러나 결국 두 해법의 시작점은 같다. 바로 은행 구성원들의 생각하고 일하는 방식의 변화로부터 혁신의 동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객에 대한 이해는 구성원들의 암묵지로 공유되는 은행의 중요한 무형자산이다. 유럽금융경영자협회(EFMA)는 은행 지점망이 향후 종합 서비스 허브와 지역 및 분야별 RM으로 대체될 것으로 예측하면서, 은행업 고객중심 혁신의 성공요인으로 자문 및 고객관계관리 역량을 갖춘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를 꼽았다. 또한,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글로벌 은행들 사이에서도 인적 투자 여부에 따라 최우수 은행의 영업인력은 중간값의 2배, 최하위 은행의 10배에 달하는 고객을 확보하는 압도적 차이를 보였다. 결국 고객중심 혁신의 성패는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사람’의 역량에 달려 있다.
또한, 은행의 기술 혁신에는 기술을 아는 금융 인재, 금융을 아는 기술 인재가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확보해도 어떻게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에 대한 선견지명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기술에 대해 구성원들이 반감을 가지거나 이해도가 낮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도 무용지물이다. 그리고 이 모두는 역시 ‘사람’의 문제다.
새로운 유형의 인재를 기르고 관행을 벗어나 새로운 문화를 구축하는 것은 투자와 인내심을 요하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는 생존을 위한 불가피하고 유일한 선택이다. 이미 글로벌 은행들은 유통, 소비재 등 고객과 밀접한 산업이나 실리콘밸리의 기술기업들로부터 주요 임원을 비롯한 인재들을 수혈하며 새로운 인력 포트폴리오를 꾸리기 시작했다. 이렇듯 미래 핵심역량에 대한 고려 없이 단견적 축소경영에 매몰되어서는 장기적 성장 잠재력의 확보는 요원한 일이다.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사람’에 대해 고민할 때다. 경영진 업무의 1순위에 ‘사람’을 얻고 키우는 문제를 두고, 구성원들은 자구적 혁신을 통한 ‘사람’의 차별화를 도모할 일이다. 위기를 견디고 헤쳐 나가는 힘, 그리고 위기 후에 올 기회를 한국 금융의 것으로 만들 혁신 모두가 오직 사람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재은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