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권 은행이 한국 사업에서 철수하거나 사업 규모를 줄이는 동안, 아시아계 은행이 국내 시장에서 보폭을 넓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국과 인도의 상위권 은행들이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무역금융에 큰 공을 들이는 모양새다. 아시아 국가들과 한국 간 무역 협정이 체결된데다, 확대하고 있는 해외 진출의 주요 거점으로 우리나라를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 최대의 국영 상업은행인 스테이트뱅크오브인디아(SBI)는 13일 서울지점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갔다.
한국인 5명 인도인 2명으로 구성된 SBI 서울지점은 인도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는 한국 기업과 한국에 상주 중인 인도 업체를 상대로 기업금융과 무역금융을 제공할 계획이다. SBI가 한국 시장에 진출한 이유는 인도와 한국 간 교류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 상무부에 따르면 인도의 한국 교역 비율은 지난 2011~2012년 2.16%에서 2014~2015년 2.39%로 증가하는 추세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한국 기업이 인도에 들어와 활동하는 것을 적극 장려하고 있어 양국 간 공조 분위기가 어느때 보다 좋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비 스리람 SBI 부행장이 스테이트뱅크오브인디아(SBI) 서울 지점 개점식에 참석한 기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SBI
비 스리람 SBI 부행장은 "SBI는 해외 시장에서 인도 기업을 지원하고 나아가 글로벌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지원했던 폭넓은 경험이 있다"며 "한국에서도 비즈니스 관계에 있어서 상당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도 은행과 더불어 설립 인가를 얻는 중국 10위권 광대은행도 한국 시장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양국 간의 무역량이 증가할 것을 염두에 둔 행보로 해석된다.
광대은행이 활동을 시작하면 국내 중국계 은행은 총 6개로 외국계 은행 중 최다 지점을 보유하게 된다.
인도네시아 은행인 뱅크네가라인도네시아(BNI)도 한국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지난해 4월 금융위에 예비인가 신청을 냈던 BNI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금융당국의 상호 호혜주의 원칙에 맞춰 신한은행의 뱅크메트로익스프레스(BME) 인수 허가를 조건으로 국내 영업권을 따낸 바 있다.
BNI는 주한 인도네시아 기업이나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기업을 상대로 기업금융 영업이나 국내 인도네시아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송금 영업을 할 전망이다.
이처럼 아시아권 은행들이 한국에 대거 진출하는 동안 영미권 은행들은 철수하거나 지점을 줄이는 등 힘이 빠지는 모양새다.
영국계인 한국SC금융지주는 수익성이 저하된 탓에 지난해 SC저축은행과 SC캐피탈을 매각하면서 한국SC은행에 합병됐다. 한국SC증권도 SC은행의 자회사로 편입돼 금융지주사가 완전히 해체됐다. 이후 금융지주 해체에 이어 인력 구조조정까지 강행하자 SC은행 '한국 철수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미국계도 상황이 좋지 않다. 한국씨티은행은 최근 자회사 한국씨티캐피탈을 아프로서비스그룹에 넘기는 과정에서 엄청난 내홍을 겪고 있다. 씨티캐피탈 노조로부터 일방적 자산매각, 고액배당 및 해외용역비 송금, 국내사업철수 등 의혹을 사고 있다.
게다가 철수설 등에 대한 우려로 내부 분위기도 침체되고 있다. 최근 씨티은행 노조가 직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의식동향조사를 보면 85%가 "수년 내에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라고 답해 악화된 내부 사정을 가늠케 한다.
영국 최대 국영은행인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은행은 경영난을 이기고 못하고 지난해 초 한국시장 철수를 결정한 이후 후속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 2013년에는 영국계 HSBC가 한국 소매금융 부문에서 전면 철수하기도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영미권 은행의 한국 활동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반면 중국 등 아시아권 은행들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며 "당분간 이런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진 기자 dda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