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는 TV나 냉장고 같은 단골 손님 외에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했다. 자율주행 자동차, 로봇, 드론 등 전통적인 가전 영역을 벗어난 제품들이 그 주인공이다. 미래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많은 신제품이 있었지만, 그 중 단연 눈길을 끈 것은 중국 드론업체 이항이 선보인 '184'다. 사람이 탈 수 있는 세계 최초의 드론인 '184'는 미리 선택한 경로를 따라 스스로 주행 할 수 있다. 100킬로그램(kg)까지 태울 수 있으며 최대 시속 100킬로미터(Km)로 약 20분간 운행할 수 있다. 이항에 따르면 184는 올해 중 시판 예정이며 가격은 20만~30만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군사용 목적으로 개발돼 항공촬영, 무인배송, 농약살포 등 상업적 용도로 활용되고 있는 드론이 교통수단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동시에 전세계 산업계에서 패스트 팔로워에 불과했던 중국이 퍼스트 무버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인 것이기도 하다.
중국의 드론 제조업체 이항은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2016'에서 세계 최초로 사람을 태울 수 있는 드론 '184'를 공개했다. 사진/뉴시스·AP
미래의 먹거리 산업 중 하나로 주목받는 드론 시장에서 중국의 성장세가 무섭다. 드론은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소형 무인기로 큰 의미에서는 무인항공기 전체를 가르키기도 한다. 무선전파로 조종을 할 수도 있는 드론은 카메라, 센서, 통신시스템 등을 탑재하고 있다. 군사 용도로 처음 생겨났지만 최근에는 고공 촬영과 배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저렴한 키덜트 제품으로도 재탄생 돼 개인도 부담없이 드론을 구매하는 시대가 열렸다.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글로벌 드론 시장 규모는 71억달러로 매년 6.9%씩 성장해 2022년에는 113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생산 비용 하락에 시장 저변 확대
아직까지는 군사용 수요가 더 높은 까닭에 미국이 전체 시장의 60% 가량을 점유하고 있지만 상업용 시장을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이 신흥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 방위산업 전문 컨설팅 기업인 틸그룹은 현재 전체 드론 시장의 1%에 불과한 상업용 수요가 2023년에는 7%대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전세계 상업용 드론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 드론 업체의 영향력도 점차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의 시장조사기관 이관즈쿠는 현재 20억위안 수준의 중국 상업용 드론 시장 규모가 2018년에는 110억위안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중국에서 드론이 상업적 용도로 본격적으로 활용된 것은 2011년 이후다. 제조 비용의 하락이 가속화되고 스마트폰 기술 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시장의 성장을 부채질했다고 차이신은 설명했다. 실제로 드론의 핵심 부품 중 하나인 GPS 모듈은 불과 몇 년 전만해도 400달러에 달했지만 지금은 4달러까지 가격이 떨어졌다. 리즈위앤 이항테크놀로지 디렉터도 "과거의 드론은 크고 비싼 장비에 비해 퍼포먼스가 약해 활용 영역이 제한적이었지만, 최근 몇 년간 센서나 다른 주요 장비 가격이 확연히 떨어지고 공급 사슬이 개선되며 사용 범위도 넓어졌다"고 증언했다. 그는 "장비의 사용도 예전보다 훨씬 간편해 졌다"며 드론이 널리 보급될 수 있었던 배경을 부연했다.
여기에 중국 내 인건비가 계속해 상승하고 있는 점도 드론의 활용도를 넓혔다.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드론을 사용해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의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의 최근 3년간 평균 임금 상승률은 10%에 달했다.
드론계 애플 DJI 선전에 샤오미도 눈독
400여 개의 기업이 경쟁하고 있는 중국 상업용 드론 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곳은 드론계의 애플이라 불리는 DJI다. 어려서부터 무선조종(RC) 장난감과 로봇을 좋아했던 왕타오(영문명 프랭크 왕)가 홍콩과학기술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이수하던 중 학내 벤처로 탄생한 회사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로도 조종이 가능한 1000달러 미만의 드론을 만드는 것이 첫 목표였던 DJI는 지금까지 11개 제품을 출시하며 세계 최고의 드론 제조업체로 발돋움했다.
그 중 2013년 출시한 항공촬영 드론 '팬텀1'은 DJI의 입지는 물론 드론 산업계의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온 제품이다. 부품 조립 없이 상자에서 꺼내 그대로 날릴 수 있으며, 4개의 회전날개를 다는 등 어린아이도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가격도 대폭 낮춰 전문가 중심이었던 시장의 저변을 넓혔다. 2010년 50만달러에 그쳤던 DJI의 매출은 2013년 1억2900만달러로 수직 상승했다. 지난해에는 드론 업계 최초로 10억달러 매출을 달성했을 것으로 기대됐다. 2011년 기준 90명에 불과했던 직원 수도 2014년 2800여 명으로 늘었다. 폭발적인 성장세에 투자도 줄을 잇는다. 페이스북, 드롭박스 등의 초기 투자자였던 엑셀파트너스로부터 지난해 5월 7500만달러를 조달하는 등 지금까지 총 2차례의 펀딩을 통해 1억500만달러를 유치했다.
세계 최대 상업용 드론 제조업체 DJI가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2016'에서 신제품 '팬텀3 4K'를 공개했다. 사진/뉴시스·신화
상업용 드론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은 이 외에도 많다. 세계 최초의 사람을 태울 수 있는 드론을 개발해 주목받은 이항테크놀로지는 설립 1년 6개월만에 기업 가치가 100배나 증가한 다크호스다. 자동비행모드, 추적비행모드 등을 탑재한 '고스트'로 기술력을 인정받은 이항은 창립 6개월만인 2014년 말 GGV캐피탈로부터 1000만달러를 투자받았다. 미국 크라우드펀딩사이트 인디고에서는 두 달만에 목표액의 8배에 달하는 85만달러를 유치하기도 했다. 2007년 마이크로소프트(MS) 출신 엔지니어들이 만든 X에어크래프트는 농약 살포를 비롯한 농업용 드론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1kg 정도의 짐을 싣고 100km나 떨어진 물류 허브들을 왕복할 수 있는 드론을 개발하며 관심 분야를 배송으로도 확장했다. 이를 발판으로 중국의 벤처캐피탈사인 청웨이벤처스에서 2000만달러를 지원받기도 했다.
빠르게 성장하는 상업용 드론 시장은 기존 IT 기업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알리바바가 타오바오몰에서, 바이두가 산하 배달앱에서 드론을 통한 배송 시험을 한 것에서 더 나아가 텐센트와 샤오미는 드론을 자체 개발키로 했다. 텐센트는 CES2016에서 중국계 드론 개발업체 제로테크와 공동 개발한 '윙'을 공개하며 드론 시장 진출을 알렸다. 스마트폰으로 조작이 가능한 드론으로 찍은 영상을 텐센트의 모바일 메신저인 '위챗'을 통해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다. 샤오미는 자회사 '페이미전자'를 통해 드론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국가지식산권국에 4개의 발명특허를 포함해 총 24개의 드론 관련 특허를 신청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중국 언론에 따르면 샤오미 드론은 연내 출시될 예정이다.
유망 산업으로 전략적 지원…안전 규제도 강화
중국이 상업용 드론의 메카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정부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작년 3월 국무원에서 발표한 '중국제조2025' 전략에서는 우주항공 장비를 10대 중점 육성 산업 중 하나로 꼽았다. 드론 역시 그 중 일부로 본 것인데, 전문가들은 중국의 드론 산업에 거대한 투자기회가 숨어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앞서 2014년 말 중국과학원 산하 IT 기술업체인 중커보양과 허난성에 '국제 무인기 항공문화 마을'을 건설하고, 이듬해 봄 '제1회 국제무인기 과학발전 고급 포럼'과 '전세계 무인기 표준화 대회'를 연이어 개최한 점 역시 드론 산업을 육성하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중국 정부는 관련 규제 정비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중국민항국(CAAC)이 발표한 '민용 무인조종항공기시스템 조종사관리 잠정시행규정'에 따르면 116kg 미만의 무인기와 4600㎥ 미만의 비행선은 모두 중국항공기보유자 및 조종사 협회(AOPA)가 관리한다. 또한 '민용무인기 항공교통 관리방법'은 민용 항공활동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몇 가지 규제 사항을 마련했는데, 무인기 사용을 위해서는 당국에 미리 비행 예정 구역을 알리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지역 관리국의 비준을 받지 않은 무인기는 비행할 수 없으며, 임시 신청된 무인기라 해도 민간 항공기의 운행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항공 안전을 강화하고자 중국 정부는 최근 1.5kg 이상의 드론 비행을 위해서는 별도의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는 규정을 마련했다. 자동차 면허를 따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론 필기 시험과 모의 비행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이에 베이징, 상하이 등 일부 대도시에서는 드론 조종사 양성 학교가 등장했다. 중국민항국 추산으로 2018년까지 드론 조종사 수요는 3만명에 이를 전망이지만 현재 면허 소지자는 700명에 불과해 드론 조종사가 유망 직업으로 떠오른 까닭이다. 차이나데일리에 따르면 드론 학교 수강료는 10일 기준 8000위안이며, 면허를 취득할 경우 매달 평균 2만위안을 벌 수 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