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할 시간만 줬더라도… 2013년 상황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때는 준비할 시간이라도 있었으니까요."
개성공단 A입주기업 대표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지난 11일 오후 11시05분에 개성공단을 빠져나온 터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개성공단 내 섬유기업 대표인 그는 철수할 시간을 확보했던 지난 2013년과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3년 전(2013년)에는 철수할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원재료로 제품을 모두 만들고 출하까지 한 뒤 개성공단을 빠져나왔다"며 "그때는 공장에 원재료 일부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A기업은 개성공단 전면중단에 따라 20억원의 피해규모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대표는 "어제 개성공단을 빠져나오면서 공장 문만 잠그고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며 "공장 내에 마지막 포장단계를 앞둔 완제품과 반제품이 그대로 있다"고 침통해했다. 그는 2013년과 비교했을 때 피해규모는 두 배 이상에 달할 것으로 봤다.
B입주기업 대표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는 "토요일에 철수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오늘(12일) 제품을 출하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며 "갑자기 떠밀리듯 나오면서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그나마 우리는 개성공단 이외에 공장이 있지만 입주기업 중 30~40%는 공단 내에만 공장이 있어 상황은 더 심각하다"며 "지금까지 몇년간 쌓아놓은 경쟁력(협력업체와의 관계, 숙련된 노동)이 다 물거품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현재 입주기업들의 피해규모를 추산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은 입주기업의 피해규모와 관련해 "직접 설비투자와 원부자재 손실 등을 합친 것이 피해액인데 이는 현재로서는 추산하기 어렵다"면서 "가장 큰 손실은 수년 동안 함께 했던 숙련된 인력을 잃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당시 정부는 162일간 공단 폐쇄로 인한 피해규모를 모두 1조566억원으로 추산해 발표했지만, 이 역시 정확한 피해규모는 아니라는 게 협회 측 입장이다. 정 회장은 "당시(2013년) 기업들로부터 피해 실태조사서를 받았는데 일부 기업은 제출도 안했다"고 전했다.
한편 협회는 피해 규모를 추정할 수 있도록 기업과 당국, 회계법인으로 구성된 피해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실질적인 피해 보상을 요구하겠다는 방침이다.
1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개성공단기업협회 비상총회에 참석한 입주자 대표들이 정기섭 회장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임효정 기자 em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