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장애가 있는 아이의 캠프 참석 때문에 핀란드에 간 여자 상민(전도연 분)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남자 기홍(공유 분)을 만난다. 처음에는 담배에 붙일 불을 빌리기 위해 말을 건 상민은 캠프장에 간 아이가 걱정돼 처음 본 기홍에게 부탁을 한다. 두 사람은 약 네 시간 동안 서로의 아이들이 있는 캠프까지 달려간다.
영화 '남과 여' 포스터. 사진/쇼박스
3~4시간이나 같이 있었는데, 적막만 흐른다. 기홍은 말수가 적다. 적막이 싫어 질문을 건네는데도 단답형으로만 답한다. 캠프에 갔다 돌아오는 길 두 남녀는 폭설을 만난다. 서로 다른 방에서 잠을 청한 다음날 아침 두 사람은 자연스레 산책길에 오른다. 산책길 도중 우연히 발견한 사우나에서 두 남녀는 어쩐지 모를 이끌림에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8개월이 지난다. 상민이 남산 근처에서 일한다는 사실만 알고 있는 기홍은 상민을 찾아낸다. 상민은 기홍의 방문이 반갑다. 어떤 말에도 애매하게 답하는 기홍은 이상하게도 상민에게만큼은 적극적이다. 무심한 남편과 장애가 있는 아들에게 지친 상민은 자신을 여자로 보는 기홍에게 점점 빠져든다. 기홍을 만나면 숨막히는 일상에서 벗어나, 핀란드의 꿈 같았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 해서다. 사고처럼 두 사람에게 찾아온 사랑은 현실을 극복할 수 있을까.
영화 '남과 여' 공유·전도연 스틸컷. 사진/쇼박스
'남과 여'는 '여자, 정혜', '멋진 하루',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등을 연출한 이윤기 감독의 신작이다. 전작에서 감각적 연출력을 장기로 발휘했던 이 감독은 핀란드 설원 위 풍광과 서울의 빽빽한 빌딩 숲을 아름답게 펼쳐낸다. 긴 대사 대신 표정과 적막을 담은 여백으로 두 남녀의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한다. '남과 여'는 주인공의 남편 혹은 아내에게 결격사유가 있다는 식의, 불륜 소재 작품의 전형성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감독은 '남과 여'를 통해 비록 가정이 있는 두 남녀이지만 진실한 사랑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는게 좋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남과 여'에서는 오랜만에 예쁘게 화장을 한 전도연을 볼 수 있다. 사랑에 대한 연기에 있어서만큼 자신이 최고라는 듯 커다란 감정의 진폭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조금씩 기홍에게 스며드는 상민의 감정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돈을 받으러 다니는 '멋진 하루', 가족과 생이별을 경험한 '집으로 가는 길', 절망에 휩싸인 '무뢰한' 등과 또 다른 지점의 전도연이 보인다. 특히 전도연의 간드러진 목소리는 멜로 영화에 더없이 적합해 보인다. 전도연을 만난 공유는 진심을 다해 영화에 몰입한 듯한 모습이다. 연기라는 게 의식되지 않을 정도로 진지하게 진실된 사랑을 선보인다. 별 다른 대사 없이 감정을 드러내는 기홍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다소 비겁해 보일 수 있는 마지막 선택마저도 절절해 보인다. 연기자로서 한층 더 성장한 공유를 볼 수 있다.
영화의 비주얼은 아름답고, 스토리는 매끄럽게 흘러간다. 배우진의 연기력이 출중하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새롭다. 권력을 고발하는 영화, 액션활극이 몰아치는 요즘 한국 영화계의 공기를 환기시키기 충분한, 진한 멜로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