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타임즈(FT)는 지난달 29일, 세계 커피업계의 선두주자 스타벅스가 드디어 커피의 본고장 이탈리아에 진출한다는 계획을 알렸다. 스타벅스는 이탈리아 현지 개발업체인 페르사치와 손잡고 내년 초 밀라노에 첫 매장을 열어 이탈리아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에스프레소의 고향인 이탈리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커피 시장이다. 연간 시장 규모만 100억달러에 이른다. 커피 원두의 최대 수입국이며, 1인당 연간 4.9㎏의 커피를 소비한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그동안 스타벅스가 '넘보지 못할 시장'이었다. 전 세계 총 68개국에 매장을 연 스타벅스가 이탈리아 진출에 머뭇거렸던 까닭은 단순하다. '미국식' 스타벅스 커피가 자부심 높은 커피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쉽게 받아들여질 리 없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가 세계 커피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4년 7월 베트남에 진출한 스타벅스의 하노이 매장 모습. 사진/뉴시스·신화
글로벌 커피 시장에서 성공신화를 쓰고 있는 스타벅스의 이탈리아 진출은 계획된 행보다. 스타벅스는 지난 20년간 에스프레소에 우유나 물을 타서 큰 컵에 담아 마시는 '스타벅스식' 커피를 전 세계에 전파해 왔다.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최고경영자(CEO)는 1983년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마셨던 에스프레소에서 영감을 받아 스타벅스식 커피를 개발했다. 30년 동안 스타벅스의 이탈리아 진출을 꿈꿔온 그는 이탈리아 시장에서 겸허한 자세를 견지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태생 커피 메이저가 과연 에스프레소 종주국 이탈리아의 텃세를 극복할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이탈리아를 노리는 스타벅스는 글로벌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전 세계 68개국에 진출해 2만3000개 이상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1677개 매장을 새로 열었다. 외형적 확장과 더불어 매출 실적 또한 눈부시다. 지난해 매출액은 192억달러로 사상 최대였다. 전년대비로는 16.5% 증가했다. 전 세계 커피 시장의 성장률은 2%에 불과하지만 스타벅스의 매출액은 지난 5년간 연평균 12%이상 증가했다. 주식시장에서도 스타벅스의 주가는 1년 만에 48%나 급등했다.
스타벅스는 특히 중국 시장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두고 있다. 지난 1999년 중국에 첫 매장을 연 이래 현재는 99개의 도시에서 1900여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2015년 한해동안에만 850개의 매장을 열었고, 오는 2019년까지 전체 매장을 3500개로 늘릴 계획이다. 이러한 스타벅스의 질주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차 문화에 기반을 둔 중국에서는 커피의 인기가 높지 않은 편이기 때문이다.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0.083㎏으로 4㎏ 이상인 미국과 유럽에 비해 매우 적다. 게다가 중국 시장은 까다롭고 변덕스러운 정책과 뿌리 깊은 전통문화 때문에 많은 서구 기업들이 실패를 맛봤던 곳이다. 하지만 스타벅스는 다양하고 혁신적인 전략으로 중국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나는 명품 커피를 마시는 엣지있는 중국인'
중국에서 스타벅스의 성공요인은 무엇일까. 포브스는 ▲적절한 시장 진입 타이밍 ▲커피의 사회적 지위 상승 ▲편리한 장소의 제공 ▲탁월한 현지화 전략 등이 스타벅스가 중국에서 성공한 이유라고 분석했다. 포브스는 특히 스타벅스가 중국에서 새로운 '커피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20여년 전 스타벅스는 적절한 타이밍에 중국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참신한 브랜드 이미지로 당시 새롭게 떠오르고 있던 중국 중산층과 화이트칼라를 유혹했다. 스타벅스 커피는 중산층의 취향에 맞았고 그들은 스타벅스의 충성스러운 소비자가 되었다. 당시 15%에 불과했던 중국 중산층은 현재 중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성장 잠재력도 큰 집단이다. 맥킨지는 2020년에는 중국 인구의 절반이 중산층에 해당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산층의 확대·번영과 함께 스타벅스는 중국 시장에서 성장해 왔다.
스타벅스는 중국인에게 커피와 함께 사회적 지위를 팔았다. 한 잔에 5달러가 넘는 스타벅스 커피는 중국인에게 값비싼 기호식품이지만 커피를 구매하면서 사회적 지위를 덤으로 얻었다. 중국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현대적이고 세련되며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커피는 들고 다니며 보여주는 '전시품'으로 사용됐고, 명품을 선호하는 중국인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했다.
스타벅스는 매장을 꾸미는 데 공을 들였다. 모던한 인테리어로 장식된 실내, 어두운 조명 아래 흐르는 잔잔한 음악, 커피향이 진동하는 스타벅스 매장은 중국인이 좋아하는 장소가 됐다. 스타벅스 매장은 정신없는 도시 속에서 벗어나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편안한 공간으로 각광받았다. 특히 다른 상점에는 없는 전기 아웃렛, 무료 인터넷, 깨끗한 화장실 시설을 갖춰 중국인들을 불러들였다. 매장 위치도 전략적으로 선정했다. 쇼핑몰 입구 등 눈에 잘 띄는 곳에 입점해 스타벅스 매장의 존재를 지역에 각인시켰다. 이후 스타벅스 매장의 존재 자체가 잘나가는 상권의 보증수표가 됐으며 다른 유명 브랜드들이 뒤따라 인접한 곳에 매장을 열었다.
포브스는 가장 큰 성공요인으로 스타벅스의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강조했다. 스타벅스는 고유의 브랜드 이미지를 포기하지 않았지만 유연화 전략으로 서구 문화에 거부감을 느끼는 중국인을 수용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중국인의 입맛을 반영한 다양한 메뉴를 개발했는데 '그린티 프라푸치노', '레드빈 머핀' 등은 큰 인기를 얻었다. 무엇보다도 스타벅스는 차를 보편적으로 마시는 사람들에게 커피 소비를 강요하지 않았다. 커피에 낯선 소비자들에게 커피 샘플 제공, 커피 시음회, 미니 커피강좌 등을 통해 조심스럽지만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스타벅스는 눈앞의 매출 증가에 집중하기 보다는 중국에 커피 문화를 심기 위해 앞장섰다. 스타벅스 커피는 문화적으로 중국인의 생활에 스며들었다. 전략이 통한 것이다. 최근 중국 커피 소비량은 매년 18%씩 증가하고 있다. 중국은 10년 이내 세계 최대 커피시장으로 부상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CEO의 손길이 전 매장에…전 직원이 파트너
스타벅스는 '밖'에서만 성공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스타벅스는 '안살림'을 맡고 있는 직원들을 최고로 우대하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슐츠 회장은 시간제 직원을 포함한 전 직원을 고용인이 아닌 '파트너'로 대우한다. 한국 스타벅스의 전 직원은 정규직이다. 미국에선 전 직원에게 스톡옵션을 제공하고 학비도 지급한다. 중국 직원들에게는 주거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직원들은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강력한 충성심을 보인다. 스타벅스 직원의 연간 평균 이직률은 60~70%로 언뜻 높아 보이지만, 업계 평균에는 훨씬 못 미친다. 커피빈 등 다른 경쟁사는 150~400% 수준이다.
스타벅스의 직원 우대 정책은 슐츠 회장의 신념에서 나왔다. 그는 스타벅스의 탄생을 이끈 주인공이지만 2000년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2008년 복귀했다. 포춘지는 2011년 슐츠 회장을 올해의 기업인으로 선정했다. 스타벅스의 최근 질주는 슐츠 회장의 복귀 시점부터 시작되었다. 복귀 직후 직원의 전면 재교육을 위해 미국 전역 스타벅스 매장의 문을 하루 동안 일제히 닫았다. 70억원의 매출을 포기하면서 직원과의 관계 회복에 힘을 쏟은 것이다. 2007년을 전후해 경기침체와 강력한 경쟁사들의 등장으로 주가가 40%로 폭락하는 등 위기에 빠진 스타벅스에 혁신을 가져오기 위한 일종의 충격요법이었다.
스타벅스는 내가 좋아하는 커피 종류를 알고 있다
슐츠 회장의 경영은 IT기술의 활용 전략 측면에서도 빛났다. 커피의 문화적 가치를 창조한 스타벅스는 IT혁신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스타벅스 모바일 앱은 결제시장의 강자다. 2013년 미국 전체 스마트폰 결제액 16억달러 중 90%는 스타벅스 커피 결제액이었다. 스타벅스는 모바일 거래를 확대하기 위해 충전식 적립카드를 앱에 적용하고 무료 커피 등 인센티브를 제공해 소비자를 끌었다. 또한 커피를 온라인에서 주문해 오프라인(매장)에서 받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실시해 매장 주문 절차를 생략하고 있다. 지난해 스타벅스 총 결제 건수 중 18%가 모바일 결제로 이뤄졌으며 이는 전년대비 50% 성장한 수치다. 스타벅스의 기술 혁신은 고객 서비스 향상만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스타벅스는 온라인 결제 기록을 수집해 고객의 구매 내역과 선호 정보를 확보한다. 이러한 데이터를 분석·활용해 특정 소비자의 취향에 맞는 모바일 푸시 광고를 송출하고 고객은 다시 스타벅스 찾는 재구매 사이클을 만든다.
스타벅스의 진보는 끝이 없다. 스타벅스는 올해 하반기에 뉴욕과 시애틀을 시작으로 배달서비스를 실시하기로 했다.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사무실에는 온라인으로 결제한 커피가 배달된다. 본사가 위치한 시애틀에서는 현지 배송 업체를 이용해 가정에도 배달해준다. 커피를 배달시키려면 스타벅스 앱으로 주문·결제해야 한다. 온라인 결제 강화를 위한 전략이다.
꾀 많은 스타벅스, 성공적인 행보는 어디까지
스타벅스는 저가 커피의 진입으로 치열해진 커피 시장에서 차별화된 커피를 내세웠다. '스타벅스 리저브'는 한 잔에 만원이 넘는 고급 커피를 판매하는 프리미엄 커피 매장이다. 세계 최고 품질의 원두만을 사용하며 고객의 커피 취향에 따라 바리스타가 직접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커피 매니아들이 몰려 리저브 매장은 성황을 이루고 있다. 스타벅스는 한국에만 51개의 리저브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인도에 이어 곧 아프리카에 진출할 계획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질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탈리아 시장 진출과 관련해 포브스는 스타벅스가 풀어야 할 과제를 설명했다. 전 국민이 커피 매니아인 이탈리아의 커피 문화는 독특하다. 이탈리아인들은 골목의 작은 카페에서 숙련된 바리스타가 뽑아내는 에스프레소를 1~2달러씩 내고 수시로 마신다. 그런데 희석된 '스타벅스식' 커피는 훨씬 비싸다. 세계를 재패한 스타벅스식 커피가 이탈리아인의 생활속 커피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포브스는 "시럽을 넣은 달달한 커피는 어린이 음료"라고 비웃는 이탈리아인을 스타벅스가 어떻게 사로잡을지 두고 볼 일이라며 스타벅스의 행보를 지켜볼 것임을 전했다.
신지선 토마토CSR연구소 연구위원 jise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