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국제 유가 하락으로 인해 건설사 수주시장의 판도가 변화하고 있다. 그동안 수주 1번지 중동에서 발주하는 석유화학플랜트가 주를 이뤘지만, 유가 하락으로 중동 국가들의 재정 상태가 악화되면서 해외수주 주력 분야가 플랜트에서 토목공사로 옮겨가는 추세다.
9일 해외건설종합정보서비스 통계에 따르면 올 1월1일부터 이달 8일까지 국내 건설사의 토목 공사 수주액은 21억1752만1000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12억5585만달러와 비교해 68.6% 증가했다. 철도공사 수주액이 가장 많이 증가했고 댐, 도로 공사 순으로 증가율이 높았다.
중동지역에서 일감이 부족해진 국내 건설사들이 철도, 도로, 항만, 공항 등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아프리카, 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에 대한 영업을 강화한 데 따른 결과다.
특히 아프리카 지역의 경우 최근 세계적인 경기 불황에도 각종 공적개발원조(ODA)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건설사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우건설(047040)은 지난달 총 4억8000만달러(대우건설 지분 50%, 2억4000만달러) 규모의 인도 갠지스강 교량 건설사업으로 해외수주의 막을 열었다. 인도 시장 수주는 16년만이다. 또 같은 달 동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8200만달러(약 980억원) 규모의 고속도로 건설공사도 수주했다.
쌍용건설은 지난 1월 싱가포르에서 2억5200만달러(약 3050억) 규모의 지하철 공사를 수주했고, 롯데건설은
한라(014790)·한신과 조인트 벤처를 구성해 베트남에서 5400만달러(약 637억원) 규모의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국제 유가 하락으로 건설사의 해외수주 주력 분야였던 플랜트는 감소한 반면 인프라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아프리카, 아시아를 중심으로 토목 분야 수주가 늘고 있다. 사진은 대우건설이 시공한 아프리카 알제리의 비료 공장 전경. 사진/대우건설.
반면 같은 기간 플랜트 등 산업설비 수주액은 14억8307만달러로 78% 감소했다. 플랜트 분야 수주고를 담당했던 중동 국가들이 유가하락에 따른 재정 악화를 이유로 발주를 미루거나 취소한 데 따른 것이다.
세계 최대 원유생산 및 수출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저유가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올해 성장률이 1%대로 추락한 데 이어 국제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도 2단계나 떨어졌다.
남미 최대 산유국 브라질은 신용등급이 정크(투기)등급으로 떨어졌고, 오만·바레인·카자흐스탄 등도 신용등급이 낮아졌다.
주요 산유국의 재정상태가 악화되면서 올 들어 지난 8일까지 정유공장, 가스처리시설, 가스시설, 원유시설 수주는 한 건도 없었고, 발전소는 지난해와 비교해 10분의1 수준으로 수주액이 감소했다. 산업설비 중 화학공장과 정유시설 수주액만 증가했다.
플랜트 수주가 급감하면서 전체 수주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덩달아 낮아졌다. 지난해 플랜트 등 산업설비의 비중은 61.3%에서 29.2%로 32.1%p 감소한 반면, 토목 비중은 11.3%에서 41.6%로 30.3%p 증가했다.
이에 대해 건설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로 볼 때 중동지역 플랜트 수요는 충분하지만 유가 하락세로 인해 대규모 프로젝트는 당분간 중단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유가하락세에 비해 원유를 가공해 만드는 석유화학제품 가격 하락 폭이 적은 점이 이를 뒷받침 한다.
통계청 통계를 보면 2014년 2분기 배럴당 105.93달러(두바이유 기준)였던 유가는 2015년 2분기 60.28달러로 43.1% 감소한 반면 대표적인 석유화학제품인 에틸렌 가격은 톤당 1450달러에서 1410달러로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중동 지역의 원유 생산량에 비해 이를 정제·가공할 수 있는 석유화학시설이 부족해 여전히 플랜트 시장 전망은 밝다"면서도 "다만 유가하락세가 장기화되면서 재정상태가 악화된 산유국들이 투자를 줄이고 있어 당분간은 중동 의존도를 낮추고 아프리카나 아시아 등 개도국 수주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료/통계청.
최승근 기자 painap@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