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의 경영진에 대한 평가를 강화해 구조조정 기업을 가리겠다는 금융당국의 방침이 자칫 정치권 등의 입맛에 따라 달라지는 '고무줄 잣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올해 기업 신용위험평가부터 강화되는 '오너리스크 평가'와 관련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10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올해 구조조정 대상 부실기업을 솎아내는 신용위험평가에서 재무상황과 현금흐름 등 정량적으로 판단 가능한 재무적인 지표를 주된 평가요소로 하되, 산업·영업·경영위험 등에 대한 평가를 과거보다 강화하기로 했다.
금융위 핵심 관계자는 "그동안 채권은행들이 기업 신용위험평가를 할 때 재무제표를 주로 봤으나, 올해 하반기부터는 기업이 속한 산업의 전망과 경영자의 경영능력, 소유·지배구조, 도덕적 해이 등 질적인 요소를 좀 더 강하게 본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극단적 사례지만 재무상황이 똑같은 A, B사 중 A사 CEO가 횡령·배임이나 조세포탈 등 경제범죄로 구속됐다면, A사만 구조조정 대상인 C·D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CEO의 경영능력이 위험하다는 평가 기준은 물론 이것이 전체 평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영위험을 평가할 때 채권단이나 금융당국의 '고무줄 잣대'가 적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워크아웃 과정이 로비 등으로 얼룩진 '경남기업 사태'가 재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런데도 복수의 금융당국 관계자는 "과거에도 세부평가요소별 비중은 없었다"며 "채권은행들의 평가 기준에 대한 컨센서스(의결 일치)와 금융감독원의 점검을 거치면 일부의 마음대로 특정 기업을 평가할 가능성은 없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아도 채권은행들은 기업 신용위험평가를 내부 사정에 맞춰 진행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채권은행은 거래 기업이 구조조정 대상이 되면 대손충당금 부담과 부실채권 비율이 올라가는데다, 영업점의 경우 성과평가기준(KPI)상 불이익도 있어 C·D등급을 줘야 할 기업을 B로 평가할 유인이 컸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이런 상황을 바꾸는 내용의 KPI 개선안을 대부분 마무리하고 은행 노동조합의 동의 과정을 남겨둔 상태이지만, 신용위험평가의 평가요소별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점은 바뀌지 않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경영진 문제를 주로 보겠다는 게 아니므로 이런 요소는 신용위험평가에서 심각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구조조정 과정 대부분이 알려진 게 없어 신용위험평가가 정량적 기준이든 정성적 기준이든 객관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채권단과 금융감독당국이 깜깜이 구조조정을 지속하면 부실기업 등 잠재적 위험을 제거하기 어렵고, 시장의 불신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동훈 기자 donggoo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