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3일부터 3월2일까지 진행된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는 비록 아쉬운 중단으로 끝나긴 했으나, 많은 국민들이 모처럼 국회에서 '의원답게 일하는' 일부 국회의원들을 보며 기대감으로 설레던 시간이었다. 내일은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대항해 마산에서 의거가 일어난 지 56년이 되는 날이다. '부정선거'의 유구한 전통은 반백년이 지난 2012년 말 대선에서 국정원의 '불법선거개입'에 의해 성실히 계승되었으니 향후 '테러방지법'이 가져올 인권침해에 대한 우려가 어찌 근거 없는 것이겠는가.
지난 1948년과 1952년 두 차례에 걸쳐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승만은 집권 연장을 위해 1954년 대통령의 3선 금지조항에 대한 개헌안을 상정한다. 그러나 이 개헌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사사오입' 논리에 따라 부결을 번복시키고 1956년 다시 3선을 달성한다. 민심이 이승만의 자유당을 떠나 민주당으로 기울자 위기감을 느낀 자유당은 1960년 정·부통령 선거를 위해 내무장관 최인규의 지휘 아래 1년 전부터 조직적인 부정선거 준비에 들어가게 된다.
당시 정·부통령 후보로 자유당에서는 이승만과 이기붕이, 민주당에서는 조병옥과 장면이 출마하였는데 조병옥 후보가 신병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간 틈을 타 자유당은 선거를 5월에서 3월15일로 앞당긴다. 2월15일 조병옥 후보가 갑자기 사망하여 이승만의 대통령 당선이 확실해지자 자유당 정권은 대통령의 궐위시 권력을 승계할 부통령에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부정선거를 획책하는데,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모습이다.
"전남 담양 면앙정 근처 / 옛 풍류 간데없다 / 그냥 두메 // 멀리 무등산 등허리 수전증 같은 아지랑이 한 고을 내다보인다 // … // 거기에도 날짜는 왔다 / 3월 15일 / 자유당이 서두르는 조기선거 / 투표일이 왔다 / 그런데 그 두메 16가구 / 투표용지가 오지 않았다 / 후보 기호도 알 길 없다 // 면에서 / 군에서 / 관권이 대리투표 몰표를 위해서 / 아예 유권자에게 투표용지를 배부하지 않았다 // 마을 이장 고재순 집에 / 마을 사람들 몰려왔다 // 내 투표용지 주소 / 내 투표용지 주소 / 이장 가로되 / 저 무등산 보고 달라 하소 / 내 투표용지도 없소 // 다음날 이장 고재순은 / 면사무소로 갔다 // 사표 이유 / 일신상의 사정으로 이장직을 / 사임합니다"('이장 고재순', 21권).
이승만·이기붕 선거 벽보. 사진/뉴시스
3·15 부정선거에 사용된 방법을 열거하자면 40% 사전투표와 유권자들의 3인조 혹은 5인조 공개투표, 유령유권자의 조작, 유권자의 기권 강요와 기권자의 대리투표, 야당측 선거참관인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공무원과 경찰의 관권 동원, 심지어 정치깡패와 완장부대를 이용해 유권자를 위협하는 등 한마디로 '총체적'이다. 이에 들고일어난 마산시민과 학생들의 시위를 경찰이 최루탄 발사와 카빈총 난사로 강경 진압함으로써 많은 사상자를 내게 된다. "지난해 술 취한 노인 / 술 취해 / 피투성이가 된 노인을 업고 / 병원에 왔다 / 병원 간호부들이 / 업고 온 그 소년을 기억하고 있었다 // … // 1년 뒤 / 그 소년 김용실이 / 총 맞은 시체로 병원에 실려왔다 // 간호부들이 울었다 // 그 착한 용실이가 / 그 착한 용실이가 / ‘빨갱이'로 죽어서 왔어 / 이승만 대통령각하의 역적도당으로 / 북괴 간첩으로 죽어서 왔어"('용실이가 죽어서 왔어', 21권). 간호부들이 "서로 내 동생 내 동생"(앞의 시) 할 정도로 착한 "마산고등학교 1학년", "잡화상 만물상회 김기우 씨의 3남 5녀중 장남"('김용실', 22권)인 "급장", "모범생" 김용실은 "그날 3월 15일 오후 / … / 두부 관통상"으로 "저녁 아홉시 / 도립병원에서" 눈을 감는다('김용실', 23권).
고은 시인 육필원고 '김용실(출판본 제목 '용실이가 죽어서 왔어')' 초안. ⓒ고은재단
채 피기도 전에 공권력에 의해 쓰러져간 소년의 넋을 위로하고자 고은 시인은 자신의 시적 상상력을 극대화해 소년과 노인이 현생에서 육신으로 만나고 이후 다시 혼백으로 만나는 장면을 그려내고 있다. "5일장 장거리 가근동 사람들 북적이는데 / 술 취해 / 대낮부터 뻗어버린 노인 있다 // … // 그 노인을 업고 / 병원에 달려간 아이 있다 / 갸륵하고 갸륵하였다 // 닷새 뒤 / 그 아이가 시체가 되어 / 병원에 왔다 / 김간호부가 그 갸륵한 이이를 알고 있다 / … // 황천길 삼도천 / 노인의 혼백 / 그 아이 김용실의 혼백을 만났다 / 어이 / 이제 내가 자네를 업고 가겠네"('두 혼백', 21권).
이런 정의로운 소년을 '북괴 간첩'으로 만드는 방법은 치졸하기 짝이 없어서, 용실이의 호주머니에 '인민공화국 만세'라고 쓴 쪽지를 경찰이 넣어두는 식이다. 용실이와 같은 무고한 소년들을 '빨갱이'로 몰아가는 데는 이승만의 자유당 세력뿐 아니라 "미국에서 건너온 개들"도 있어서 "그 중의 한 마리 / 짐 루카스 // 이승만이 중절모자를 쓰면 / 다음날 그도 중절모자 / … // 1960년 3월 / 미국 워싱턴데일리뉴스 기자 / 루카스는 / 오직 이승만만이 주인이었다 // 3·15 부정선거 반대운동을 / 공산당이 주도한 것이라는 기사 보냈다 / 소년들을 데모에 내세운 것이 그 배후조정자의 증거라는 기사 보냈다 / … // 어째서 아이젠하워는 / 이승만 4선 당선 축하를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써 보냈다"('이승만의 개', 23권).
그런가하면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또 한 명의 반듯한 소년이 있다. "하루 150환 벌이의 아비 / 골골 앓는 어미 / 이 갈비뼈 앙상한 가난에도 / 끄덕없는 영호 / 구공탄 배달하고 / 비누 없어도 / 검은 구공탄 묻은 몸 씻고 / 해 지면 / 야간중학생 / 당당한 영호 // … // 마산의거 3월15일 / 그날 맨 앞장 / 총 맞아 죽었다 / 마산시청 부근 // 아버지가 아들의 화장을 반대했다 / 내 자식 죽인 경찰 / 반드시 찾아내겠다고 장례를 반대 / 며칠이고 며칠이고 병원 안치실에 당당한 영호는 누워 있다 / 아 싸구려 향로 싸구려 만수향 타오르고 있다"('김영호', 21권).
한편 이 당당하고 성실한 야간학교 학생 영호, 자랑스러운 효자 아들의 죽음을 마주해야 하는 아버지의 심정을 시인은 잊지 않는다. "나는 하루 150환을 버는 막일꾼이올시다 / 구공탄 배달하는 막일꾼이올시다 / 허위허위 / 비탈길 오르면 / 한 겨울에도 내 몸에서 하얀 김이 한 소쿠리씩 피어납니다 // … // 내 자식놈은 야간학교 고학생이올시다 / 김영호올시다 / 구공탄 배달 김위술의 아들 김영호올시다 // 마산 남성동파출소 찾아가 / 어느 놈이 내 자식 때려죽였느냐 / 어느 놈이 내 자식 죽였느냐고 / 부르짖는 내 마누라마저 / 수갑 채워 형무소 보낸 경찰이 대한민국 경찰이올시다 // 내 자식 총 맞은 뼈 그대로 / 땅에 묻었습니다 / 마누라는 콩밥 먹고 나왔습니다 / 정신 나가버렸습니다 / 나는 구공탄 리어카 끌고 / 오르막길 오르고 / 내리막길 내려갑니다 // 영호야 / 영호야 / 영호야 / 속으로 불러봅니다 / 소리내어 불러봅니다 / 오늘 빈 리어카하고 나하고 비탈길 굴러버렸습니다 엉엉 울었습니다 // 나는 자식 잃은 막일꾼이올시다"('김위술', 21권). 리어카와 함께 비탈길을 구르는 순간, 구공탄 속에 억지로 눌러 넣은 아버지의 통한이 봇물처럼 터져나와 우리의 가슴을 친다.
고은 시인 육필원고 '김위술' 초안. ⓒ고은재단
국가권력에 원통하게 자식을 잃고 넋을 잃은 부모는 물론 김위술씨만일 수 없다. "야간 창신중학 졸업생 전의규 군 / 쌀가게에 취직하기로 되었"던 의규 군의 "아버지 전소조 씨" 또한 그러하여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 / 이승만 대통령이라는 큰 글자가 박힌 신문지 도배한 벽에 넋을 잃었다 / 앉은 채 / 오줌도 싸고 똥도 쌌다 // 예순한살 / 끝내 물 마시지 않으므로 / 오줌도 없다"('의규 아버지', 21권).
고은 시인 육필원고 '의규군의 아버지(출판본 제목 '의규 아버지')' 초안. ⓒ고은재단
잘 알려진 바와 같이 3·15 마산의거는 4월11일 최루탄이 눈에 박힌 김주열의 시체가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발견됨으로써 4·19의 도화선이 된다. 3·15 부정선거에 대한 항의가 마산에서 가장 빨리 대규모로 쏟아져 나온 큰 이유로는 1958년 총선에서 민주당으로 당선한 허윤수가 자유당 이용범으로부터 차기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자유당 공천 및 당선 보장과 동양주정 경영권을 약속받고 1960년 1월 자유당에 입당했다는 점 그리고 3월에 동양주정을 인수해 경쟁업체인 무학주정에 매각함으로써 이를 둘러싼 정·관·경 유착과 부정부패가 공공연하게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2016년 4월13일 제 20대 총선을 앞둔 우리가, 3·15 의거를 되새기고 "내 투표용지"를 잘 지켜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은 필연적이라 하겠다. 1960년의 아날로그 부정선거가 2012년의 디지털 부정선거로 진화된 이상 우리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박성현 고은재단 아카이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