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고결함과 숭고함

입력 : 2016-03-16 오전 6:00:00
신문을 읽다 보면 회사를 그만 두고 꿈을 찾아 떠난다는 인터뷰를 종종 읽는다. 그럴 때마다 그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생긴다. 대체 얼마나 이루고픈 꿈이었기에 밥벌이를 박차고 나갈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하는 나로서는 응원하는 마음까지 생길 정도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기사를 읽을 때면 묘한 불편함을 느낀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상의 밥벌이에 매진하는 사람들을 다소 낮춰 보는 시선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꼭 기사에서만 그러는 것은 아니다. 지인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은연 중에 많은 이들이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음을 알게 된다. 
 
고백하건대, 나도 한때는 그랬던 적이 있었다. 대학 때의 일이다. 한창 꿈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 공무원이나 공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애쓰던 이들과 평범한 직장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답답해 했다.
 
도서관에서 그들과 마주칠 때마다 왜 꿈을 쫓지 않고 저렇게 뻔한 일상의 길로 가려고 애쓰는 걸까 싶기도 했다. 지금에야 반성한다. 내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폭이 좁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는 그 목표를 향해 도서관에서 밤새 교재를 파고드는 그들의 노력을 보지 못했다. 일상을 걷는 길도 꿈을 향하는 길만큼 고되고 힘들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지난 여름,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기셨던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오가던 때가 있었다. 그 힘겹던 시간을 관통하고 어머니의 건강이 회복되던 순간, 나는 새삼 깨닫게 되었다. 지난했던 과정을 견딜 수 있었던 건 10년 동안 내가 유지했던 꾸준한 밥벌이 덕분이었다는 것을. 그 시간이 없었다면, 어머니의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 어머니가 드시고 싶어하던 그 음식들을 사드릴 수 있었을까. 
 
그제서야 내가 먹고 살고 즐기는 모든 것들이 내 10년의 밥벌이에서 온전히 왔음을 알 수 있었다. 몸을 누일 수 있는 집, 타고 다니는 차, 읽는 책, 봐왔던 영화, 듣고 싶을 때 꺼내어 듣던 음악, 친구들과 웃고 떠들던 순간들 모두가 내 밥벌이 덕분에 가능했던 일들이었다. 아아 갑작스레 와닿은 평범한 밥벌이의 성스러움이란. 
 
꿈을 쫓는 열정과 고결함도 좋지만 밥벌이에 매진하는 것도 숭고한 일이다. 하루하루 스스로의 입에 풀칠을 해가며 일상을 유지하고 삶을 지탱하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내 아이 입에 밥 숟가락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못할 일 없다”라던 누군가의 표현처럼, 대단한 의지와 다짐을 수반하는 일이다. 자아가 꺾이고 일상에 치이며 살아가기 위해선 그만큼의 용기가 필요하니까. 최고의 사진작가가 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만이 위대한 것은 아니다. 흔들리는 전철 안에 몸을 싣고 출퇴근을 반복하는 고단함 속에도 위대함은 함께한다. 
 
세상이 바뀌는 건 꿈을 쫓는 사람들 덕분이지만, 유지될 수 있는 건 일상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어느 한쪽으로 무게추가 쏠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고 보완하며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간다. 꿈과 밥벌이 모두를 충족하며 살아갈 수만 있다면 더 바랄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고 어느 한쪽에 매달려 살아간다 해도 다른 쪽을 손가락질 할 수는 없다. ‘쟤는 꿈만 쫓다가 인생 허비하겠어’, ‘쟤는 매일 출퇴근만 반복하다가 인생 다 날리겠어’ 같은 말은 옳지 못하다. 결국 우리의 삶은 양쪽으로 향하는 교차로 어딘가에 있기 때문이다.
 
김현석 가톨릭대병원 인사팀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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