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수요일의 진풍경

입력 : 2016-03-15 오후 2:37:59
매주 수요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이른 아침 한 무리의 막내 기자들이 1층 로비에서 소위 뻗치기’(무작정 기다리기)를 한다. 사장단회의를 마치고 나온 각 계열사 사장들을 붙잡고 한마디라도 들으려 애쓴다. 어쩌다 한마디라도 들으면 갖은 살이 붙어 기사가 된다. 개중에는 사장단 출근시간에 맞춰 새벽부터 뻗치기를 하는 기자들도 적지 않다.
 
같은 기자 입장에서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평소 만나기 힘든 삼성 사장단을 이 기회에라도 직접 보고 궁금했던 사안들을 묻는 등 취재 열정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실 이조차 따지고 보면 과잉취재에서 비롯된 폐단이다.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경우도 적을뿐더러, 의미조차 왜곡되는 경우가 적질 않다. 이렇게 사실에 부합하지 않은 기사들이 독자에게 객관성을 가장한 정보로 제공된다.
 
뿐만 아니다. 일부 기자들은 사장들의 차량번호를 하나하나 외우고 이를 보란 듯이 과시한다. 그만큼 우리가 삼성에 관심이 많으니 삼성도 알아서 잘 대우해 달라는 뜻이다. 더욱이 이 같은 관행이 기자 교육과정에 포함되거나, 해당기자의 역량 평가대상이 된다는 말까지 전해들을 때면 매우 불편하기까지 하다.
 
연장선상에서 삼성 사장단이 매주 수요일 누구로부터 특강을 듣고, 그 내용이 무엇이었느냐에 따라 기사의 방향과 질도 달리 한다. 가령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으로부터 경제민주화에 관해 얘길 들었다면, 대부분의 기사들은 삼성이 재벌개혁을 비롯한 경제민주화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식의 해석을 달게 된다. IT 전문가로부터 인도시장에 대해 들었다면 삼성이 다음 타깃으로 인도를 주목한다는 식의 기사도 쉽게 뽑아낼 수 있다.
 
이처럼 갖다 붙이기 나름의 기사들에 대해 때로는 삼성조차 실소를 금치 못한다. 그저 사장단 교양강좌 차원에서 마련된 특강이 생각지도 못한 의미를 담고 지면에 뿌려지니 당혹스러울 만도 하다. 한편으로는 '삼성공화국'의 민낯을 보는 것만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삼성 하나에만 주목하는 언론과 삼성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무엇이든 기사가 되는 현실. 여기에서 삼성에 대한 당당한 비판은 점점 자리를 잡기 힘들어질 뿐이다. 이는 삼성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사장단이 드나드는 서초사옥 로비 앞에는 매일같이 삼성에 항의하는 또 다른 목소리가 있다. 다음 수요일은 빨간 장미를 하나 사들고 소외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기자들이 찾아야 할 곳은 바로 우리 앞에 있다.
 
김기성 산업1부장 kisung012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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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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