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공직선거에서 방송사들이 출구조사(exit poll) 기법을 도입해 투표 종료와 동시에 그 날 선거의 향방을 예측해 발표하기 시작한지도 어느덧 15년을 훌쩍 넘었다. 실전 경험이 부족했던 만큼 초창기 출구조사에서는 간혹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었지만, 최근의 출구조사는 족집게로 불릴 만큼 정확한 결과를 내놓고 있다.
특히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국방송협회와 KBS, MBC, SBS 방송3사가 자원과 역량을 모아 공동예측조사위원회(KEP : Korea Election Pool)를 구성하면서부터는 거의 완벽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모든 여론조사가 10%P 이상 큰 차이로 오세훈 후보의 낙승을 예상하던 2010년 서울시장선거에서 한명숙 후보의 맹추격으로 아주 근소한 차이의 진땀승을 거둘 것이라는 예측은 KEP 출구조사가 유일했다.
게다가 당시 조사수치는 오 후보의 실제 득표율과 소수점 아래까지 일치되면서 더욱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이후로도 KEP 출구조사는 YTN, JTBC 등 타 방송이 비출구조사 예측으로 크고 작은 오류들을 반복할 때에도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2012년 제19대 총선과 제18대 대선',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정확하고 안정적인 예측치를 내놓으며 유권자들의 신뢰를 얻어왔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 높은 정확도를 갖는 출구조사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유권자는 그리 많지 않다. 그저 상식적으로 '투표소 출구에서 하는 조사'정도로 알고 있지만, 사실 출구조사는 그렇게 단순하거나 쉬운 작업이 아니다. 왜냐하면 출구조사는 전체 투표자 중 극소수만을 뽑아 조사해 전체의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해내야 하는 고도의 통계과학이기 때문이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조사대상인원은 총 투표자의 3%에 불과했고, 18대 대선에서의 조사대상자는 0.3%에 불과했다. 전체 투표자가 1000명이라고 가정해본다면, 총선에서는 고작 30명에게 질문을 던져 전국 300여명의 국회의원의 당선 여부를 개개별로 알아내는 것이고, 대선에서는 단 3명에게 질문해 그로부터 정확한 결과를 도출해낸 셈이다. 고도의 통계 과학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출구조사에 임하는 통계 연구원, 자문교수 등 전문가 집단은 실제 투표 결과와 예측치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과거 선거자료와 후보자의 경쟁구도, 여론조사 결과, 그간 출구조사의 노하우 등을 종합해 과학적인 방식으로 섬세하게 조사방법을 설계한다. 전국에 산재돼 있는 수천개의 투표소 중 어떠한 투표소를 조사 대상으로 삼을 것이며, 그 곳에서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조사할지를 정하는 것도 통계과학적 판단의 영역이다. 또한 조사대상자이지만 답변을 거부한 무응답자들과 출구조사 발표 준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누락되는 마지막 1시간의 조사누락자에 대한 과학적 분석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도입돼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무려 전체 투표자의 1/4을 차지하게 된 '사전투표자'들에 대해서도 과연 어떤 선택을 했는지 통계적 분석을 통해 알아내야 한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돌아오는 4월 총선에서도 총 70억원에 가까운 비용을 들여 정확한 출구조사 결과를 얻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출구조사 발표시간은 온 국민의 관심이 초집중되는 시간이지만,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스포츠 이벤트처럼 광고를 삽입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고비용 콘텐츠이다. 게다가 만약 실제 개표 결과와 큰 차이가 나기라도 한다면 큰 비난만을 받을 수도 있는 고위험 콘텐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고비용 고위험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방송사들은 주어진 공익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정확한 출구조사 준비에 힘을 모으고 있다. 출구조사에 관한 이러한 배경들을 이해하고 이번 총선의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본다면 더욱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들이 발견될 것이다.
최상훈 한국방송협회 대외협력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