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청진법 혈압 측정 설정 B) 청진법 측정 중 대표적 동맥 반응 (사진=PNAS Nexus)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골퍼들은 운동 후 측정한 혈압이 맞는지 궁금해 합니다. 골프는 비교적 완만한 운동으로 보이지만, 18홀을 도는 동안 6~10km를 걷고 반복적인 스윙을 하며 체온이 오르고 탈수와 말초혈관 확장이 일어납니다. 특히 여름철 강한 햇볕 아래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더 심해집니다. 운동 직후에는 심박수가 일시적으로 증가하며, 충분한 쿨다운 없이 곧바로 뜨거운 목욕을 하면 혈압이 안정될 시간이 없는 셈입니다.
보통 40℃ 전후의 온탕 속에 들어가면 피부혈관이 확장되고 심박수가 올라가면서 심장은 더 많은 혈액을 펌프질해야 합니다. 열 자극은 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 혈압을 10~20mmHg까지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특히 운동 직후 순환계에 이미 부담이 쌓인 상태라면 이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납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골프 후 뜨거운 목욕 직후의 혈압 측정은 '일시적 고혈압(Transient Hypertension)'을 반영해 실제보다 높게 나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지속적인 고혈압과는 다른 현상입니다. 정확한 혈압을 측정하려면 운동 후 최소 30분 이상 휴식하고, 목욕 후 체온과 수분 상태를 정상으로 회복한 뒤 조용한 환경에서 앉아 5분 이상 안정한 상태에서 측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병원에서는 높고, 집에서는 정상? 혹은 그 반대?
병원 진료실에서는 혈압이 높게 나오지만 집에서는 정상으로 나오는 경우, 혹은 그 반대의 경우가 있습니다. 의료계는 이를 '화이트 코트(백의) 고혈압'과 '가면 고혈압'으로 부릅니다.
'화이트 코트 고혈압'은 병원이나 진료실에서 평소보다 혈압이 10~20mmHg 높게 측정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의사나 간호사의 흰 가운으로 대표되는 낯선 환경, 진료 전 긴장과 스트레스, 불안감이 원인으로 작용해서 혈압이 높게 측정되는 경우입니다. 과거에는 일시적인 현상으로만 여겼으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심장·혈관 질환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경고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가면 고혈압'은 병원에서는 정상 범위지만 가정이나 직장 등 일상에서는 높은 혈압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스트레스나 생활환경의 영향이 크고, 진료실 측정만으로는 쉽게 놓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장기간 방치하면 고혈압 합병증 위험이 커집니다.
혈압 측정 과정에서의 오류도 문제입니다. 팔 위치가 심장보다 높거나 낮은 경우, 다리를 꼬거나 측정 중 대화·움직임이 있는 경우 수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측정 전 카페인 섭취, 흡연, 운동도 일시적으로 혈압을 높일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진료실 수치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가정에서 정기적으로 혈압을 재고 기록할 것을 권합니다. 가정 혈압 측정은 진료실 긴장 효과를 배제하고 생활 속 혈압 변화를 반영해, 가면 고혈압이나 야간 고혈압 등 숨은 위험 신호를 조기에 포착할 수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 의료진은 24시간 활동혈압 측정기를 활용해 활동과 휴식 시 혈압 변화를 면밀히 분석하도록 권하기도 합니다.
생활 속 혈압관리는 식습관 개선, 규칙적 운동, 스트레스 완화와 함께 정확한 측정 습관에서 시작됩니다.
‘정상’ 판정 뒤 숨겨진 혈압 측정 오류의 위험
케임브리지 대학교 연구진이 발표한 최신 연구에 따르면, 가장 널리 쓰이는 팔목 밴드 방식의 혈압계가 수축기 혈압을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해 최대 30%의 고혈압 환자가 진단에서 누락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계 오차가 아니라, 혈압 측정 과정의 물리적 한계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것이 연구진의 분석입니다. 연구진은 실제 동맥의 반응을 모사한 물리적 모델을 구축해, 압박 밴드 하류(팔 아래쪽)에서 발생하는 낮은 압력이 혈관 재개통을 늦춘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연구진은 압박 밴드 아래 팔 부분의 혈압(하류 혈압) 효과를 분리해 단순화된 물리적 모델을 구축했습니다. 팔목 밴드가 팽창되어 하부 팔로 가는 혈류가 차단되면 매우 낮은 하류 혈압이 발생합니다. 실험 장치에서 이 조건을 재현한 결과, 이 압력 차이로 인해 팔목 밴드가 팽창되는 동안 동맥이 더 오래 닫혀 있으며, 이는 재개통을 지연시켜 혈압을 과소평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물리적 메커니즘(낮은 하류 혈압으로 인한 지연된 재개통)은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요인으로 추정되는 혈압 과소평가의 주요 원인입니다. 이 연구의 제1저자인 케이트 바실(Kate Bassil)은 “현재 진단이나 치료 처방 시 이 오차를 조정하지 않고 있으며, 이는 수축기 고혈압 사례의 최대 30%를 놓칠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케임브리지 대학교 연구진은 고가의 신형 혈압계를 도입하지 않고도 정확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도 아울러 제안했습니다.
-팔을 들어 올려 측정: 하류 압력을 조절해 재개통 시점을 안정화할 것.
-예측 가능한 하류 압력 부여: 측정 프로토콜에 약간의 수정만 가하면 저평가 현상을 줄일 수 있음.
공동저자인 아누라그 아가르왈(Anurag Agarwal) 교수는 "새로운 장치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며 "방법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측정 결과를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연령·BMI·조직 특성 등 개인별 변수를 반영하는 ‘교정 입력값’을 활용한 장치 개발도 가능성을 열어뒀습니다.
이 연구 성과는 학술지 PNAS Nexus에 8월 12일 게재됐습니다. 전문가들은 "측정 방식의 작은 변화가 수백만 명의 고혈압 환자 진단율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심혈관 질환 사망을 줄일 수 있다"며 의료 현장에 실제로 반영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혈압 측정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개개인과 의료계의 노력은 고혈압으로 인한 건강 위험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막연한 불안감이나 자신감 속에서 생활하는 것보다는 혈압 측정을 일상생활의 일부로 만들고, 의심되면 전문가와 상의하면서 혈압을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한 대안입니다.
논문 DOI: https://doi.org/10.1093/pnasnexus/pgaf222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