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힐러리가 대통령 돼도 북한 방관하는 정책 안바뀌어"

오바마의 대북 전략적 인내, '북한 붕괴주의'가 낳은 실패한 정책
한반도평화포럼 토론 지상중계…전문가들 "한국 역할이 결정적"

입력 : 2016-03-27 오후 2:36:20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 22일 쿠바 방문 당시 “미주대륙에 있는 냉전의 마지막 잔재를 파묻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미 대통령으로 88년 만에 쿠바를 방문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에 앞서 미얀마, 이란 등과도 역사적인 관계개선을 이뤄냈다. 그러나 오직 한 나라, 북한과의 관계만 악화일로에 있다.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만은 꺼려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고 보는 착각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반도평화포럼(공동이사장 임동원·백낙청)이 지난 24일 개최한 토론회를 정리했다. ‘대북 전략적 인내의 비극’을 주제로 한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발표와 이어지는 전문가 토론의 주요 내용이다.[편집자]
 
최종건 연세대 교수
 
오바마 정부는 미얀마, 이란, 쿠바에 대해 햇볕정책과 비슷한 정책을 취해왔다. 그러나 북한에 대해서만 예외적이었다. 오바마 정부는 지난 8년 동안 북한을 악마화했고, 실패했던 ‘강압과 제재’ 정책을 지속했다. 북한은 이런 미국을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외세로 인식했고, 핵무장을 정당화했다. 그 핵심에는 북한 붕괴주의가 있었다. 북한이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결정론에 근거한 것이며, 붕괴할 수밖에 없는 북한과의 협상은 사실상 불필요한 정책으로 인식되었다.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면 북핵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집단적 사고가 워싱턴 정책 네트워크에 자리잡았다. 김정일 사후 붕괴주의는 더 강화된다. 2010년 재스민 혁명 이후 ‘체제 변화의 다음 순서는 북한이 될 것’이라는 결정론으로 빠졌다.
 
최근 비밀 해제된 중앙정보국(CIA) 보고서에 의하면, 1997년 미국의 북한-정보-안보 전문가들은 북한 정권이 개혁 실패로 붕괴할 것으로 예측했고, 붕괴 시기를 5년으로 못 박았다. 이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전문가들 대부분은 현재까지 워싱턴에서 북한 붕괴주의를 양산하고 있다. 북한이 망할 것이라는 예측이 틀렸으면 왜 틀렸는지 질문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붕괴주의는 미국의 대북정책으로 연계되어 ‘전략적 인내’라는 방관정책으로 변질되었다. 지난 8년 미국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내부 변화를 촉진하기 위한 강압정책과 교란작전으로 나타난다. 후보 시절 “적과도 협상할 수 있다”며 전향적 의견을 밝혔던 오바마 대통령은 2015년 1월 인터뷰에서 “북한과 같이 세상에서 가장 고립되고 제재를 받는 국가는 반드시 붕괴하게 될 것”이라며 “북한을 더 옥죄면 버티기 힘들 것이고, 우리는 이를 가속화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는 의도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북한의 변화를 인내하는 동안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진화하는 추세를 보여준 반면 미국의 대북 지렛대와 협상력은 매우 감소했다. 미국과 한국이 북한에 ‘진정성 있는 비핵화 의지 표명’을 협상의 전재조건으로 고집할수록 북한은 한·미 양측에 협상 의지가 없다는 것으로 인식했고, 핵무장을 더욱 정당화했다.
 
둘째, 6자회담 무용론이 확산됐다. 협상 무용론은 ‘어차피 강력히 제재하면 붕괴할 북한’과 협상할 필요가 있느냐는 인식에 근거할 뿐만 아니라, 북한의 거듭된 불량 행동을 붕괴 조짐으로 활용한다. 전략적 인내는 ‘불량한 북한’과의 비핵화 대화를 사전에 봉쇄하는 결과를 초래해 북한의 핵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할 수 없는 상황을 연출했다. 이는 북한의 핵능력과 비핵화 의도를 경험적으로 검증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게 해 미국의 전략적 약점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셋째, 대북한 접근법의 창의성이 상실됐다. 제재의 날카로움을 강조하지만, 북한의 행동을 변화시킬 실효적 정책 수단은 소진하게 되었다. 북한의 핵 능력 검증과 불능이 미국의 1차적 정책 목표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북한 악마화’로 인해 북한과 협상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불가능한 정책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전개된 미국과 한국의 대북 제재 정책이 상징적인 것에 그쳤다는 것으로 나타난다. 넷째, 중국 역할론을 더 강화시켰다. 중국과의 협력 없이 북한의 실효적 정책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미국이 그만큼 북한에 대한 직접적 변화를 유도할 수 없다는 반증이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는 한국의 대북정책 환경에도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 지난 8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북핵 불용’이라는 원칙만 고수하고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고, 북한의 불량 행동이 거듭될수록 구체성이 없는 원칙은 교조적으로 변이해 정책적 유연성이 상실되었다. 또 교조적인 북핵 불용은 설득과 예방이라는 외교의 기본 원칙이 허용되지 못하는 정책 환경을 조성한다.
 
붕괴주의로 인해 북한이 붕괴할 지도 모른다는 착시현상을 초래했고, 이러한 역설은 통일 대박론이라는 기형적 담론으로 등장한다. 통일준비위원회보다 ‘한반도 비핵화 추진위’가 있었더라면 북핵에 대응하는 정책적 상상력이 이렇게 빈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구체성이 결여된 대북정책을 탈피하고 제재와 압박을 넘어서는 적극적 북핵 관리가 필요한 상황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핵능력이 강화된 북한과 마주하게 되는 비극적 결과에 직면하게 되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전개된 위기 속에 나타난 한·미의 인식의 협소함은 매우 심각하다. 특히 전략적 인내의 실효성에 관한 논의가 부재한 점, 한·미 대북정책 경직성이 북핵의 진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자성적 분석이 부재한 점, 대한민국의 선제적 국익이 북한의 평화적 비핵화인지 혹은 통일 그 자체인지에 대한 논의가 부재한 점, 북한 붕괴주의가 과연 정책적 변수로 얼마나 현실적인가에 대한 논의가 부재한 점 등은 미국과 한국의 혁신적 대북정책을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비핵화를 위한 대북정책이 인내에 기초해야 하는 점은 옳다. 그러나 그 인내는 매우 고단한 협상 과정에서 요구되어야 할 미덕이어야 한다. 가장 명확한 비극은, 대북 협상론이 정책 담론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전략적 인내는 오바마의 정책이지만 과거 부시 정부 시절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 ‘악의 축’ 정책의 민주당 버전이다. 제재와 대화를 동시에 얘기하지만 대화는 그럴듯하게 끼워 넣은 것일 뿐이고 제재 정책이 위주다. 새로운 정책이 전혀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를 잘 모르는 것은 오바마의 잘못이 아니다. 어떤 미국 대통령이든 한국을 제대로 알 리 없다. 결정적인 것은 한국 정부의 역할이다. 최근 만난 미국의 한 전문가는 ‘워싱턴은 여전히 평양으로 갈 때 반드시 서울을 거친다’고 말했다. 요컨대, 오바마 대통령은 과거 ‘악의 축’ 정책에 영향을 받은 테크노크라트들에게 의존하는 와중에 한국에는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있다 보니, 과거 김대중 정부가 클린턴 정부를 끌어갔던 상황이 벌어지지 않은 것이다.
 
최종건 교수
 
그러나 미국의 정권이 바뀌어도,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어도 전략적 인내 정책은 계속될 것이라고 본다. 더 중요한 정권 교체는 한국의 정권 교체다. 서울발 정책 변화가 워싱턴으로 가야 한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
 
며칠 전 힐러리 클린턴 대선후보 캠프의 아시아 자문위원들이 결정됐다. 오바마 정부 초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인 커트 캠벨이 좌장이 됐다. 그 외의 사람들도 오바마 정부의 사람들이 거의 다 들어갔다. 새로운 정책을 입안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한국 정부가 강력히 주장하지 않는 한 힐러리는 오바마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따라 할 가능성이 높다.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전 통일부 장관)
 
미국은 자신들을 절대 선으로 보고 북한을 절대 악으로 보기 때문에 잘못된 정책에 대한 성찰을 하지 않는다. 자기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어느새 잊어버리고, 과거의 실패를 비판하던 사람들도 다시 그 실패한 정책에 몰두한다. 북한이 중국 쯤 되는 중요한 나라라면 자신들의 정책 실패가 있을 경우 성찰했을 테지만, 북한은 작은 나라이다 보니 성찰을 안 해도 미국 국민들이 그 실패를 비판하지 않았고,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국의 전략적 인내에 변화가 있었다고 본다. 작년 말 북한과 미국이 접촉했다. 북한이 평화협정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미국은 ‘비핵화가 먼저’라고 했지만, 비핵화는 평화협정 논의의 한 부분이 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북한은 ‘평화협정 우선’을 주장하며 거절했다고 한다. 미 국무부 대변인이 확인해 준 내용인데, 굉장히 큰 변화다. 그 상태로 끝났다면 하나의 해프닝이었을 수 있지만, 이걸 중국이 받았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2월 17일 ‘평화협정과 비핵화를 교환할 수 있다’며 병행해 논의하자고 공식 제안했다. 중국이 그런 제안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중국이 평화협정 논의를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 같다. 미국에서도 대북 제재 회의론이 나온다. 미국의 강경파들도 한편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진전을) 걱정스러워하는 분위기이다. 오바마 대통령 입장에서도 북한과 협상이 된다면 마지막 냉전 구조를 해체하는 디딤돌을 놓는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오바마에게 욕심이 없을 수 없다. 단기적인 변수는 한국이다. 한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가 중국을 향해 ‘지금은 제재를 할 때인데 무슨 대화를 하느냐’고 했다. 그러니까 중국이 ‘한국이 대화로 나오기만 한다면 (한국이 원하는) 3자회담, 심지어 5자회담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한국이 대화로 나올 수 있는 유도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최종건 교수
 
이종석 장관과 의견을 달리한다. 전략적 인내는 현 상태대로 갈 것이다.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다. 중국이 평화협정-비핵화 교환을 제안하면 논의는 진행되겠지만, 미국의 국내정치 일정이 진전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또 미국이 북한에 요구하는 비핵화 조치는 사실상 ‘거의 다 내려 놓으라’는 수준이기 때문에 북한이 받을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셋째,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 문제가 있다. 오바마는 국내정치적으로 비판을 받으면서도 미얀마, 이란, 쿠바와의 관계를 풀었다. 그런데 임기 말에 블랙홀 같은 북한과의 협상에 들어갔다가 실패라도 하게 되면, 그동안 이란, 쿠바, 미얀마와의 협상을 통해 쌓아왔던 정치적 자산이 날아갈 수 있다.
 
문정인 교수
 
오는 30일 미국에서 핵안보 정상회의가 열린다. 오바마가 주도하는 사실상 마지막 국제행사인데 중국이 시진핑 주석의 참석 여부에 대한 확답을 주지 않았다. 시 주석이 빠진 국제회의는 의미가 약해진다. 시진핑을 참석하도록 하기 위해 왕이 외교부장이 제안한 평화체제 논의를 미국이 마치 수용하는 것처럼 제스쳐를 보였다는 얘기가 들린다. 케리 미 국무장관 등이 북한과의 평화협상 필요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그런 맥락으로 해석해야 한다.
 
고경빈 평화재단 이사(전 통일부 정책홍보본부장)
 
최 교수의 주장은 ‘북한 붕괴주의가 미국의 전략적 인내를 낳았다. 그러나 붕괴주의가 틀렸기 때문에 전략적 인내 정책도 틀렸다’로 요약된다. 그러나 뒤집어서 생각할 수도 있다. 미국 입장에서 전략적 인내 정책이 필요했기 때문에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북한 붕괴론을 재생산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동북아에서 북한 문제가 완전히 풀리면 상당 기간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서주석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미국은 ‘악한 북한’이 존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동북아 주둔의 정당성이 생긴다. 그러다 보니 북한과의 핵협상에 제대로 나오지 않고, 붕괴론 같은 얘기들이 되풀이된다. 붕괴론이 틀렸음이 입증됐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오는 이유는 미국의 대전략적 필요성 때문이다. 협상 시도는 그동안 계속 있었다. 미국 내 대북 협상파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협상을 언급했다. 그러나 협상은 간간이 진행됐을 뿐이고, 대통령과 NSC는 주로 대전략을 중시하는 결정을 해왔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
 
동북아 관련 국가들 전체가 국내정치적으로 강경론과 매파와 안보장사꾼들이 활동하기에 유리한 토양이 됐다. 일단 북한이 붕괴한다는 식으로 얘기해야만 정치적으로 훨씬 도움이 되는 것이다. 워싱턴의 마피아뿐만 아니라 국내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생계형’으로 북한 붕괴론을 펴듯, 한국에서도 그런 주장을 해야 중요한 자리와 기획과 프로젝트를 독점한다. 심지어 야권의 대선 후보나 정치지도자들도 진보 색채를 탈색하기 위해 그런 전문가들한테 간다.
 
미·중이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타협한 것은 상황을 관리하기 위한 것이지 합의는 아니라고 본다. 왕이 외교부장이 기자회견에서 ‘향후 2개월이 중요하다’고 말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잠정적인 합의이기 때문에 2개월 동안 미국은 중국이 대북 제재를 제대로 시행하느냐를 지켜보고, 중국은 미국이 평화협정에 대해 얼마나 개방적인지를 보겠다는 것이다. 둘째, 미·중이 합의를 해도 남·북이 흔들어버릴 수도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전략적 인내는 새로운 정책이 아니다. 미국의 대북정책에는 봉쇄, 개입, 무시 등이 있어왔다. 전략적 인내는 무시 정책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이 북한을 잘 몰라서 곧 붕괴할 것이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건 아니다. 오바마 정부가 이란, 쿠바, 북한에 썼던 정책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주목해 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대 이란 협상의 경우 오바마 정부가 처음부터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영국이나 독일 같은 나라들이 나서서 이란에 대한 생각과 정책을 변화시키는 환경을 조성했고, 거기에 미국이 올라 탄 것이다. 결국 미국의 대북 전략적 인내 정책을 바꾸기 위해서는 미국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천안함 침몰 사건 6주기인 지난 26일 탈북자단체 회원들이 경기도 파주시에서 대북 전단을 날려 보내고 있다. 전단 살포 역시 ‘북한 붕괴주의’의 단면이다.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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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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