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시진핑의 말은 제재와 대화 동시에 하자는 뜻"

박근혜·오바마 대통령 만나 강조한 "유엔 대북결의 전면 이행"의 진짜 의미
서훈 전 국정원 3차장 '창비학당' 강의 지상중계

입력 : 2016-04-03 오후 2:00:20
 
 
시진핑 중국 주석이 지난주 한·미 대통령과 만나 “유엔 대북결의를 전면 이행하겠다”고 말하자 많은 언론들은 ‘중국도 제재 이행을 약속했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서훈 전 국정원 3차장(북한 담당)은 ‘제재를 안 할 수 없지만, 대화도 병행하자’라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서 전 차장은 지난 1일 ‘창비학당’ 강의에서 북한의 전략과 현 정세를 분석하며 이같은 해석을 내놨다. 서 전 차장은 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도 수차례 만난 대북협상의 베테랑으로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 채택의 산파였다. 이날 강의 중 최근 정세와 관련된 내용 일부를 요약 소개한다.[편집자] 
 
북·미가 지난해 말 뉴욕채널을 통해 비핵화와 평화협정 문제를 조율했지만 실패했다. 미국은 ‘북한이 핵활동을 동결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을 복귀시켜 비핵화의 의지를 보여야 회담을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북한은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적대시정책을 해소해야 핵문제가 풀린다’는 입장이었다.
 
북한은 지난 3년간 도발과 대화 시도를 반복했다. 지금은 도발 단계에 와 있다. 그러나 북한 입장에서도 도발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북한은 2013년 2월 3차 핵실험 이후 두 차례(2013년 6월, 2015년 1월) 핵실험을 유예할 수 있다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진전되지 않았고, 올 1월 들어 4차 핵실험을 했다. 평화협정에 관한 북한의 입장은 조금씩 바뀌어왔다.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는 ‘적절한 시기에 별도의 포럼에서 평화체제를 논의한다’는 데 북한이 동의했다. 비핵화를 먼저 시작한 후 적절한 시기에 평화체제 문제를 논의한다는 ‘선후’를 북한이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그 후 네 차례 핵실험이 있고 미국의 ‘전략적 인내’라는 무시정책과 대화의 단절을 겪으면서 북한의 입장이 바뀌었다. 특히 2008년 김정일이 쓰러진 후 마음이 급해지면서 입장을 바꿨다. 평화협정을 우선 논의하거나, 평화협정과 비핵화를 동시에 논의해 정권생존에 필요한 대외환경을 단칼에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전략적 인내를 유지했고,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이는 행동을 우선 보이라’는 요구를 계속 했다.
 
북한은 미국 등과 합의문을 만들 때면 “상호 주권 인정”과 “평화적 해결”이란 문구를 빼놓지 않으려 한다. 지난 3월 초 채택된 유엔 안정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 2270호는 총 52개항으로 되어 있는데, 마지막 부분의 2개항에도 ‘6자회담을 재개한다’ ‘북한의 주권을 존중 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한국 언론들은 거의 주목하지 않은 대목이지만, 중국이 지금 지금 계속 하고 있는 얘기가 바로 그 내용이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만났을 때 “2270호 결의를 확실히 이행하자”고 말한 것은 바로 그런 의미이다. 북한이 잘못된 행동을 했으니 제재를 해야 하지만 ‘민생과 관련된 지원을 끊지 않는다’거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내용까지 다 이행하자는 뜻이다. 제재와 대화를 동시에 이행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중국이 ‘철저한 이행’을 확인했다고 하면 마치 제재의 이행만을 확인한 것으로 보도하고 그렇게 인식한다.
 
◇북한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권 생존’
 
북한의 최종적인 전략 목표는 무엇인가. 결국 항구적인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것이다. 체제를 인정받고, ‘레짐 체인지’(정권교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미관계 정상화가 이뤄져야 하고, 남북간에는 불가침협정을 체결해야 하며, 대외관계가 개선되면서 경제 지원을 받아야 한다. 북한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원하는 것을 쉽게 얘기하자면, 평양에 미국대사관이 들어서고 성조기가 휘날리는 것이다. 워싱턴D.C.에 북한대사관이 들어서는 것이다. 미국의 맥도날드가 평양역과 백화점에 들어가는 것이다. 미국은 맥도날드가 들어간 나라와 전쟁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맥도날드와 코카콜라, 제너럴일렉트릭이 평양에 들어가면서 미국 자본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방과 일본, 남측 자본이 따라 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북한의 경제가 발전하고 정권도 안정될 것이다. 외국의 차관이 들어온다는 것은 차관을 준 나라로부터 안보를 담보를 받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북한 정권은 정치체제(유일독재)와 경제체제의 부조화라는 딜레마적 숙제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경제체제가 개혁과 개방으로 가면서 중산층이 생겨나고 그들의 시민의식이 자라나 인권을 주장하게 되면서 유일독재 권력과의 딜레마가 생길 것이다. 나는 김정은 정권에게 그 숙제를 빨리, 거대한 물결로 안겨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일 준비’는 그때 가서야 애기할 수 있는 것이지,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지금 ‘통일 준비’를 얘기하는 것은 허망하다.
 
김정일은 2000년 정상회담 이후 장성택, 박남기, 박봉주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경제시찰단을 남쪽으로 내려 보냈다. 그 후에 이들을 경제 관료로 중용했고, 같은 해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추진했다. 그래도 김정일은 정치와 경제의 부조화라는 딜레마를 알기 때문에 한발 나갔다가 한발 물러서며 조심스러워 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경제개선조치를 굉장히 폭넓게 하고 있다. 지금 북한에는 시장이 400개가 있고, 휴대전화는 400만대 가까이 보급됐다. ‘돈주’(전주)라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음식점이나 이미용업소 같은 소규모 업소는 70% 이상을 자영업자들이 하고 있다. 돈만 있다면 공장을 가동해서 OEM 생산을 할 수 있다. 개성에서 생산한 물건을 원산에 가져가 팔 수도 있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고, 휴대전화를 통해 가격이 높은 지역으로 물건을 가져다 판다. 북한에서 소비자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은 희망이다. 이것이 장차 시민의식, 인권의식으로 자라날 것이다. 북한의 변화를 두 마디로 정리하면 자율화와 분권화다.
 
◇비핵화와 평화협정은 ‘출구’가 같아
 
우리는 뭘 어떻게 해야 하나. 통일의 미래로 가는 경로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북한이라는 독특한 대상을 상대하려면 대증치료와 원인치료를 다 해야 하는데 현재는 대증치료 수준에 머물러 있다. 북한이 워낙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해 놨기 때문에 제재에 반대하기는 힘들지만, 제재에 매몰되면 우리가 갈 길을 잃어버린다. 제재는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란에 대한 제재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제재와 동시에 많은 협상과 대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결실이 맺어진 것이다. 마지막 결실은 협상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치료에 나서야 하는데, 대전제가 있다. 김정은 정권에 대한 인정 문제다. 인정을 할 것이냐, 정권 붕괴를 추구할 것이냐. 도덕적·윤리적·규범적으로 보면 인정할 수 없는 정권이지만, 김정은 정권이 붕괴한다고 해서 통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김정은 정권 붕괴가 통일로 이어진다고 오해하고 있고 많은 언론들이 오도하고 있지만 절대 그렇게 되지 않는다. 국가 붕괴와 정권 붕괴를 오해하는 것이다. 정권이 붕괴된다고 해서 국가가 붕괴되지는 않는다. 북한 정권이 붕괴되면 우리 군대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올라갈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북한은 국제법적으로 유엔 회원국이어서 그럴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 없다. 전시작전권도 없다. 김정은 정권을 인정해주기 싫지만, 어떤 선택을 할지 이제는 결정해야 한다. 특히 정부는 결정해야 한다. 한반도 문제를 책임지고, 통일로 가는 초석을 놓고 싶다면 결정해야 한다.
 
대안은 노태우 정부 때부터 확립해 놓은 3단계 통일방안과 남북기본합의서에 나와 있다. 화해협력을 통해 국가연합으로 가고, 그 후에 통일국가로 가는 경로다. 이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이 과정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대북정책은 개입정책, 즉 화해협력정책이다. 그런 원칙이 세워졌다면, 우리의 당면 목표는 북한 핵활동을 동결시키고 남북의 군사적 충돌을 예방하는 것이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대북 ‘전략적 인내’로 8년을 보내는 동안 북한은 핵실험을 세 차례 했고, 핵능력은 고도화됐다. 잠수함에서 핵미사일을 발사하는 실험을 몇 차례 했을 정도로 투발수단도 진전됐다. 시간을 주면 줄수록 북한의 핵 능력과 투발수단은 고도화할 것이다.
 
북한은 비핵화에 앞서 평화체제를 논의하면 비핵화 문제도 해결된다는 입장이다. 시진핑이 지난주 미국에 가서 북한의 입장을 거들고 나섰다. 동시에 하자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평화협정과 비핵화 논의를 동시에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북한의 핵이 완전히 없어진 상태를 확인하지 않고 어떻게 우리가 평화협정에 서명할 수 있겠나? 비핵화와 평화협정은 ‘출구’가 같은 문제다. 북한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보장되지 않고서는 핵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두 가지 논의를 다 시작해야 한다. 논의를 시작하면 핵 동결이 가능하고, 군사적 충돌 위험성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왜 명분론에 집착해 평화협정 얘기를 못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 때문에 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명분론에 집착한다. 이제는 완벽하게 실리적이고 실용적으로 가야 한다.
 
북한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거나 퍼주지 않겠다는 낮은 수준의 원칙, 원칙 아닌 원칙에 집착하면 안 된다. 정책적인 차원의 원칙은 첫째, 북한을 잘 알아야 한다. 북한을 깊이 알지 못하면 처방이 나올 수 없다. 둘째, 상황을 악화시키는 정책 선택을 하면 절대 안 된다. 군사 충돌의 위험성을 높이는 정책 선택은 무모하고, 실리적이지 않다. 셋째, 문제의 방임이나 후퇴가 아니라 문제의 해결을 지향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북한에 대해 몹시 화가 나있다. 냉정을 회복해야 한다. 기분과 감정을 가지고 할 때가 아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서훈 전 국정원 3차장이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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