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바람아시아
옷장을 열었다. 수북한 옷가지를 이리저리 뒤적여보지만 만족스럽지 못하다. 한때는 분명 예쁘게만 보였던 옷이었는데 입을 만한 게 없다. 옷을 갖춰 입고 거울 앞에 서본다. 부족함이 느껴지지만 별 수 없다. 길을 나선다. 거리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은 옷을 잘만 멋있게 입고 다닌다. 저 사람들의 옷장에는 어떤 옷이 있는지 궁금증이 인다.
‘옷장을 열면’은 “다른 사람의 옷장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호기심에서 시작했다. 2014년에 경희대학교 학생이 주축이 되어 온라인 패션 커뮤니티로 출발했다. 지난해 11월 25일, 경희대학교 청운관 지하 2층 학생식당 옆에 편집숍을 연 ‘옷장을 열면’은 다른 사람의 옷장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옷장을 열면’은 공생을 추구한다. 옷장에서 풍기는 냄새가 사뭇 다르다. 코를 말려버리는 나프탈렌 냄새가 아니다. 이전에는 맡아보지 못한, 그래서 발길을 끄는 내음이다. ‘옷장을 열면’을 책임지고 있는 신희선 매니저(23)를 만나 옷장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내음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그녀의 함께한 일문일답.
경희대학교 청운관 지하 2층 학생 식당 옆에 위치한 ‘옷장을 열면’ 매장. 사진/바람아시아
- ‘옷장을 열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부탁한다.
“‘옷장을 열면’은 옷을 만드는 제작자와 그것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편집숍이다. 지금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나는 신진 디자이너나 디자이너 지망생 그리고 의상학과 학부생에게 자신이 제작한 옷을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신진 디자이너의 옷을 취급하는 편집숍은 이미 있다. 그러나 판매 중개로 떼는 수수료가 높다보니 옷을 팔아도 디자이너에게 돌아가는 몫은 별로 없다. 자연스레 가격도 높아지니 소비자는 옷이 예뻐도 사기가 힘들다. ‘옷장은 열면’은 편집숍에서 떼는 수수료를 조금 낮춰서 수익을 디자이너나 의상학과 학생에게 돌려주는 일을 하고 있다.다른 하나는 중고의류 판매 활성화 사업이다. 옷장에 있는 안 입는 옷을 매장에 입점 신청하고 맡기면 그것을 판매하고 수수료를 제외한 수익을 돌려드린다. 중고의류를 판매함으로써 사람들 사이에 옷이 순환이 될 수 있게끔 하고 있다.”
- ‘옷장을 열면’이 시작된 계기는 어떻게 되나?
“2014년에 처음으로 친한 학교 후배인 채수영 씨와 ‘옷장을 열면’ 인터넷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그때는 그저 옷이 좋았고 “다른 사람은 옷을 어떻게 입고 다닐까?”, “다른 사람 옷장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있었다. 처음에는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해 커뮤니티 활동을 했다. 그러다가 알게 된 게 신진 다자이너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또 사람들은 옷을 사고 싶은데 가격이 너무 비싸니 주저하는 게 안타까웠다.사실 처음에는 문제의식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패션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고 거듭되는 패션계 열정페이 문제를 접하며 문제의식이 조금씩 쌓였다. 그러던 찰나에 매장을 열 수 있는 기회를 만났다. 2015년 9월에 경희대학교소비자생활협동조합에서 ‘대안프로젝트 창업지원사업’을 했다. 밑져야 본전이니 참가했는데 덜컥 당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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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장을 열면’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해서 정했나?
“동업을 시작했던 채수영 씨가 만든 걸로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의 옷장에는 무엇이 있을까?”, “다른 사람은 무엇을 입고 다닐까?”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이름을 이렇게 지은 것 같다.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또 ‘옷장을 열면’ 매장 컨셉이 문을 항상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옷장을 열었다는 느낌을 주고자 문을 항상 활짝 열어놓고 있다.”
- ‘옷장을 열면’이 다른 패션 커뮤니티와 차별화되는 부분은 무엇인가?
“사실 이 점이 우리가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다. 패션 관련 메이저 잡지사도 있고 SNS만 봐도 패션을 다루는 커뮤니티가 많다. 차별화를 두고 싶은 생각은 있다. 다른 매체와 다른 점을 꼽자면 사람을 중심에 둔다는 것이다. 언론학을 전공했다 보니 옷이라는 게 매개체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의복을 넘어서서 옷을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수단으로 봤다. 옷을 통해 사람들끼리 소통하는 모습을 꿈꿨다. 아직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차별점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노력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할 ‘데일리룩 리뷰’ 촬영. 사진/바람아시아
- ‘옷장이 열면’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옷 입는 즐거움이다. 또래에게 옷 입는 즐거움과 재미를 안겨주고 싶다. 옷의 모양이 제각각인 만큼 옷에서 다양한 재미를 경험할 수 있다. 또 옷을 통해 기분 전환도 가능하다. 창업지원사업에 참가할 당시 기획서를 쓰기 위해 자료 조사를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학생들이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워지면 의류비를 가장 먼저 낮춘다. 한정된 용돈 안에서 통신비, 주거비, 식비 제외하면 쓸 수 있는 돈이 넉넉하지 못하다. 어떻게 보면 20대 때가 한창 꾸미고 예쁘게 보이고 싶기도 한 나이인데 옷 입는 즐거움이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경제적인 이유로 옷에 대한 설렘이 사라지는 게 아쉽다.”
- 지난해 11월 25일 ‘옷장을 열면’이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운영한 지 3개월이 넘었는데 그간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 판매자와 소비자의 반응은?
“판매자를 많이 섭외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의상학과 학부생이다 보니 학기 중에 상품을 제작해 판매가 될 만한 것을 가져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더라. 그래도 기억에 남는 판매자가 있다. 경희대학교 의상학과 학생이 만든 머플러가 있었다. 그게 처음 들어오자마자 다 팔렸다. 수제로 만든 거고 목도리다 보니 하나 당 24,000원에 팔았다. 저렴한 가격이 아니었는데도 1차로 들어온 게 다 팔려서 추가로 더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었다. 그 학생은 지금 다른 편집숍에 입점한 걸로 알고 있다. 아무래도 자신이 만든 상품이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감과 가능성을 시험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소비자는 가격적인 측면에서 많이 만족해하는 편이다. 또 매장에 오시면 집에 있는 안 입는 옷을 대신 팔아드린다고 설명을 드린다. 중고옷 판매 대행도 반응이 좋다. 제 친구 중 한 명은 중고옷 판매로 20만 원을 벌었다. 처음 시도하는 게 어렵지 자신이 입던 옷이 판매가 ‘된다’라는 걸 느끼면 계속 오시는 것 같다.”
-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
“아무래도 카드 사용이 많다보니 카드 수수료와 부가세를 빼면 실질적으로 남는 이익이 없다. 5000원짜리 옷을 팔면 몇 백원 떨어지는 꼴이다. 매출액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그런데 아무래도 수익을 대부분 판매자에게 돌려드리다 보니까 남는 게 별로 없다.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가게 운영을 계속하고 직원도 써야 하는데 급여를 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운영진끼리 돌아가면서 매장에서 근무를 하는데 사실상 열정 페이다 보니 피로도가 높다.홍보가 미진한 것도 부담이 된다. 애초에 추구했던 게 수수료를 낮추는 대신 박리다매로 이익을 남기는 거였는데 잘 안 되고 있다. 사람들이 아직 잘 모를뿐더러 그냥 옷가게인 줄 아는 분도 있다. 전단지도 돌리고 오프라인에서 홍보도 적극적으로 하려고 했는데 매장에 인원을 배치하는 게 급선무다 보니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사진/바람아시아
- ‘옷장을 열면’을 운영하면서 느낀 의류산업의 문제점은 어떤 것이 있나?
“크게 보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옷 자체에 대한 것, 예를 들면 옷의 질, 가격, 디자인 등이고 다른 것은 유통이다.학생들이 옷을 대부분 스파(SPA)브랜드에서 많이 산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패스트(Fast) 패션이라고 해서 싸게 사서 며칠 입고 버릴 수 있는 옷을 구매한다. 그러다보니 옷의 가치가 저하되었을 뿐만 아니라 옷을 금방 버리니 환경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스파 브랜드 같은 경우 단가를 낮추기 위해 해외에서 OEM(주문자 상품 부착품, Origianl Equipment Manufacturing) 방식으로 생산하는데 이로 인해 노동착취 문제도 생긴다.가격적인 측면에서 문제는 고가의 의류가 제값을 못한다는 거다.
좋은 원단을 써서 품질이 우수하면 가격이 비싸도 상관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중간 단계에서 폭리를 취하기 때문인데 그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대기업의 횡포도 의류산업 종사자를 힘들게 한다. 대기업이 기존에 잘 나가는 디자인을 카피해서 자사 유통망을 통해 판매한다. 당연히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차지하는데 때문에 신진 디자이너가 설 자리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예쁘게 만들어도 유행될 것 같다 싶으면 카피해서 뿌려버리니 어쩔 수 없다.최근에 의상학과 학생들과 협업을 해서 커먼그라운드에 입점을 했다. 거기에 있는 매장 사장님들이 장사가 너무 안 된다고 하신다. 앞 가게 사장님이 온라인 시장에서 출혈경쟁에 가까운 가격으로 옷을 팔다보니 오프라인 시장이 다 죽어버렸다고 했다. 오프라인 시장이 활성화 되어야 일자리도 생기고 돈의 순환이 일어나는데 지금 이 상태로는 부가 편중될 수밖에 없다. 파이가 작아지고 있는데 거기다 몫이 편중되다 보니 오프라인 의류 매장이 많이 힘들다.”
-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나만의 계획이랑 ‘옷장을 열면’의 계획이 조금 다를 수는 있을 것 같다. 나는 지금 졸업생 신분으로 사회에 떨어진 상태다. 부모님도 어서 취업하기를 바라고 있다. 언제까지나 여기에 있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개인적인 계획은 ‘옷장을 열면’을 잘 키워놓고 후배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그렇게 가게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옷장을 열면’의 좋은 계획은 여기서 번창을 하고 부자가 되는 건데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사람들이 조금 더 많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이름을 알아주셔도 좋겠지만 그보다는 ‘옷장을 열면’의 취지와 추구하는 가치를 많이 알아주시길 바란다. 앞으로 ‘옷장을 열면’을 많이 알릴 계획이다.”
사진/바람아시아
- ‘옷장을 열면’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당장 오늘 내일이 힘드니까 최종 목표까지는 생각을 안 해봤다. ‘옷장을 열면’이 창업지원사업에 선정되고 동업했던 창업자 채수영 씨와 이런 얘기를 했다. “잘 해보자.” 처음에는 문화 복합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단순히 그냥 옷만 있는 게 아니라, 벽면에 사진을 걸어서 전시회도 하고 게임기도 설치해서 재미있게 매장을 꾸며보고 싶었다. 학교다 보니 제약이 많았다. 최종 목표는 문화 복합 공간을 만드는 거다. 옷을 사러 왔을 때 옷뿐만 아니라 좋은 추억과 기억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옷장을 열면’ 운영진. 사진/바람아시아
신 매니저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옷장을 열면’ 커뮤니티를 만들 때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화보도 찍고 잡지도 내보자고 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냉담했다. 계획을 세우다가 “꿈같은 이야기다.”라고 말하며 포기한 친구도 있었다. 창업지원사업에 지원할 때도 회의적인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아무도 매장을 실제로 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근데 했거든요. 처음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단지 좋아서 계속 했는데 말로만 했던 것들을 뒤돌아보니 이루어 놓았더라고요.”
기자가 꿈이었다는 신 매니저는 사회에 보탬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지금 이렇게 옷가게를 열 줄은 몰랐다는 신 매니저는 자신이 하는 일을 돌아보며 “노선은 바뀌었지만 20살 때의 꿈을 아예 버리지는 않은 것 같다.”라고 했다. 신 매니저는 “성공한 사람도 아닌데 인터뷰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지만 거듭되는 반대에도 지금까지 달려온 발자취는 세상에 작지만 의미 있는 울림을 낳았다.
옷장에서 풍기는 냄새가 특별했던 이유는 거기에 담겨있는 고민 때문이었다. ‘옷장을 열면’은 우리가 처한 문제를 어떻게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그래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울림을 낳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오늘도 활짝 열린 옷장은 지나는 사람을 반기고 있다. 그리고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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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