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인사이트)글로벌 기업들의 경단녀 채용법…'리턴십'이 뜬다

재취업희망 전문직여성 위한 '경력직 인턴십', 금융·IT중심으로 활기

입력 : 2016-04-20 오후 12:04:50
12년간 전업주부로 두 딸을 키운 마리나 그루티어스는 최근 구직에 나섰다. 그는 12년 전 음반회사인 BMG에서 고객 확보 및 직접 마케팅 담당 간부였다. 하지만 음악 산업은 CD에서 MP3, 다시 스트리밍 음악으로 전복되는 등 완전히 변했다. 담당했던 업무의 명칭도 '직접' 마케팅 대신 '통합' 마케팅 혹은 '인바운드' 마케팅으로 바뀌었다. "알고 있던 분야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는 3개월간 1주일에 50개씩 이력서를 써냈지만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6개월 후 그는 데이터회사 리턴패스의 마케팅 애널리스트가 됐다. 리턴패스에서 맡은 일은 예전과는 약간 다르지만 보수는 거의 같았다. 그의 두 딸은 12년 동안 자신에게 헌신한 엄마가 도전 끝에 다시 커리어 우먼이 된 것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루티어스의 재취업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포브스 등 주요외신은 그가 수료한 리턴패스의 '경력직 인턴십'에서 해답을 찾았다.  
 
육아 등을 이유로 오랜 기간 경력 단절을 겪은 후 재취업을 원하는 전문직 여성들이 새로운 인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31일 미국의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열린 헬스케어 산업 채용 박람회에서 구직 활동을 하고 있는 한 여성이 채용 담당자에게 질문하고 있는 모습. 사진/로이터
 
인재 확보 전쟁 속에 글로벌 기업들이 '경력직 인턴십'으로 재취업을 원하는 여성 인력을 유치하고 있다. 출산 및 육아 등으로 한동안 직장을 떠나있던 이른바 '경단녀(경력단절여성)'의 잠재력을 보고 우수한 인재 조달처로 주목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이다. '리턴십(Returnship)'이라고도 부르는 '경력직 인턴십'은 일터로 복귀하고자 하는 전문직 여성들이 새 직장에 무리 없이 정착할 수 있도록 고안된 교육 과정으로 미 금융권을 시작으로 도입됐다. 기업들은 자체적인 리턴십을 개설·운영하거나 외주 기관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을 도입해 사용한다. 최근에는 경력단절 여성을 대상으로 리턴십을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곳도 생겨났다. 리턴십은 재취업을 원하는 여성과 인재 조달이 필요한 기업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윈-윈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리턴십은 지난 2008년 미국에서 골드만삭스가 재취업한 경력직 사원 교육을 위해 처음 개설했다. 영어로 복귀를 뜻하는 리턴(return)과 인턴십(internship)을 조합해 만든 단어다. 이후 모건스탠리, 메트라이프, 크레딧스위스 등 굵직한 금융 회사들이 잇따라 도입하며 금융업계에서 직장을 떠났다가 복귀하는 여성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리턴십은 단기 컨설팅 프로젝트와 비슷한 형태로 운영된다. 재취업을 원하는 참가자들은 자신의 기술과 경력에 맞는 프로젝트를 할당받고 수준에 따른 보수를 지급 받는다. 회사는 리턴십 참가자들이 그동안 단절됐던 경력을 재부팅하고 녹슬었던 전문지식을 업데이트할 기회를 마련해 준다. 현직 담당자들과 멘토링 및 네트워크 기회도 부여해 참가자들이 커리어를 재도약하고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골드만삭스는 리턴십 종료 후 수료자들의 정식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데 지금까지 50%가 정규직으로 전환·고용됐다. 리턴십을 마친 한 참가자는 "4년간의 경력단절 후 다시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 몰랐다. 가사와 일을 병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리턴십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을 스타처럼 대우했다. 자신감을 얻고 회사에서 전혀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여성 인재 부족한 IT 기업들, 경단녀 공략
 
최근에는 인력난을 겪고 있는 IT 기업들이 리턴십을 통해 경력단절 전문직 여성에게 어필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실리콘밸리 지역 연구소가 집계한 실리콘밸리의 실업률은 4% 이하로 캘리포니아주나 미국 전체 실업률(5.0%)보다 훨씬 낮다. 실업률이 낮으면 기업으로서는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기가 힘들어진다. 실제로 과거 이베이를 이끌었던 존 도나호 페이팔 이사회 의장은 "IT 기업들은 어떻게 인재를 확보할지 늘 고심한다"고 말한 바 있다. 도나호 회장은 경력단절 여성을 고용하는 것은 ‘경쟁우위를 주는 요소’라고 덧붙였다.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근무환경을 자랑하는 IT기업조차도 남녀 성비 불균형이 심각한 상황으로 여성 인재 투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태다. 
 
IBM, 알파벳(구글), 페이팔 등은 인턴십을 통해 경력이 단절된 기술 전문직 여성이 일터로 돌아오게 하고 있다. 빠른 기술발전 속도 때문에 산업을 떠났던 엔지니어가 복귀하는 데 어려움을 겪자 기업이 직접 나서 일터로 돌아온 여성 엔지니어가 예전의 기술을 갱신하고 습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특히 IBM은 재취업을 원하는 여성 인력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2012년에는 재취업 여성 고용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인공지능, 클라우드컴퓨팅, 보안, 데이터분석 등을 다루는 교육과정을 마련했다. IBM은 소셜미디어에 회사를 떠난 여성 직원들을 연결하는 졸업자 네트워크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많은 전직 여성 직원들이 IBM으로 돌아오도록 했다. 지난해 IBM에 복귀한 메리 코벤슈라그 컴퓨터프로그램 매니저는 "만약 회사로부터 연락을 받지 못했다면 IBM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14년 자전거 사고로 다친 남편 간호를 위해 회사를 떠났다 일년 뒤 예전 IBM 멘토로부터 인공지능 개발직에 대한 연락을 받고 복귀할 수 있었다. 신규 IT회사에 밀려 인기가 떨어지던 IBM은 이같은 여성 재취업을 통해 성공적으로 인재를 유치할 수 있었다. 린지 맥킨타이어 IBM 인력자원 부회장은 "(재취업) 여성 가운데 유능한 인재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재취업 여성 고용에 대한 회사간 경쟁이 높지 않아 유능한 인재 영입도 쉬운 편이다. 소비자관계경영 스타트업 메달리아는 재취업을 원하는 전문직 여성을 공략한 케이스다. 에이미 프레스만 메달리아 공동설립자는 5년전 회사를 세웠을 때 직원을 구하느라 어려움을 겪었는데, 스탠포드경영대학원 동기생 중 하나가 6년 동안 육아에 전념한 후 재취업을 원한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해 영입할 수 있었다. 프레스만은 다른 기업들이 보지 못하고 있는 유능한 인재를 쉽게 채용하는 기회를 얻었다. 
 
리턴십 수료자 '정규직 전환율' 높아
 
최근에는 경력단절 전문직 여성의 취업을 전문적으로 돕는 회사도 생겼다. 이들은 리턴십 등 교육 과정을 자체 개설해 재취업 희망 여성과 구인 기업을 연결한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스타트업 투자회사 '지에스브이랩(GSVlabs)'의 마케팅 담당자 다이안 플린은 "10년의 공백기를 거친 후 효과적으로 일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며 지난해 여성 재취업을 위한 '리부트 커리어 엑셀레이터(Reboot Career Accelerator)'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리부트 프로그램은 잠재력 있는 기술직 여성들이 재취업 후 근무를 시작하기 전에 선택적으로 등록할 수 있는 8주짜리 교육 과정이다. 다양한 커리큘럼으로 참가자들이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과목을 선택해 교육 받을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IBM으로부터 최초 자금을 조달 받아 구축됐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프로그램을 수강생들을 자사 캠퍼스로 초대하고, 애플과 링크드인의 직원들이 강사로 나서는 등 산업과의 연계를 강화한 프로그램이다. 
 
미국의 데이터솔루션 업체 '리턴패스'는 경력직 여성들의 재취업을 돕는 20주 과정의 유급 리턴십 만들어 기업들에 제공하고 있다. 지난 10월부터 5개의 업체가 리턴패스의 리턴십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그 중 페이팔은 올해 초 리턴십 수료자들 가운데 소프트웨어엔지니어 9명을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매트 불럼버그 리턴패스 회장은 지난달 회사에서 재취업 교육을 담당하는 '패스포워드(Path Forward)'를 비영리기관으로 분리·독립한다고 밝혔다. 리턴패스의 경력직 인턴십 수료자의 80%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등 성공을 거두자 사업을 분리해 운영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리턴십은 직장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는 전문직 여성들의 요구에도 부응하고 있다. 비영리 연구기관 탤런트이노베이션센터가 지난 2010년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전문직 여성의 31%가 육아 등의 이유로 자발적으로 평균 2.7년간 직장을 떠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수나 경력 등에서 눈높이를 낮춰 직장을 옮긴 여성 4명중 3명은 육아 때문에 이직을 선택했다. 직장을 떠난 여성 10명 중 9명이 재취업을 원하고 있고, 73%는 재취업을 했으나 40%만이 전문직, 정규직 근무로 귀환했다. 로라 셔빈 센터장은 경력단절 여성들의 재취업에 대한 높은 사회의 벽이 존재하며 그로 인해 여성들이 결국 단순한 업무나 보수가 적은 직장을 선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기업은 '다양성·경쟁력' 확보
 
인재 확보에 주력하는 기업들은 대학을 갓 졸업한 젊고 싼 신입사원만을 고용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리턴십 프로그램을 개설한 미국의 오디오기술회사 레디톡(ReadyTalk)의 코트니 그라함 인사부장은 "회사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구성원을 원한다"며 다양성을 강조했다. 육아를 담당했던 사람도 회사에 "독특한 가치"를 불러올 수 있다고 덧붙이며 자사의 리턴십 프로그램을 학부모 모임이나 페이스북의 학부모 그룹 등에 홍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디언은 기업들이 리턴십에 나서는 것이 자선이나 봉사 목적의 활동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컬스티 하우 크레딧스위스 인사담당자는 "지원자들의 높은 수준과 스펙에 놀랐다"고 말하며 리턴십은 "미개발된 잠재력 높은 여성 인력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중간 관리자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울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한다는 실질적인 장점도 있다. 또한 고용계약을 맺기 전에 지원자의 능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편리한 경력직 사원 채용 방식이기도 하다. 
 
신지선 토마토CSR연구소 연구위원 jise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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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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