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용민기자] 노래 한 곡이 5월의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아이돌 그룹의 노래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7080’ 가요도 아니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노래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이 곡은 1997년 정부가 5·18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후 2003년부터 2008년까지 기념식 본행사에서 기념곡으로 지정돼 제창됐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2년차인 2009년부터 본행사에서 제외되고 식전행사에서 ‘제창’이 아닌 합창단의 ‘합창’ 형태로 불리게 됐다. 일부 5·18 단체 회원들은 이에 항의하며 기념식 참석을 거부하기도 했다.
야당은 지난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이 곡의 기념곡 지정을 건의했다. 박 대통령은 “국론 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찾아보라고 지시하겠다”고 답했다. 누가 들어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신호였다. 당장 기념곡으로 지정되지는 않더라도 일단 과거처럼 제창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박근혜 정부 하반기 '협치'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기대는 사흘 만에 물거품이 됐다. 보훈처는 16일 이 곡을 합창으로 부른다는 기존 방침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제창으로 전환하면 또 다른 갈등만 유발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보수단체가 반발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여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재고를 요청했다. 민경욱 원내대변인은 “이 기념식의 내용과 절차에 대해서는 유족들과 광주시민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며 “보훈처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보훈처의 재고를 요청한다”고 논평했다.
야당은 박승춘 보훈처장의 해임건의안을 제출키로 했다. 그러나 차관급 공직자가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한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이번 결정은 박근혜 정부의 의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야당의 요구에 긍정적인 답변을 했지만 결국 말뿐이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박 대통령은 총선 참패 이후 민의를 수용하고 협치를 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래서 여야 3당 원내대표단을 불러 회동을 했다. 분기마다 3당 대표들과 만나겠다는 약속도 했다. 안보 상황과 관련해 정보를 더 많이 공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보훈처 결정을 보면 이 다짐들이 과연 어디까지 실현될지 의심스럽다.
새누리당의 논평처럼 이번 논란은 유족과 광주시민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 보수단체와 유족 등이 대립한다면 직접 연관이 있는 유족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합당하다. 동시에 보수단체에 대한 설득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이번 보훈처 결정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아직까지 협치의 끈을 놓은 것이 아니라면 국민들에게 분명히 알려야 한다.
정치부 최용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