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4년 만에 제6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가 아쉽게도 수상에는 실패했다. 비록 한국영화는 빈 손으로 귀국하게 됐지만, 이번 영화제는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었던 현장이었다는 평가다.
칸 국제영화제가 22일 폐막한 가운데 영예의 황금종려상은 영국 켄 로치 감독의 '아이, 다니엘 브레이크'가 차지했다. 2위에 해당하는 그랑프리(심사위원대상)는 캐나다 자비에 돌란 감독의 '단지 세상의 끝', 심사위원상은 영구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의 '아메리칸 하니'가 받았다. 감독상은 프랑스의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퍼스널 쇼퍼'와 크리스티안 문주(루마니아) 감독의 '바칼로레아'가 수상했다.
영화 '아가씨'의 주역 조진웅-김태리-박찬욱 감독-김민희-하정우가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비록 '아가씨'는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현지에서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영화제 기간 중 국에 추가 판매를 통해 총 176개국에 팔리며 역대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많은 국가에 수출하는 영화가 됐다. 호평을 바탕으로 칸 필름마켓 바이어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던 점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CJ E&M 한 관계자는 "해외 바이어들이 부스를 찾으면서 '축하한다'는 말부터 전했다. '아가씨'의 영화적 완성도에 대한 만족감이 전례 없는 규모의 해외 판매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아가씨'는 일제강점기 1930년대를 배경으로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상속녀 아가씨와 그 재산을 노리는 사기꾼 백작과 짜고 하녀가 된 소녀의 이야기를 담는다. 김민희와 김태리, 하정우와 조진웅이 주연을 맡았다.
현지 데일리 평점은 다소 엇갈렸으나 각국 유수의 매체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영화라고 극찬했다. 특히 두 여배우인 김민희와 신예 김태리에 대한 평가가 후했다. "연속되는 반전과 구조상의 아름다움을 지닌, 모든 면에서 즐거운 스릴러"(프랑스, 트르와 쿨뤠르), "기발하고 매혹적인 영화"(프랑스, 르 주느란 뒤 디망슈), "커다란 유희가 있는 스릴러 영화"(영국 가디언) 등 각국 언론은 '아가씨'에 호평을 남겼다. 또 엘레나 폴라끼 베니스 국제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는 "예상을 넘는 파격에 놀라움을 느꼈다. 아름답게 담긴 영상미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고 평가했다.
영화 '부산행' 해외 포스터. 사진/NEW
'아가씨'뿐 아니라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과 나홍진 감독의 '곡성'도 현지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번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된 '부산행'은 한국영화의 포문을 열었다. 상영 중간 중간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후반부에는 감동적인 눈물도 선사했다고 한다.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역대 최고의 미드나잇 스크리닝이었다”며 “연상호 감독의 차기작은 경쟁 부문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경쟁부문에 오른 '곡성'은 영화제 상영 뒤 각국 언론과 평단에서 '올해의 영화'로 꼽혔다. 일부 언론은 이 영화가 경쟁이 아닌 비경쟁에 초청된 것을 이상하게 여기기도 했다. 아울러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은 나홍진 감독에게 “다음에는 경쟁(부문)에서 보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3년간 한국영화는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지 못할뿐더러 해외 영화계의 관심에서도 멀어지면서 위기감이 돌았다. 하지만 이번 영화제에서만큼은 초청작품 모두 현지에서 화제를 모았다. 비록 수상의 영광은 얻지 못했지만, 한국영화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