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곡성' 나홍진 감독 "신이시여, 컴백하소서"

입력 : 2016-05-19 오후 2:45:06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황해' 개봉이 끝나고 얼마 뒤에 나홍진  감독의 가까운 가족이 유명을 달리했다. 죽지 않아야할 상황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충격을 받은 나 감독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유를 찾기 시작했고, 그 이유가 이야기로 확장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곡성'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데, 죽는 데는 이유가 없는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는 이 영화는 개봉 후 일주일이 채 안된 상황에 300만 관객에 육박하고 있다. 엑소시즘과 오컬트 등의 대중적인 장르와도 거리가 먼 '곡성'은 평단과 관객의 호평 속에 연일 승승장구 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가 개봉하고 일주일이나 지났음에도 일부 관객들은 아직도 나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혹자는 일본인을 일본군, 종구(곽도원 분)을 피해자, 무명(천우희 분)을 독립군으로 해석하는 등 정치적인 의도가 분명하다는 예상 밖의 시각도 내놓고 있다. 네티즌들 역시 저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는 등 온라인 안팎으로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나 감독을 만났다. 연일 쏟아지는 호평에 여유를 드러낸 그는 "이 영화는 신에 대한 불신으로 출발한 영화"라며 "신에게 질문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나홍진 감독.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다음은 일문일답. 
 
- 영화가 베일을 벗자마자 평단의 호평이 쏟아졌다. 기자나 관객들의 호평을 예상했는지. 어떤 느낌이 드나. 
 
▲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절대 못했다. (생각) 저보고 이제 영화 찍지 말라는 얘기로 해석하면 되나. 이건 뭐 영화 그만 찍으라는 얘기다. 사실 정말 긴장을 많이 했다. 오랫동안 준비해서 그런지 긴장이 심했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칭찬을 해주니까, 갑자기 다크해지는 게 '다음 작품은 뭐하라고 이러시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 관객들 반응은 살펴보고 있는지.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이 가능한 영화다. 그 중 누군가는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영화라고도 하더라. 정치적인 의미를 담은 부분이 있나. 
 
▲ 일제강점기라고 말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기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의도는 없었다. 특정 정치인을 의식하게 하려는 의도도 없었다. 이렇게 말을 해야 되는 거 아니냐. 
 
- 사람들이 왜 이렇게까지 다양하게 해석하는 것 같나. 
 
▲ 그 이유는 내가 그렇게 해석하면 되는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표면적인 플롯은 명확하다. 뭔가를 계속 심어두니까 '저 놈이 무슨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게 뭐냐'고 계속 의심하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생각도 있다. 다만 나는 공식을 만든다는 태도로 임했다. 어떤 해석이 가능하게끔 말이다. 관객들이 어떤 해석을 하든 나는 그 해석 모두를 지지한다. 하지만 내게 정치에 해당하는 메시지를 던진다는 의도는 없었다. 
 
- 엔딩이 달라졌다. 본래 시나리오에는 운전하는 일광(황정민)의 몸 속에 일본인(쿠니무라 준)의 혼이 들어가고, 차가 천우희를 지나치면서 갑자기 전복되는 것으로 나와있다. 하지만 영화는 달랐다. 시나리오에 해당하는 엔딩을 실제로 찍었다고 들었는데 통편집한 이유는 무엇인지
 
▲ 시나리오부터 반전이냐 아니냐 말이 많았다. 내가 내용을 복잡하게 섞어놓기는 했지만 반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많은 분들이 시나리오의 엔딩 같은 반전이 필요한 거 아니냐는 식으로 얘기를 했다. 결말이 너무 열려 있어서, '보험'으로 찍어둔 장면이다. 편집실에서 최종 결정할 생각이었다. 필요하면 넣고, 중언이면 빼겠다고 공지했다. 어떤 엔딩을 선택했든, 아마 호불호의 퍼센티지(%)는 비슷할 거다. '좋았다'와 '나빴다'는 반반일텐데, 나는 빼는 것을 선택했다.
 
나홍진 감독.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 이 영화의 플롯이 명확하다고 했다. 엄청 꼬아놓은 이 영화를 두고 어째서 플롯이 명확하다고 하는 건가. 
 
▲ 일본인과 부제(김도윤 분)의 이야기만 버리면 된다. 이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다른 얘기다. 연관이 아주 없진 않지만, 메인 플롯과는 연관이 없다. 내가 교차만 시켜놨을 뿐이다.  
 
그 장면은 일종의 보너스 영상이다. 관객들에게 던져놓은 미끼이자 선물이다. 관객에게 묻는 거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코스프레를 하는 듯한 악마의 형상을 한 이가 있는데 당신이 부제의 입장이라면 이 악마로 보이는 것을 신으로 경배하겠느냐, 아니면 다른 하늘을 보고 '주여'하며 읊조리겠느냐라고 묻는 거다. 아예 다른 영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럼 플롯이 명확해진다. 
 
- 그럼 천우희는 신으로 염두에 둔 건가.
 
▲ 아예 처음부터 그렇게 박아놓고 시작했다. 한국의 신은 여자라고 생각했다. 성경적으로 해석한 게 아니라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한 거다. 딱 천우희처럼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 한국의 신이 있다면, 종구가 일본인을 유괴하는 모습을 산 위에서 바라보는 무명의 얼굴이 신의 형상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신이다. 
 
- "이 영화는 신에 대한 불신으로 출발했다"고 말했었다. 가족의 죽음으로부터 질문이 생겼고, 질문을 거듭하다 끝내 영화로 만들어진 거다. 결국 답을 찾지 못했고, 그래서 신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든 것인가.
 
▲ 그렇다. 이 영화는 말했듯이 플롯이 명확하다. 동네에 이상한 현상이 생기는데, 일본인 하나가 의심스럽다. 그 와중에 내 딸이 아프게 된다. 그리고 죽도록 방어하는 영화다. 
 
그러면서 남는 게 무명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무명에게 질문을 던질 것이다. '신이냐 악이냐', '누가 죽인거냐', '사람이냐 귀신이냐', 뭐 이런 것들일 거다. 만약 신이라면 '왜 아무 것도 안해', '왜 방관하고 있냐', 이런 질문도 할 것이다. 관객들이 무명을 향해 던지는 질문이 곧 내가 신께 여쭙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 무명이란 인물을 신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는데, 종구를 구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무명은 종구의 가족을 구할 의지가 있었던 것인가. 만약 구할 의지가 있었다면 종구에게 책임을 묻거나, 의심을 사는 발언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 그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다. 신이 있다면 진짜 구할 의지가 있기는 한 거냐는 거다. 지금까지 뭐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구하려는 척 하는 거냐는 거다. 내가 바라본 신이란 그렇다. 
 
내가 처음 물었던 질문은 인간이 피해자가 되는 데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서 피해를 입었는지는 알겠는데, 왜 피해를 입었는지는 모르겠더라. 이건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데, 내 존재와 직결된 아주 심각한 문제였다. 
 
그 때 신에게 물었다. 선입니까, 악입니까. 진짜 존재는 합니까. 존재한다면 왜 방관합니까. 여러 참사나 이유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피해를 당하는 겁니까. 그 질문을 이 영화를 통해서 하고 있는 거다. 누구나 종구가 될 수 있다. 
 
'곡성' 곽도원 스틸컷.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 그렇다면 이 영화를 보고 누군가가 희망을 느꼈으면 하는 의도도 있었나. 
 
▲ 희망이라기 보다는 위로를 드리고 싶었다. 종구를 보면서 누군가를 떠나 보내고 남은 가족들이 위로를 받았으면 했다. 나약한 한 인간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 지키고자 했는지 다 보셨을 것 아니냐. 딸을 살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종구의 얼굴을 통해 남은 분들이 위로받았으면 한다.
 
-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치열하게 영화를 만들면서 신에게 질문을 했다. 그런데 그 대답을 못 들을 가능성이 높지 않나. 이렇게 힘들게 질문을 했는데, 죽을 때까지 대답을 듣지 못하면 어떡하나. 
 
▲ (답을) 하셔야 한다. 지금 신이 존재의 위협을 받고 있고, 세상도 많이 바뀌었지 않나. 어떤 대형사고가 터져도 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나는 신이 무명 같다. 때론 초라해보이기도 하고, 실패한 자 혹은 고독한자, 외로운 자 같다. 저 멀리 어디 구석에 쭈그린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이 모든 사회적 분위기는 어떤 하나의 이유로 만들어진 게 아니지 않나. 선량한 사람들이 더 힘들고 다치는 세상이다.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게 신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힘든 상황이 긍정으로 나아가고 더 나아지려면 신이 컴백을 해야된다고 생각한다.
 
-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 그렇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 줄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 나는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이다. 선을 지향한다. 영화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다. 영화가 어둡다고 나까지 오해하지는 않길 바란다.(웃음)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정말 힘들었다. 감독은 정말 외롭고 고독한 자리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칭찬 덕분에 기운을 얻었다. 감독으로서 길을 잘 걸어가고 있다면서 등을 두드려주며 격려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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