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수 눈치' 보던 김현수, 메이저리그 '침묵 신고식' 치르다

데뷔 첫 홈런에 동료들 빅리그 전통 따른 축하로 화답

입력 : 2016-05-30 오전 9:50:29
[뉴스토마토 김광연기자]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가 메이저리그 데뷔 첫 홈런을 팀 승리와 직결되는 결승포로 장식하며 활짝 웃었다. 하지만 홈런 직후 더그아웃에 들어왔을 땐 동료들의 싸늘한 외면과 마주했다. 어찌 된 영문일까.
 
김현수는 30일(한국시간)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의 프로그레시브 필드에서 열린 2016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원정 경기에 2번 타자 좌익수로 선발 출장해 4-4로 맞선 7회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이후 상대 세 번째 오른손 투수 제프 맨십의 5구째 시속 92마일(약 148km/h)짜리 투심 패스트볼을 힘껏 때려 오른쪽 담장을 넘기는 솔로 아치를 그렸다. 빅리그 출전 17경기 만에 터진 감격스러운 메이저리그 데뷔 첫 홈런이었다.
 
순식간에 베이스를 돈 김현수는 다음 타자 매니 마차도와 하이파이브를 나눈 뒤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상했다. 홈런 직후만 해도 박수를 치며 기뻐하던 동료와 코치진들은 경기에서 달아나는 홈런을 날린 김현수를 쳐다보지도 않고 딴 곳을 응시했다.
 
당장 이 장면만 보면 김현수가 여전히 동료와 코치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만하다. 스프링캠프에서 부진한 뒤 팀이 요구한 마이너리그행을 거부하고 '눈칫밥'을 먹던 김현수다. 지난 1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엔 3안타를 치고도 더그아웃에서 다소 의기소침한 얼굴로 음료수를 마시는 게 화제가 됐다. 이때 진짜 동료와 코치의 눈치를 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음료수마저 마음 편히 못 마시냐'는 팬들의 감정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그만큼 최근 김현수가 팀 동료와 감독에게 인정받고 있는지는 팬들의 큰 관심거리다.
 
하지만 당사자인 김현수는 '뭔가 안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잃지 않으며 모자를 벗고 장비를 풀었다. 이후 슬쩍 곁눈질로 동료들의 동태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이후 동료들이 한꺼번에 김현수에게 달려들어 해바라기 씨와 물을 뿌리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포수 칼렙 조셉과는 허리를 숙이는 '동양식 인사' 뒤풀이를 나눴다. 들어왔을 때 무표정으로 일관했던 동료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었다.
 
볼티모어 동료들이 처음 김현수를 보고도 침묵한 건 메이저리그 전통과 관련 있다. 바로 빅리그 신인이 데뷔 첫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왔을 때 처음엔 관심을 두지 않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축하해주는 문화다. 아직 메이저리그 현실을 잘 모르는 신인을 대상으로 한 짓궂은 장난이기도 하다. 종종 국내 KBO 리그에서도 신인과 외국인 선수를 상대로 목격되는 장면이다.
 
속길 바라는 동료와 달리 김현수는 이미 이 문화에 대해 알고 있었다. 볼티모어 지역지 '볼티모어선'의 에두아르도 엔시나 기자는 이날 자기 트위터에 "김현수가 이미 한국에서 더그아웃 침묵 신고식 영상을 봤다"고 밝혔다. 김현수가 홈런 직후 동료들의 무관심에도 웃음을 잃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었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김현수(오른쪽)가 30일 클리블랜드전에서 7회초 홈런을 터뜨린 뒤 매니 마차도의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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