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베끼던 중국 IT 기업, 이제는 '특허'로 승부

특허 출원으로 경쟁력 강화해 시장 확대…무분별한 특허 소송도 일삼아

입력 : 2016-06-22 오후 12:00:00
특허권은 기업의 자산이다. 회계장부에는 가치평가를 통해 '무형자산'으로 기록된다. 그런데 요즘 기업들에게 특허권은 자산 그 이상이다. 기업의 부를 창조하는 자본재로서의 역할이 커졌다. IT 분야를 비롯한 기술 집약적 산업은 특허권 확보가 중요한 이슈다. 특허권이 제품의 생산과 판매를 결정짓기도 한다. 특허권 보유에 기업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다. 또한 특허권은 기업의 이미지나 품격을 높여주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특허 출원이 많은 기업은 창조적이고 우수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중국 IT 기업들이 최근 특허 취득과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즈(FT) 등 주요 외신은 중국의 특허 출원 열기에 주목했다.
 
중국 기업들의 특허 출원이 한창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FT에게 제공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이 유럽, 미국, 일본, 중국, 한국 등 5개 국제특허심사기관에 제출한 특허 출원 건수는 지난 2000년 331건에서 2012년 9767건으로 30배 이상 늘었다. "경쟁국에 훨씬 뒤처졌던 중국이 2000년 이후 급격히 성장했다"고 말하는 마리아그라지아 스퀴치아리니 OECD 특허 전문가는 "일본은 국제특허 출원에 적극적인 기업 문화를 가졌지만, 중국에는 그런 전통이 없었다"며 "중국 정부의 활발한 지원 정책이 중국 기업의 특허 출원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기업들의 특허 출원이 급증한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다. 경제 성장에 힘입어 최근 중국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기술 투자에 뛰어 들었고, 확보한 기술 보호를 위해 특허 취득이 뒤따랐다. 중국 시장이 포화되어 감에 따라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점도 이유가 됐다. 모방과 베끼기로 살아남을 수 없는 세계 시장에 중국 기업이 전면적으로 나서려면 특허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중국 내 지적재산권에 대한 의식 수준 향상도 바탕이 됐다. 중국 정부의 적극적 지원과 보호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중국의 특허권 전쟁이 가열되고 있다. 사진은 중국 베이징에서 특허권 침해로 판매 중단 위기에 처한 애플의 아이폰6가 휴대폰 매장에 진열되어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AP
 
자국 내 특허 출원, 소송에 유리해
 
중국의 특허 출원 건수는 사실 OECD가 집계한 것 이상이다. 중국 기업은 주로 자국 내에서만 특허를 출원하기 때문에 OECD가 계산한 통계에는 빠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말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중국의 특허 출원 건수는 92만8000건으로 세계 1위다. 이는 2014년 중국 국가지식산권국(SIPO)에 등록된 총 특허 출원 건수로 미국 57만9000건(21.6%), 일본 32만6000건(12.2%), 한국 21만건(7.8%), 유럽 15만3000건을 크게 넘어서는 기록이다. 전 세계 특허 출원의 3분의1이 중국에서 이뤄진 것이다. 
 
반면 중국 기업이 자국 밖에서 출원한 특허는 3만6700건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의 22만4000건, 일본의 20만건, 독일의 10만6000건에 비해 한참 뒤처진다. 중국에 등록된 특허 중에서 국가간 특허권을 상호 인정하는 특허협력조약(PCT)에 등록된 경우도 8만건에 불과해 중국 총 특허 출원 건수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국 기업이 자국 내 특허 출원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특허 관련 소송을 중국 내에서 진행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에 특허 출원을 꺼리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영국 경제대학원 마크 슈안커만 교수는 "외국 기업이 중국 법원에서 특허 관련 소송으로 승소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재 중국은 글로벌 기업들이 외면할 수 없는 거대한 시장을 소유하고 있어 중국에서 특허를 출원하는 외국 기업도 서서히 증가하는 상황이다.    
 
IT 기업들의 특허권 확보 공세 이어져 
 
중국의 특허권은 IT 산업에 집중돼 있다. 빠르게 진보하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IT 기업의 특허 출원이 지난 몇 년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중국 기업이 5개 국제특허 심사기관에 출원한 특허의 85% 이상이 정보통신, 컴퓨터,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시청각기술 분야에 속한다. IT 제품들이 나날이 복잡해지면서 제품 하나가 시장에 나오려면 수백 가지의 특허가 필요해졌고 특허권 보유에 제품의 사활이 달리기 때문이다. 
 
WIPO에 따르면 지난해 PCT 국제특허출원 기업순위에서 중국의 정보통신 기업 2개가 최상위에 올랐다. 중국 통신기반 업체 화웨이가 미국 반도체업체 퀄컴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통신장비 제조사인 ZTE는 3위에 올랐다. ZTE는 2011년과 2012년에 이미 PCT 국제특허출원 건수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도 2000건 이상의 특허를 출원했으며 4G 이동통신에 관한 특허 전체의 13.5%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 샤오미는 지난달 마이크로소프트의 무선통신 관련 특허 1500개를 인수했다. 2014년 중국 내 스마트폰 판매량 1위를 기록한 샤오미가 해외 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그동안 글로벌 IT 기업들의 특허를 무단으로 사용해 왔던 샤오미는 인도 등 해외 시장 진출에서 특허 문제로 번번이 어려움을 겪어왔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상호특허사용계약을 맺은 샤오미는 자사 제품에 오피스, 스카이프 등 마이크로소프트의 프로그램을 탑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샤오미는 경쟁사에 비해 특허권이 적어 특허 인수나 특허 공유를 통해 공격적으로 특허 보유를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특허 분쟁 늘어나며 '과열 양상'
 
특허 출원 건수가 많아진 만큼 중국의 특허 분쟁 건수도 늘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특허 분쟁 건수는 2006년 1227건에서 2014년에는 7671건으로 6배가량 늘었다. 최근 3년간 특허 분쟁 건수의 증가율은 연평균 86%에 이른다. 중국 특허 시장이 급증하면서 부작용과 혼란을 겪고 있다는 업계의 평가다. 특히 외국 기업을 상대로 '과시용'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생겨나는 등 특허권 분쟁이 점점 과열 양상을 띠고 있다. 
 
화웨이는 최근 삼성을 상대로 특허권 침해 소송을 걸었다. 화웨이는 자사의 4G 셀룰러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삼성이 스마트폰에 허가 없이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5만여개의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는 특허 공룡 화웨이는 최근 2년간 PCT 국제특허출원 건수 1위를 차지한 기업이다. 또한 화웨이는 이미 애플, 퀄컴 등과 특허를 공유한 바 있다. 하지만 글로벌 휴대폰 선두업체 삼성을 고발한 이번 소송은 화웨이의 기술 과시용 전략에 가깝다는 견해가 많다. 화웨이가 특별히 배상액을 요구하지 않은 점 등 그간의 손해 배상용 특허 싸움과는 다르다는 해석이다.
 
중국의 소형 스마트폰 제조업체 바이리(Baili)는 지난 4월 특허권 침해로 애플을 베이징 지적재산권국에 제소했다. 애플의 아이폰6와 아이폰6플러스가 자사의 100C라는 휴대폰의 외관 디자인을 도용했다는 것이다. 베이징 지적재산권국은 중국 기업의 주장을 인정했고, 한 달 전 애플에게 아이폰6와 아이폰6플러스 판매 중단 명령을 내렸다. 판결문은 "두 회사 제품의 외관이 아주 극소한 차이를 보여 소비자가 혼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불복한 애플은 곧바로 베이징 지적재산권법원에 항소했고, 법원은 현재 심의를 진행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애플에 대한) 이번 소송 결과는 중국 기업들이 급성장함에 따라 자국 기업을 지원하려는 중국 정부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중국 기업이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특허 분쟁을 일으키는 데는 금전적인 손해배상 외에 실질적인 이점이 있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특허권 소송은 그동안 기술을 도용했던 중국 기업들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선전효과'도 있다. 중국에 위치한 다국적 로펌의 한 특허전문 변호사는 "자국의 특허 시스템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려는 중국 기업이 외국 기업을 상대로 특허 소송을 내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지선 국제경제분석가·미국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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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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