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브렉시트, 불평등의 역습

입력 : 2016-06-26 오후 2:08:01
브렉시트 이후 유럽의 미래지도가 그려진 트위터가 전세계적으로 퍼졌다. 그리스는 그렉시트(GREXIT), 이탈리아도 떠날 것이라는 뜻의 이탈리브(ITALEAVE), 체코는 체크아웃(CZECHOUT), 핀란드는 끝을 뜻하는 피니시(FINISH) 등으로 표기됐다. 전세계 소셜 미디어는 이번 영국의 결정이 유럽 공동체의 파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로 가득했고 세계 증시는 하룻만에 2400조원의 자산을 날렸다.
 
한국의 트위터도 뜨거웠다. 24일 하루 동안 ‘브렉시트’를 언급한 문서만 17만건이 검색됐다. 엄청난 수치다. 연결된 세계가 전하는 의제의 동시성은 언어와 국경을 넘었다. “영국이 EU라는 조별 과제를 때려치기로 결심했고 이놈이 조에서 나가 개인과제를 잘할지 못할지 확신이 안 서는 상태”라는 누리꾼의 진단은 5000회 가까이 퍼져 나갔다.
 
영국이 지옥문을 열었다. ‘그래도 남을 것’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 섞인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여론조사도 틀렸다. 자본의 욕망이 만들어낸 불평등 심화는 모든 정상적인 예측을 뒤흔든다. 저소득층이 주도한 묻지마 분노의 투표는 불행하게도 극우 민족주의 성향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미국 대선의 트럼프 현상과 잇닿아 있다. 선진국에서 중산층의 급격한 몰락 이후 진행되고 있는 극단적 보수화 경향은 기존 체제와 이를 구성하는 정치 네트워크에 대한 전면적 불신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브렉시트 지지자들 사이에선 정치인뿐 아니라 전문가와 엘리트에 대한 불신과 증오가 들불처럼 퍼졌다고 한다. 런던을 중심으로 한 정치·금융 엘리트들에 대한 강한 반감이 조 콕스 의원 살해 이후 잔류 쪽으로 돌아서던 여론을 멈춰 세웠다.
 
<위험사회>의 저자 울리히 벡은 “부자와 은행에는 국가사회주의로 임하지만, 중간층과 빈자에게는 신자유주의로 임한다”는 이중잣대가 세계의 불평등을 심화한다고 진단한다. 부자와 은행이 망하면 공적자금을 투입해 그들의 자산을 보호하고, 구조조정을 명분으로 노동자의 임금을 깎거나 해고를 단행한다는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분석을 보면 더욱 확연해진다. 잔류 지지층은 청년층, 고학력층, 대도시 거주자, 노동당 지지자들이었고 탈퇴 지지층은 노인층, 저학력층, 농촌 거주자, 보수당 지지자들이었다. 이는 트럼프가 미주리, 루이지애나, 켄터키, 네브라스카 등 농업이나 낙후된 공업을 중심으로 발달한 주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경제학자 크리스토프 랑커와 브란코 밀라노빅이 2014년 세계은행(WB)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선진국의 경우 상위 1%에게 부가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했다. 2008년 기준으로 선진국 최상위 1%는 소득 증가율이 65%에 달했지만 하위 90%는 1~6%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히 하위 80%의 소득 증가율은 고작 1%에 그쳤다. 선진국 중하층 국민들이 신자유주의 체제에 반기를 든 근본적인 이유다.
 
더욱 큰 문제는 소득 불평등에 내몰린 대중이 극단적인 선동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EU 때문에 영국이 망해가고 있다”는 극우파들의 선동은 본질보다 희생양 찾기에 골몰하던 대중의 심리를 자극한다. 이번 투표가 끝난 직후 파운드가 폭락하고 런던 금융시장 인력이 대거 이탈할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브렉시트 지지자들이 구글 검색창에 가장 많이 입력한 단어가 “EU를 탈퇴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라는 사실은 우리 시대 민주주의의 거처를 되돌아보게 하기에 충분하다.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선동에 이끌려 투표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노인들이지만 전쟁터에서 죽는 것은 젊은이들이라는 말이 있듯이 영국의 젊은이들은 노인들이 결정한 미래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가야 한다. 독설로 유명한 팝스타 노엘 갤러거는 “의회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우매한 국민들에게 떠넘겼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영국의 와해적인 선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여야를 넘어 이데올로기화된 성장 중심주의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경고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에 근거한 사회체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중산층의 몰락은 민주주의를 덧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헨리 포드 2세가 자동차 공장을 둘러보다 미국의 자동차 노조 지도자 월터 류터에게 조롱하듯 질문을 던졌다. “위원장님, 저 로봇들로부터 노조회비를 어떻게 받으실 겁니까?” 월터가 맞받았다. “회장님, 저 로봇들에게 어떻게 차를 파실 생각입니까?”
 
노동자는 곧 소비자이며, 이 소비자가 몰락하면 자본주의도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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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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