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한국 양궁이 리우올림픽 남녀 단체전 금메달을 따내면서 다시 한 번 '세계 최강'을 지키고 있는 이유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리우 현지를 찾은 전 세계 취재진 역시 '왜 한국 양궁이 강한 것 같은가?'라는 질문을 쏟아내기에 바쁘다. 경기장에서는 대회 내내 한국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고 있으며 심지어 선수들의 스트레칭 하는 것까지 다른 나라 선수들이 따라 한다는 소리도 나온다.
한국 선수단의 리우올림픽 첫 금메달 역시 남자 양궁단체전에서 나왔다. 김우진(청주시청) 구본찬(현대제철) 이승윤(코오롱엑스텐보이즈)으로 구성된 남자 양궁대표팀은 지난 7일(한국시간) 열린 결승전에서 미국을 세트점수 6-0으로 완파했다. 이날 대표팀이 쏜 18발의 화살 중에서 10점 만점을 벗어난 화살은 단 3개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모두 9점이었다. 특히 첫 세트에서는 화살 6발이 모두 과녁 한가운데를 꿰뚤었다. 올림픽 결승전이라는 긴장감은 선수들한테서 찾아볼 수 없었다.
미국 대표팀을 이끈 한국 출신의 이기식 감독은 "믿을 수 없는 수준이다. 한국 남자팀 중 역대 최고라 생각한다"고 극찬을 보냈다. 국제양궁연맹(FTA)도 홈페이지를 통해 "세계 최고인 한국팀의 경기는 거의 완벽했다"고 전했다. 남자 양궁대표팀은 통산 5번째(1988 서울·2000 시드니·2004 아테네·2008 베이징 포함) 단체전 금메달을 신고하며 4년 전 잠시 내줬던 올림픽 금메달을 되찾았다.
여자 양궁대표팀도 '금빛 과녁'을 명중했다. 8일 삼보드로무 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결승에서 장혜진(LH) 최미선(광주여대) 기보배(광주시청)는 러시아를 세트점수 5-1로 따돌리고 금메달을 손에 넣었다. 특히 여자 양궁 단체전은 1988 서울올림픽부터 이번 대회까지 8회 연속 금메달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연도로만 따져도 32년간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은 것이다. 남녀 단체전을 모두 딴 한국 궁사들은 내친김에 개인전까지 휩쓸어 리우올림픽에 걸린 4개의 금메달을 전부 차지하겠다는 각오다.
체계적인 현장 시스템과 뇌파까지 측정하는 과학적 훈련
이처럼 한국의 독주가 계속되자 전 세계가 항상 '왜?'라는 의문부호를 다는 게 당연하다. 심지어 "한국 양궁 국가대표 되는 것이 올림픽 금메달 따기보다 어렵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한국 랭킹 100위가 넘어가도 세계 랭킹으로 따지면 10위권에 충분히 들어간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때문에 올림픽이 끝날 때마다 한국 양궁이 강한 이유를 분석한 기사가 외신에서 쏟아진다. 이번에도 로이터통신은 8일자 기사에서 올림픽 때마다 금메달이 당연시되는 압박을 받지만 그것을 훈련으로 극복하려 한다는 기보배의 인터뷰를 인용해 보도했다. 기보배는 리우올림픽 출국 전 인터뷰에서도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시스템을 접한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많은 경험을 쌓으면 극한 상황을 이겨내는 힘이 다른 나라 선수들보다 커진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국 양궁 선수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과 심리 상태를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다. 특히 대한양궁협회는 2013년에 '한국양궁 저변확대 및 중장기 발전계획'을 세워 유소년 대표부터 국가대표까지 연계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과거부터 쌓인 노하우와 각종 훈련 방법들이 일원화돼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린다. 12시간 가까이 혼자 걸으며 마음을 다스리는 것과 소음 훈련을 위해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훈련한 사실들이 대표적인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또 서거원 총감독에 따르면 이런 훈련들과 더불어 선수들의 뇌파를 측정해 각자 최적의 슈팅타이밍을 찾는 과학적인 훈련도 빠지지 않고 있다. 올림픽 종목 중 심리 상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종목이 양궁인데 전부 이러한 것들에 대비한 준비인 셈이다.
'파벌 봉쇄' 위한 특정 코치의 사교육 금지와 현대차의 투자
대표팀 선발 과정에서의 투명성도 무시할 수 없다. 선수들은 적게는 7번에서 많게는 10번 가까이 10달에 거친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해야 태극마크를 달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중시되는 게 공정성이다. 스타 선수나 특정 선수를 위하는 볼썽사나운 관행들은 양궁계에 없다. 이번 여자 단체전의 장혜진 역시 4년 전에 1점 차이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해 엉엉 울며 4년 뒤 리우를 기약해야 했다.
특히 양궁계에서는 특정 선수가 특정 코치에게 교육받는 사교육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이런 원칙은 가끔 일부 종목에서 터져 나오는 파벌 문제를 애초에 차단하는 촉매제로 꼽힌다. 대한체육회 산하 여러 체육 단체가 비판에 시달릴 때도 양궁협회만은 비교적 깨끗하고 투명한 운영을 하는 단체로 인정받는다.
투명성과 공정성이 양궁인들을 뭉쳐놨다면 이를 측면 지원하는 현대차의 '양궁 사랑'도 빠질 수 없다. 현대차는 1985년부터 양궁을 지원해왔으며 지금까지 약 38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궁계에서 정의선 부회장은 '키다리 아저씨 2세'로 불린다. 이제는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둔 뒤 정의선 부회장을 비롯한 현대차 관계자들과 기쁨을 나누는 장면이 그리 특별하지 않다. 현대차 계열사인 현대제철과 현대모비스 역시 남녀 양궁팀을 운영하고 있다. 현대차는 리우올림픽에서도 선수단을 위한 특별 휴식처를 경기장 약 5분 거리에 설치했다. 대회 조직위원회가 제공한 차량이 부족하자 별도로 총 5대의 차량을 선수단에 지원하기도 했다.
세계무대 늦깎이 데뷔 이후 궁금증 자아내는 강국으로 우뚝
사실 한국은 국제양궁연맹의 양궁 보급 정책이 한창일 때 국궁만 하고 있었다. 국제양궁연맹에 가입한 게 1963년이며 세계무대에 첫선을 보인 것은 1979년 서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 참가해 김진호가 5개의 금메달을 차지했을 때다. 이후 1984 LA올림픽에서 서향순이 올림픽 첫 금메달을 따고 김진호가 동메달을 손에 넣으면서 본격적인 한국 양궁 시대를 전 세계에 알렸다.
종주국도 아니고 세계무대에서 선점 효과를 본 것도 아닌데 한국의 독주를 막기 위해 세계 양궁계가 여러 차례 룰을 바꿀 정도로 독보적인 셈이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는 단체전이 누적 점수제에서 세트제로 바뀌었다. 그런데도 한국 양궁은 금빛 소식을 전하며 '왜 저 나라는 활을 잘 쏠까?'란 궁금증을 자아내는 팀이 됐다.
임정혁 기자 komsy@etomato.com
◇8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의 삼보드로모 양궁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여자 양궁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대표팀의 장혜진, 최미선, 기보배(왼쪽부터)가 취재진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7일(한국시간) 부라질 리우의 마라카낭 삼보드로무 양궁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남자 양궁단체전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딴 김우진, 구본찬, 이승윤(왼쪽부터)이 단상에 올라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