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김영란법 시행 후 우왕좌왕 공직사회

입력 : 2016-09-29 오후 5:19:16
[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혹시 모르니 최소한으로 하라." '김영란법'이 만든 공직사회에서 업무를 할때 자주 들을 수 있는 어록이다.
 
공공기관 감사팀이나 금융권 법무팁에 김영란법과 관련한 각종 질문이 쏟아지고 있지만, 결국에는 다 저 말이 붙는다.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의 한도를 지키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지만, 혹시 모르니 약속이든 지출이든 최소화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28일 곳곳에서 '김영란법'으로 인한 촌극이 벌어졌다. 김영란법 대상이 아닌 사람과도 더치페이를 하는 공무원들, 1만원짜리 설렁탕을 먹고도 불안해 하는 기자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저녁약속은 꿈도 못꾼다. 김영란법이 제시한 상한선만 지키면 문제 될 것이 없지만, 해석하기에 따라 낙인 찍힐 수 있으므로 다들 몸을 사리는 모양새다. 본인과 상대방, 해당 단체까지 본보기로 처벌당하는 것보다 납작 엎드려 있는 것이 상책인 듯하다.
 
물론, 이러한 사례들은 법안 도입 초기에 거쳐야 할 성장통에 불과하다. 법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 김영란법의 취지대로 부정청탁이 줄어들고 업무의 효율성도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같은 법안을 두고 해석이 분분한 것은 문제가 있다. 로펌마다 조언이 다르고, 회사마다 김영란법 내규가 엇갈린다. 아는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혼란에 빠지고, 결국 김영란법 대상자는 아무것도 안하는 소극적인 상태에 이른다.
 
사실 각기 다른 해석에 의한 혼란은 정부가 자초한 일이다. 우선 1년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친 후에 시행된 법치고는 너무 기준이 모호하다. 법의 제한을 받는 대상을 명확하게 하고 홍보도 적극적으로 해야 했다. 정부의 업무를 위탁받은 민간기업 직원에게 김영란법이 적용되는 지도 불분명하다. 국내에 있는 외국인도 김영란법 대상인데, 정작 당사자는 모르고 있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준비 부족도 문제로 지목된다. 청탁금지제도과가 법 위반 신고를 조사하거나 문의에 답변하고 있지만, 직원이 7명 뿐이라 제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영란법과 직접 연관된 사람만 400만명이다.
 
이러다 보니 권익위 홈페이지에 접수된 질문 중 답변 등록이 안된 것이 벌써 5000건이 넘는다. 주무부처인 권익위에서 질문에 일일이 답변을 못하겠다면, 명확한 기준이라도 제시해야 하는 데 그렇지도 않다. 큰 그림만 나열했을 뿐 세부적인 내용설명이 부족하다. 신한은행이 '내 손안에 청탁 금지법'이란 임직원 앱을 만들고, 벤처기업들이 김영란법 정보 서비스를 선보이는 등 민간 영역에서 정부가 놓친 부분을 메꾸고 있는 실정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는 말처럼 김영란법은 이미 역사 속에 한 획을 그었다. 돌이킬 수 없다. 불안정한 출발이지만, 정상 궤도로 서둘러 진입하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그 첫걸음은 건전한 고발 문화 정착과 일관성 있는 판결이다. 권익위가 접수한 첫번째 신고는 학생이 교수에게 캔커피를 줬다는 것이었다. 신고 정신은 가상하나, 당초 김영란법이 겨냥한 부정청탁·금품수수 금지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가진자의 이권 남용과 과도한 접대문화를 없애려다 사재 간의 정까지 사라질까 우려된다. 아울러 판례가 형평성에 맞게 쌓이는 것도 중요하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을 만한 판례가 쌓일수록 우리의 삐뚤어진 접대문화도 빠르게 개선될 것이다.
 
윤석진 기자 ddagu@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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