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한영기자] 한진해운이 지난 6월 유동성 지원여부를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던 주채권은행에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 있다’는 내용의 협박성 공문을 보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4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에 따르면 한진해운은 6월12일 석태수 대표이사 명의로 산업은행에 ‘한진해운 단기유동성 지원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발송했다. 한진해운은 공문 마지막에 “단기 유동성 지원이 없을 경우 단기간 내에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밖에 없으며, 이 경우 귀행을 비롯한 당사에 대한 모든 채권자들이 상당한 손실을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라는 경고성 내용을 첨부했다.
이에 대해 산은은 두 달 후인 8월19일 한진해운에 “삼일회계법인 실사결과에 따르면 용선료 등 채무재조정이 성사될지라도 귀사는 상당한 규모의 자금부족이 예상되어 이에 대한 조달 대책이 필요하다”며 자구노력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삼일회계법인 잠정실사보고서에 따르면 한진해운은 '보통(Moderate) 시나리오' 시 2017년 말 8620억원의 부족자금이 발생하고, 2018년까지 영업적자가 지속된 후 2019년에 이르러 영업흑자가 가능할 것으로 분석됐다. 최악(Worst)의 시나리오가 발생할 경우 2017년 말 부족자금은 1조2296억원까지 늘어난다고 예상했다.
공문을 수신한 한진해운은 25일 기존 입장을 바꿔 “법정관리를 회피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5600억원 규모의 부족자금 조달방안을 제시했다. 한진해운 대주주인 대한항공이 2017년까지 4000억원, 한진그룹 내 계열사 1000억원 등 구체적인 재원마련 방안까지 제시했지만 산업은행은 이를 거절했다.
이 같은 과정을 놓고 박 의원은 “한진 측의 부족자금 조달방안 5600억원에 (한진해운이 요청했던) 6000억원을 더한 1조1600억원은 유동성 위기 극복에 사실상 충분했던 자금”이라며 “한진해운이 그간 ‘대마불사’ 식으로 안일하게 대처하다 뒤늦게 자금조달안을 내놓은 것이 채권은행의 지원거절 사유가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회사와 채권단 사이의 줄다리기 속에 한진해운이 퇴출될 경우 그 피해는 조선·해운업 종사자들에게도 미칠 전망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한진해운 법정관리 영향 및 대책’ 보고서를 통해 한진해운 퇴출 시 1만1000여명의 실업자가 생길 것으로 분석했다. 한진해운 종사자 1428명을 비롯해 조선업 9438명, 선박 보험·검사업 180명 등이다.
또한 한진해운 퇴출 시 회사가 보유한 물동량 188만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대를 말함) 중 현대상선으로 32만TEU(17.0%), 근해선사로 38만TEU(20.2%), 외국선사로 118만TEU(62.8%)가 넘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예상되는 피해금액은 해운수입손실(7조7000억원)과 추가운임부담(4407억원), 항만 부가가치(1152억원)를 합쳐 총 8조2559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분석했다. 선주협회 등에서는 한진해운 청산으로 인한 피해액이 최대 17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박 의원은 “막대한 경제적 피해와 국부유출이 예상되는 상황임에도 정부와 산업은행은 구체적인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방관했다”며 “정부와 한진해운 간의 감정싸움 때문에 국내 1위의 해운사가 무너지는 등 애꿎은 국민들만 피해보는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대상선의 한진해운 자산 일부 인수가 이뤄질 경우 현대상선이 물동량의 60%인 113만TEU를 가져가 외국선사로는 37만TEU만 넘어갈 것으로 예상됐다. 이 경우 피해액은 2조7680억원, 일자리를 잃게 되는 사람 수도 3170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 여의도 한진해운 본사 내 배 모형 앞을 직원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스1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