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이성'으로 예지력을 구해야 약이 된다

입력 : 2016-10-31 오후 3:26:21
잔 다르크는 영국과 벌어진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구한 히로인이다. 그녀는 1492년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음성을 듣고 고향을 떠나 서쪽으로 가서 시농성에 있는 샤를르 왕자를 만났고, 그에게서 군대를 받아 오를레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나폴레옹이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패배한 것은 당초 알려진 것처럼 러시아와 프로이센의 군사력 때문이 아니고, 전투 중 나폴레옹의 호주머니에서 ‘운명과 예언의 서’ 필사본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처럼 프랑스 정치사에는 심심찮게 신탁(Oracle) 이야기가 나온다. 어디 프랑스만의 일인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신탁이 인간의 삶을 지배했다는 증거들이 곳곳에서 나온다. 고대 그리스에서 신탁은 종교와 문화의 일면을 차지했다. 신탁은 어떤 사람이 다가올 일에 대해 신에게 묻고 답을 구하는 과정이다. 신의 대답은 여러 방법으로 표현되고 그에 대한 해석은 때때로 수련을 요구하며, 아폴론의 이상야릇한 말처럼 발견적 해석이 필요할 때도 있다.
 
예언은 전적으로 신의 영역이다. 그리스의 점술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은 ‘운명 그 자체는 신의 힘’이라는 점이다. 예지의 힘은 신탁이나 꿈에 의해 전달된다. 트로이의 왕 라오메돈은 필사적으로 신탁을 통해 조언을 구했다. 그는 아폴론과 포세이돈이 보낸 재앙으로부터 백성을 구하기 위해 신탁에 호소했다.
 
프랑스인의 존경을 받는 프랑수와 미테랑 대통령도 국가의 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일을 결정할 때 영의 힘을 얻고자 했다. 미테랑 대통령은 유명한 점성술사인 엘리자베드 테시에(Elisabeth Teissier) 여사를 엘리제궁으로 부르거나 전화 통화를 해서 조언을 구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미테랑 대통령이 지성과 카리스마, 웅변 등의 능력을 겸비했지만 신앙의 힘을 믿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1994년 12월31일 밤 미테랑 대통령이 국민에게 보낸 마지막 신년사에서 “나는 영의 힘을 믿는다. 나는 여러분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고 말한 것에서도 나타난다.
 
프랑스 민영방송 캬날플뤼스(Canal+)의 칼 제로(Karl Zéro)는 미테랑 대통령 서거 4년 후인 2000년 6월25일 방송에 테시에 여사를 초대했다. 방송에서는 두 사람이 나눈 육성 테이프 일부도 공개됐다. 1991년 1월, 걸프전이 발발하자 미테랑 대통령은 테시에 여사에게 “나는 개입해야 합니다. 당신은 어느 날이 최상의 날이라고 보시오?”라고 묻는다. 테시에 여사가 “다짜고짜 말할 수 없으므로 그 날들을 들여다봐야 합니다”라고 답하자 대통령은 “날 보러 와 주시오”라고 말한다. 테시에 여사는 미테랑 대통령이 이성적이며 남을 쉽게 믿는 성격이 아니었음에도 많은 자문을 구했다고 증언했다.
 
이렇듯 지성과 카리스마, 소양을 겸비한 미테랑 대통령조차 점성술사의 조언을 구했던 것은 6000만 프랑스인의 운명이 달린 국사를 보다 신중히 결정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미테랑 대통령의 이러한 행동은 자신의 이성적 힘이 자칫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예지력으로 채우려는 치밀함 속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박근혜 대통령이 만일 신정정치를 했다면, 합리적 이성 위에 국정운영을 보다 심도 있게 하기 위해 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종교적인 힘을 빌려 한국정치를 최선으로 이끌고자 했다면, 지금과 같은 미궁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명민한 리더는 경건하고 이성적인 상태에서 신의 조력을 구하고 최상의 리더십을 발휘한다.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은 신정정치가 아닌 리더의 자질 문제다.
 
한 국가의 운명은 리더로 누구를 세우냐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정당은 리더의 자질과 소양을 갖춘 인물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앞장서야 하고 유권자는 현명한 리더를 선택하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내년 대선에서는 이번과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를 두 손 모아 빌어본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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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