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효정기자] 다문화 사회가 성큼 다가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다문화가정은 29만9000가구로 전체 인구의 1.7%에 이른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성장해 결혼하고, 또다시 자녀를 낳으면서 다문화사회는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다문화가정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바로 자녀 교육이다. 이주여성의 경우 '자녀가 자신의 어눌한 발음을 배워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 대화조차도 꺼린다. 때문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은 엄두도 못낸다.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책장에 책이 하나 둘 늘어나는 일반 가정과 달리 동화책 한권조차 없는 다문화가정도 많다. 조기교육에 있어 사각지대에 놓인 다문화가정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기업이 있다. 사운드북을 개발한 '알로하아이디어스(이하 알로하)'다. 김지영 알로하 대표를 직접 만나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는 시점에 그가 추구하는 교육철학에 대해 들어봤다.
김지영 알로하 대표는 지난 10년 이상 웅진씽크빅에서 영유아 사업을 진행해왔다. 연 매출 400억원을 달성한 '스토리빔'을 탄생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영유아 사업을 진행하며 만난 엄마들만 수천명이다. 이 가운데 김 대표가 접한 다문화가정의 열악함은 심각했다.
"한국에서 10년 이상을 살고 있는 이주여성도 아이들한테 책 읽어주는 것을 너무 힘들어했어요. 책읽기는 교육이상으로 엄마와의 교감할 수 있는 중요한 활동임에도 책읽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안되는 것이죠."
일반 기업에서 소외 계층을 타깃으로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기는 어려웠다. 사회적 가치보다 영리 추구가 선행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사회적기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10년간의 직장 생활을 바탕으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을 세워야 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2013년 겨울 소셜벤처 '알로하'가 탄생했다.
김지영 알로하아이디어스 대표. 사진/알로하
목소리 재능기부를 통해 탄생한 '담뿍'
김 대표가 개발한 기기는 '담뿍'이란 사운드북이다. 휴대용 라디오 만한 크기의 기기에 자체 개발한 스티커를 갖다대면 저장된 동화책 내용이 들리는 방식이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싶을때마다 책 앞에 붙은 스티커를 기기에 갖다 대기만 하면 된다.
사운드북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의미가 더 크다. 책읽기는 현재 기업들의 목소리 재능 기부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처음에는 연예인을 섭외해서 릴레이식으로 동화책 한 권을 읽어주는 방식으로 기획했습니다. 그러던중 기업에서 사회공헌활동으로 목소리 기부를 의뢰를 했고, 입소문으로 점점 많은 기업들이 참여하게 됐어요." 지금까지 500여명의 직장인들이 목소리 기부를 해왔다. 이들의 목소리로 만든 사운드북만 100여권이다.
목소리 기부의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한 기업의 대표부터 말단 사원까지 참여하며 기부활동 자체가 화합의 기회가 됐다. 한 권의 동화책에는 5명 가량이 참여한다. 김 대표는 "기업에서도 일회성 이벤트인 공헌사업보보다 지속적이고 의미가 큰 사업을 추구하고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목소리 재능 기부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참여로 다문화가정도 큰 기회를 얻었다. "성우나 아나운서의 목소리만큼 발음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엄마나 아빠 혹은 삼촌이나 이모가 읽어주는 듯한 느낌이어서 오히려 반응이 더 좋습니다." 목소리 기부와 함께 기업들은 다문화가정에 기기까지 후원한다.
알로하아이디어스의 사운드북 '담뿍'. 사진/알로하
사운드북의 또다른 타깃 '워킹맘'
알로하는 사회적 가치와 함께 영리를 추구하는 소셜벤처다. 수익은 일반 소비자 판매를 통해 얻는다. 출산휴가 혹은 유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하는 워킹맘들에게 인기가 많다. 사운드북의 또다른 타깃이기도 하다. 일반 가정에서는 사운드북은 또다른 방식으로 사용된다.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녹음한 후 들려주는 방식이다. 엄마, 아빠가 직장에 간 사이에도 아이들은 사운드북을 통해 엄마, 아빠의 목소리로 동화책 내용을 들을 수 있다.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담뿍의 수요도 많아졌어요. 특히 아이와 몇개월간 하루 종일 함께 있다가 직장에 나가야 하는 엄마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스마트폰 등 기기의 의존도를 줄이고 책을 더 가까이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죠."
유치원 등 단체의 수요도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유치원은 아이들에 비해 교사의 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개개인에게 책을 읽어줄 수가 없다. 담뿍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책을 언제든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녹음 기능은 다문화가정에서도 유용하다. 한국으로 시집온 후 6년만에 캄보디아의 친정에 간 이주여성의 사례다. 그는 캄보디아에서 부모님의 목소리를 담뿍에 담아와 아이들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목소리를 잊지 않게끔 종종 들려주고 있다고 했다.
"창업은 기회다"
김 대표는 기업 내에서 직장인으로 생활할 때와 180도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직장 내에서 담당 업무만 해왔던 것과 달리 창업을 통해 모든 일을 감당해야하는 위치에 서있게 됐다. 고비도 많았다. 김 대표는 "창업은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하나가 해결되면 또다른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제품만 만들어지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마케팅의 문제, 판로의 문제 등이 이어졌죠. 창업 전에는 생각지도 못해는 문제들로 고비가 많았습니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창업을 기회로 여기는 그다. 직장 생활하며 스토리빔을 만들 당시에도 기획단계부터 판로개척까지 총괄해왔다. 그 때의 경험이 나중에는 큰 자산이 됐다. "당시에 어려웠던 점이 나중에는 자산이 됐죠. 그래서 지금의 고됨도 자산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사업을 하다보니 기회들도 많이 보이죠. 닫힌 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여는 방법이 다 다른 기회라고 생각해요."
알로하는 내년에 해외에서 기회를 찾을 계획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시각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담뿍을 선보이겠단 각오다. 시장 규모가 큰 만큼 수요도 많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글로벌 시장의 문도 계속 두드릴 겁니다. 여는 방법을 찾아서 그곳에서도 알로하의 가치를 인정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도 주고 싶습니다."
임효정 기자 em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