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호기자] 금융감독원이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보험사 4곳을 상대로 예상 수위를 뛰어넘는 초강력 징계를 예고하자 형편이 다른 각 보험사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보험금을 지급하자니 규모가 만만치 않고 금감원 제재에 행정소송을 하자니 향후 제재 강도는 더욱 세질 것 같고 그렇다고 초강력 제재를 수용하자고 하니 경영진이 책임을 지거나 영업제약 등이 우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 쉽게 결정을 내릴 상황이 아니다.
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032830), 교보생명,
한화생명(088350), 알리안츠생명 등은 금감원의 초강력 제재 예고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앞서 자살보험금을 지급한 회사들과 징계 수위 차이가 예상 외로 크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지난 1일 이들 보험사에 보험업 인허가 등록 취소와 최고경영자(CEO) 해임권고 등을 포함한 초강경조치를 통보했다. 이에 앞서 금감원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내주기로 결정한 생보사에 대해 과징금 100만~600만원을 부과하는 데 그쳤다.
이 같은 초강력 제재가 최종 확정되면 이들 보험사는 CEO 교체뿐 아니라 영업에도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이번에 금감원의 제재 예고를 통보받은 4개사는 8일까지 중징계 조치에 대한 소명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금감원은 이를 참고로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최종 제재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4개 보험사는 8일에 있을 소명에 집중한다는 계획으로 8일 소명 결과에 따라 보험사의 본격적인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의 초강력 제재를 피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험금을 지급하면 보험사는 소비자와의 약속이 아니라 금감원의 제재가 무서워 보험금을 지급하는 꼴이라 이런 결정도 쉽지 않다.
또 한가지는 금감원의 제재에 행정소송을 하는 것이다. 행정소송에 대한 승률은 보험사 쪽이 좀 더 높다. 하지만 보험사가 행정소송에서 이기더라도 감독당국인 금감원과 관계를 생각하면 앞으로 강도 높은 영업규제는 불보듯 뻔한 상황이다. 금감원의 깐깐한 영업 관리감독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행정소송을 진행하기는 쉽지 않다.
변호사 A씨는 "법리적으로 행정소송만 놓고 보면 보험사가 유리한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보험사와 금감원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행정소송 진행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험사의 마지막 카드는 금감원의 초강력 제재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보험금 지급 규모보다 과징금 비용이 훨씬 덜 들어가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차라리 과징금을 내는 것이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현행법상 과징금은 문제가 되는 계약의 수입보험료에 대해 최대 20%까지 부과 할 수 있지만 과징금은 최대 100억~200억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반면, 미지급 자살보험금은 삼성생명 1585억원 교보생명 1134억원 한화생명 700억원 수준으로 미지급보험금보다 과징금이 적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CEO가 교체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를 그대로 수용하기도 쉽지 않다. 특히 교보생명의 경우 오너인 신창재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야 하며 한화생명도 2011년부터 회사를 끌어온 차남규 사장을 버릴 수는 없다.
이에 따라 보험업계에서는 보험사가 징계수위를 낮추는 것에 집중할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에 대한 징계와 과징금은 수용하고 CEO와 임원에 대한 제재는 최대한 낮추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대안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CEO와 임원에 대한 징계 수위를 낮추고 회사에 대한 징계는 기관경고, 과징금은 그대로 수용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며 "보험금 지급이나 행정소송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종호 기자 sun126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