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100세 시대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보다, 얼마나 행복하게 사느냐에 관심이 커지고 있는 요즘이다. 행복은 안정된 노후로부터 시작된다. 일에서 손을 놓는 순간 돈도, 동료도, 심지어는 건강도 잃을 수 있다. 이는 결국 직업의 필요성으로 귀결된다. 전체 인구의 15%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행렬을 시작했다. 부모를 모시고 자녀를 양육하면서 안정적인 노후 준비를 한 이들은 많지 않다. 수중에 남은 것은 아파트 한 채. 그마저도 자녀 결혼에 써야 한다. 평범한 보통사람의 현실이다. 이는 비단, 정치권만의 숙제가 아니다. 민간을 포함해 사회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할 우리 사회의 과제다. 작지만 힘을 보태는 이가 있다. 사회적기업 '리움'이다. 이동훈 리움 대표를 만나 그의 고민을 들어봤다.
[뉴스토마토 임효정기자] 지난 15일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인덕원 IT밸리. 이 곳은 협업을 위해 많은 중소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지식산업센터다. 리움은 8개월 전 IT밸리의 새 가족이 됐다. 본사는 충청남도 천안에 있지만, 제품 판매와 홍보를 위해 이곳에 지사를 두게 됐다.
이동훈
리움 대표(
사진)는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다. 사법고시 준비에 20대를 보낸 그는 30대에 스마트폰 케이스 제조사, 택배회사 등 중소기업에서 일했다. 40대인 지금은 사회적기업을 이끌고 있다.
리움이 설립된 해는 지난 2011년이다. 2014년 예비사회적기업을 거쳐 2015년 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았다. 취약계층에 대한 일자리 창출과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이 사회적 가치로 인정 받았다. 리움은 모바일 주변기기를 만드는 제조사다. 여기에는 USB, OTG, 거치대, 보조배터리, 케이블 등이 포함된다.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사회적기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나중에 숨을 거둘 때 '세상에 태어나서 사회를 위해 무언가 도움이 되었구나'라고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현재 그를 이끌고 있는 철학이다.
천안 본사에는 8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이 가운데 4명은 55세 이상 고령자로, 이들 평균 연령은 58세다. 이들은 온라인 마케팅, 포장, 배송 등을 담당한다. 고령의 직원들이 결국 미래의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이 대표다. "저도 곧 고령자가 되겠죠. 일자리가 없어서 무의미하게 지내는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평생 일자리를 만들어서 저도 나이가 들면 능력 있는 직원에게 경영을 맡기고 이 회사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싶은 바람입니다. 아직은 소기업이지만 회사가 성장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평생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에요."
리움은 USB, OTG, 거치대, 보조배터리, 케이블 등 모바일 주변기기를 제조하고 있다. 사진/리움
사회에 대한 기여는 일자리 창출만이 아니다. 폐자원을 재자원화하는 미션도 가지고 있다. "아파트 단지 내 이삿날마다 멀쩡한 가구가 많이 버려지는 걸 보면서 아깝고 안타까웠습니다. 사회적으로도 낭비인 거죠. 조사를 해보니 실제로 우리나라의 재자원화 비율은 해외 다른 국가들에 비해 적은 수준이더라고요. 가구보다 상대적으로 부피가 작은 플라스틱부터 재활용해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현재 리움에서 생산되는 제품 가운데 25%가량이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 재활용 플라스틱의 경우 색을 구현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아직은 검정, 회색의 제품에만 사용되고 있다.
사회적기업도 경쟁력은 결국 '품질'
사회적기업도 수익의 난제에 봉착한다. 사회적 가치의 지속성도 회사의 수익과 직결된다. 결국 문제는 경쟁력이다.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리움이 제품과 디자인 개발에 주력하는 이유다. "좋은 뜻만 가지고 있다고 소비자들이 우리 제품을 찾지 않아요. 품질도 좋은데 좋은 일까지 한다는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 대표는 기업활동이란 '엔진'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찾아 해결하겠다는 각오다. 때문에 회사의 수익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에도 힘을 쏟는다. 지난해 개발한 스마트폰 케이블은 리움의 캐시카우(수익창출원)다. 안드로이드 폰과 아이폰을 동시에 충전시킬 수 있는 겸용 충전기로, 앞뒤로 돌리기만 하면 호환해 사용이 가능하다. 이를 무기로 해외 시장에도 첫발을 내딛는다. 올해 일본의 한 기업에 수출을 시작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샘플 주문만 받았던 리움으로서는 이번 계약은 본격적인 해외 진출의 신호탄이다.
수익을 높이기 위한 또 다른 전략은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비중을 높이는 것. 그간 B2B(기업과 기업간 거래)에 전적으로 의존해왔다. 판촉행사를 목적으로 구매하는 기업이 주 수요자였다. 뜻밖의 위기도 겪어야 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 기업들의 판촉행사가 급격히 줄면서 매출도 덩달아 쪼그라들었다. 그러면서 B2C사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리움은 온라인 판매 등을 통해 B2C 비중을 높여왔고, 현재 전체 매출 비중 가운데 25%까지 끌어올렸다.
리움은 박람회에 참가해 해외 바이어에게 제품을 홍보하고 있다. 사진/리움
해외 시장의 문도 계속해서 두드릴 예정이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시장이 더 넓어지죠. 국내에서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스마트폰 거치대 시장이 해외에서는 아직 수요가 높은 시장 중 하나입니다." 이 대표는 해외 시장은 리움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리움은 꾸준히 성장 중이다. 2015년 매출 10억원에 이어 지난해 15억원을 달성했다. 올해에는 해외시장까지 포함해 연간 매출액 30억원을 목표로 삼았다.
사회적가치도 수출…미얀마 청년 일자리 눈길
리움의 미션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계속된다. 이 대표의 눈길이 머무른 곳은 미얀마다. 지난 2015년 월드비전과 함께 미얀마에 유치원을 건립하는 사업을 해온 경험도 있는 터라, 남다른 애정도 있었다. 미얀마를 오가며 이 대표 눈에 띈 건 일자리가 없어 거리를 떠도는 청년들이었다. 미얀마에서 청년들이 받는 월급은 원화로 15만~20만원 수준이다. "국내에서 한 가정을 도와줄 정도면 미얀마에서는 수십배 많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었죠. 국내에서는 고령자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한다면, 미얀마에서는 청년들에게 일자리와 함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도록 하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청년들의 일자리를 위해 이 대표가 고안한 방법은 '푸드트럭'이다. 올해 푸드트럭과 카트 등 8대를 미얀마로 보내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4월 말에 정식 오픈을 앞두고 있다. 사업 성과를 지켜본 후 프랜차이즈로 만들어 더 많은 청년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게 이 대표의 바람이다.
모바일 주변기기 제조사지만 사회와 함께 호흡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경계를 뛰어넘고 있다. 때문에 이 대표는 천안과 의왕시, 그리고 미얀마까지 오가며 하루하루가 바쁘다. "잘하는 게 없어서 더 열심히 한다"는 그였지만 기자의 눈에는 못 하는 게 없는 만능 재주꾼이었다.
임효정 기자 em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