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국민의당 대선주자인 안철수 후보의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관련 발언 논란은 계산된 것일까, 상대 진영의 말꼬리잡기식 네거티브일까?
이른바 안철수 후보의 '사면 발언'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사실관계부터 먼저 보면 안 후보는 지난달 31일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박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통령이 사면 권한을 남용하지 않도록 위원회를 만들어 국민의 뜻을 모아 투명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답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경쟁자들은 "벌써 박 전 대통령 사면 얘기를 하느냐"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안 후보가 최근 보수층 표심잡기를 위해 뚜렷한 '우클릭'을 시도하고, 이를 통해 지지율이 급상승 하는 와중에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안 후보는 최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대항마로 급부상했다. 지난달 25일 국민의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호남 경선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순식간에 대선후보 지지도 2위로 올라섰다. 안 후보의 지지율 상승은 민주당 경선이 종료된 상황에서 안희정 후보의 지지층이 안철수 후보에게 옮겨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보수 진영의 유력 주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갈 곳 잃은 중도·보수층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안 후보가 외교·안보 문제에서 적극적으로 우클릭에 나선 점도 지지율 상승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번 ‘사면 발언’만 놓고 보면 안 후보측이 억울한 점이 적지 않다. 대선행보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기자의 질문에 원론적인 답을 한 것인데 상대 진영이 말꼬리 잡기식으로 공세를 퍼부으면서 “벌써부터 사면 이야기를 하느냐”고 몰아가는 것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 후보가 헌재의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을 앞두고 주말 촛불집회 불참 등을 선언한 사실과 겹쳐지면서 ‘사면 발언’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안 후보는 당시 “헌법에 따라 탄핵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헌법재판소를 압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촛불집회에 불참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안 후보가 야권 내 다른 대선 주자들과 차별화를 위해 중도·보수로의 확장을 시도하는 위험한 줄타기를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정치권 한쪽에서는 안 후보가 논란에도 불구하고 박 전 대통령의 사면에 대해 명확히 선을 긋지 않는 것이 의도된 전략일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 안 후보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 등이 “대통령이 되면 박 전 대통령을 절대 사면하지 않겠다고 똑 부러지게 입장을 밝혀주시면 좋겠다”고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묵묵부답’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사면 발언은 안 후보 측이 보수 후보부터 고갈시키겠다는 전략”이라며 “보수 후보의 지지율이 10%도 채 안 나오기 때문에 보수 후보의 표를 먼저 흡입하는 것을 염두에 둔 것 같다. 탄핵 찬성자가 많은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굳이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은 보수표를 장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안 후보는 중도·보수 표심과 절대적 지지기반인 호남 표심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줄타기에 들어선 셈인데,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게 문제다. 안 후보가 산토끼를 잡으려고 국내 정치나 외교·안보 현안에서 보수적인 목소리를 낼 경우 그렇지 않아도 문 후보가 공고히 구축해 놓은 집토끼 영역의 공략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고, 호남의 민심 이반도 신경 써야 한다. 그렇다고 보수로의 확장을 도외시한다면 문 후보와의 대결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는 똑같이 중도·보수확장을 시도하면 상승세를 탔던 안희정 후보가 ‘선의’ 발언으로 기세가 꺾였던 것처럼, 최근 상승탄력을 받고 있는 안철수 후보에게도 위기가 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안 후보의 입장이 어떠냐에 따라서 논란이 커질지, 아닐지 달라질 수 있다”며 “당사자의 진위 여부 표명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국민의당 대선주자인 안철수 후보(왼쪽)가 3일 오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69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