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재훈 기자]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건 푸줏간 주인, 술도가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생각 덕분이다."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가 저서 '국부론'을 통해 밝힌 유명한 말이다. 개개인의 사익 추구가 결국 사회 전체 이익을 낳는 현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쫓아 장사를 하거나 사업에 뛰어든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경제 행위가 사회 전체의 이익, 나아가 공익적 가치마저 실현하고 있다면, 이 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국내에는 여전히 기술력과 창의성을 한껏 담아 제품을 만들었지만, 어떻게 팔아야할지 몰라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 적지 않다. 바로 이런 이들에게 구세주와 같은 이가 등장했다. 자신과 인연을 맺은 모든 이들에게 '좋은 현상'을 일으키겠다는 사람. 유현상 대표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9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 첫 인사를 나누는 찰나에도 유현상(사진) 좋은현상 대표의 휴대전화는 잠시도 쉬지를 않았다. 휴대전화 속 그의 지난 6개월간의 일정표에는 하루에 기본 서너 개의 일정이 빼곡하게 저장돼 있었다. 사실 그는 13년차 현직 쇼호스트다. 지금도 매주 많은 방송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유 대표는 삼성전자 사내 홈쇼핑 방송팀을 시작으로 홈쇼핑 업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GS홈쇼핑 공채를 통해 정식으로 쇼호스트가 됐다. 지난 2014년 5월 퇴사하기 전까지 GS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퇴사 후 지금은 프리랜서 쇼호스트로 T-커머스(television commerce)의 일종인 녹화방송 홈쇼핑을 비롯해 여러 홈쇼핑에서 활동 중이다.
경험에서 얻은 교훈…"잘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어느 날 문득 '10년 후에도 내가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스치더군요. 국내에서 50대 쇼호스트, 그것도 남자 쇼호스트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자연스럽게 제 미래를 걱정하게 됐죠." 여느 직장인처럼 유현상 대표도 노후 걱정에 사업을 시작했다. 첫 도전은 요식업이었다. "2011년 홍대에 분식 바(Bar)를 냈어요. '내가 방송 마케팅 일을 해왔는데 이것을 한번 요식업에 적용해 볼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으로 시작했죠. 또 제가 요리에 관심이 많아서 한식조리사 자격증이 있기도 했고요." 결과적으로 분식 바는 대성공을 거뒀다. "맛집을 소개하는 인기 티비 프로그램에도 소개되고, 일본 도쿄티비에도 소개가 되면서 일본 관광객들까지 문전성시를 이뤘죠. 그런데 3년째가 되니 방송일과 함께 운영하기에는 도저히 힘에 부치더라고요. 가게에만 200% 집중해도 될까 말까한 게 자영업인데, 제가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결국 그는 미련 없이 가게를 정리했다.
열정적인 그의 성격 탓일까. 휴식은 짧았다. 반년 남짓 방송에만 집중하던 그는 돌연 회사를 차렸다. 바로 지금의 좋은현상이다. "2014년 10월6일입니다." 그는 회사 창립일을 주저없이 답했다. 그만큼 회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쇼호스트로 방송을 오랫동안 하다보니 '어떻게 하면 고객들이 조금 더 관심을 주실까 조금 더 매력을 느낄까' 하는 점을 항상 연구하게 됐죠. 방송 경력이 10년이 넘어가고 생방송 횟수만 4000번이 넘다보니 시장 트렌드를 굳이 쫓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더라고요. 제품 기획부터 판매 전략까지 오롯이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됐죠." 유 대표는 자신이 '스타' 쇼호스트는 아니라고 연신 손사래를 쳤지만 최소한 홈쇼핑 좀 본다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인기 쇼호스트인 것만은 확실하다. "다시 사업을 하게 된다면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또한 요식업 경험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죠. 사업은 마음만 가지고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요. 회사 설립을 준비하면서 제 자신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돌아보게 됐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물건 파는 거 하나는 누구보다 자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좋은현상은 비디오 커머스 회사다. 비디오 커머스란 스마트폰 등 모바일 동영상을 통해 크리에이터들이 직접 제품을 시연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소비자가 간접 체험을 할 수 있게 해 제품 구매를 유도하는 새로운 전자상거래를 일컫는다. 흔히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을 플랫폼으로 활용해 1분 내외의 짧은 동영상을 통해 제품 홍보를 하는 식이다. 비디오커머스는 MCN(다중채널네트워크)과도 맞닿아 있는 사업 모델이다. "제품 영상을 100여편 찍었죠. 호응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또 제품 거래처를 찾기도 쉬웠죠. 제가 현직 쇼호스트니까 일반 크리에이터보다 더 신뢰를 가지고 계약을 해줬던 것 같아요." 그러나 매출은 형편없었다. 2015년 1억1000만원에 이어 지난해 2억1000만원의 매출에 머물렀다.
기존 틀 버리고 자기 색깔 입히니 '대박'
좋은현상은 설립 후 2년 동안은 기존 비디오 커머스 방식을 고수했다. 그 사이 경쟁사들도 늘어난 데다, 공들여 영상을 제작하면 아이디어만 빼먹고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기 일쑤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죠. 결국 제가 빛을 볼 수 있는 곳은 홈쇼핑이더라고요. 페이스북이나 유튜브가 아니라 홈쇼핑에서 제품을 팔아보자고 생각했죠."
그가 선보인 첫 제품은 1회용 수세미다. 지난해 우연히 메가쇼라는 박람회에 들렀다가 1회용 수세미 제조사를 발견한 것이다. "제품을 보자마자 ‘이건 된다’는 생각이 번쩍이더군요. 홈쇼핑에서 팔아보자고 처음 제안을 드렸을 땐 완강히 거절하셨어요. 삼고초려 끝에 제게 판매를 맡겨 주셨죠." 그의 첫 '작품'인 1회용 수세미는 기획부터 판매까지 철저하게 유 대표의 손을 거쳤다. "하루 1개 1년 동안 쓸 수 있는 수세미라는 콘셉트를 잡았죠. 60매 롤 6개에 사은품으로 낱장 5매를 끼워 365매를 맞췄습니다." 지난해 8월 공영홈쇼핑을 통해 첫 방송이 나갔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채 열 번이 안 되는 방송을 통해 2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좋은현상을 만나기 전까지 이 회사 매출은 2000만원대에 불과했다.
판매 채널을 홈쇼핑으로 전환한 유 대표의 전략이 들어맞은 셈이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은 '자연으로'라는 주방 배수구 거름망이다. "아내를 도와 집에서 설거지를 하는 데 배수통에 낀 음식물 쓰레기를 탁탁 털면서 '이걸 왜 매번 씻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배수통도 1회용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곧바로 인터넷을 검색했고 저와 비슷한 생각으로 제품을 만들고 있는 중소기업을 발견했죠." 그길로 그는 천안의 업체를 찾아갔다. 앞뒤 사정을 말하고 함께 제품을 만들어 팔아보자고 제안했다. 업체는 직원 2명의 벤처회사였다. 이번에는 유 대표가 제품 제작 과정부터 참여해 제품 디자인에 대한 조언부터 제작 설비에까지 투자 했다. 그렇게 몇 달을 매달려 시제품을 완성했다. 지난달 27일 첫 방송을 탔다. 60분으로 편성된 방송에서 30분 만에 매출 1억원을 넘겼다. 이후 지금까지 한 번의 방송을 더해 총 2회 방송으로 2억원 가량의 매출을 기록했다. 역시 대박을 친 셈이다. 다른 홈쇼핑 업체의 러브콜은 물론 온라인 몰과 대형마트 입점도 앞두고 있다.
"저는 '돈 버는 일'이 즐겁습니다.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준비하고 기획하는 과정들이 제 가슴을 뛰게 만드는 거죠. 쇼호스트는 제 천직이라고 생각합니다. 방송에서 말 그대로 신나게 팔고나면 정말 뿌듯합니다."
유현상 대표는 올해 회사 매출 목표를 160억원으로 잡았다. 전년 대비 80배에 달하는 액수다. 그는 목표달성을 자신했다. 3연타석 홈런도 준비 중이다. 세 번째 제품이 곧 전파를 탈 예정이다. "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회사의 모습은 '글로벌 홈쇼핑 아울렛'입니다. 좋은 제품은 있는데 판로를 찾지 못하는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저희 회사를 '플랫폼'으로 활용해 국내는 물론 해외 수출까지 할 수 있게 만들 계획입니다. '유현상을 만났더니 자꾸 좋은 현상이 생기더라'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싶습니다.”
유현상 좋은현상 대표가 홈쇼핑 방송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제공=좋은현상
정재훈 기자 skjj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