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재훈 기자] "막상 와보니 상대적으로 인기 없는 직무만 채용하는 기업이 많은 것 같아요"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중견기업 100만+ 일자리 박람회' 현장. 전공을 살려 IT(정보기술) 관련 직무에 지원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대졸생 김모(24)씨는 "기업을 둘러보면서 면접이나 상담을 받아 보려고 했는데, 막상 자신에게 맞는 직무가 거의 없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기대를 가지고 입장했지만 실망을 안고 떠난 특성화고 학생들도 수두룩했다. 김은영(18·분당경영고) 학생은 "이번 박람회에서 특성화고 채용을 하는 기업이 10개밖에 되지 않는 데다 그나마 관광서비스과인 내가 지원할 수 있는 일반사무직렬에 해당하는 직무는 몇 개 없어서 지원을 하고 싶어도 실제로 지원할 수 있는 회사와 직무가 매우 적다"며 뒤돌아섰다.
이날 일자리 박람회는 중소기업청이 주최하고 한국중견기업연합회의 주관으로 열렸다. 그동안 공공·민간 주최의 다양한 일자리 박람회가 열렸지만 중견기업만 따로 모아서 박람회를 개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람회에 직접 부스를 만들어 참여한 기업은 총 67개다. 여기에 온라인으로만 참여한 기업 20개를 더해 총 87개사가 참여했다.
현장에 부스를 설치한 67개 기업 가운데 업종별로 살펴보면, 기계장비 제조업이 15개사로 가장 많았고 사업지원 서비스업이 14개사로 뒤를 이었다. 더불어 기타 제조업 9개사, 전기전자 제조업 8개사, 건설업 5개사, 의약품 제조업 5개사, 교육 서비스업 3개사, 정보통신 서비스업 3개사, 뉴스 제공업 1개사 등이 참여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2015년 말 기준으로 국내 중견기업은 3558개사로 국내 전체 기업 가운데 0.1%에 불과하다. 중견기업 근로자 수 역시 115만여명으로 전체의 5.5% 수준이다. 하지만 이들 중견기업의 한해 매출액은 620조원으로 국내 기업 전체 매출의 17.3%에 달하는 만큼 탄탄한 기업들이기 때문에 구직자들의 관심도 적지 않다. 또한 중견기업들 입장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끼어 인재 채용에 어려움을 겪었던 터라 이번 박람회는 의미가 깊다.
그러나 비인기 직무나 질 낮은 일자리가 줄을 잇자 실망을 안고 박람회장을 떠난 구직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한 신용평가사의 경우 상대적으로 인기 있는 신용평가 등 사무직은 이번 박람회를 통해 채용하지 않는다.
반면 채권추심, 채권수임(영업) 등 비인기 직무는 두 자릿수 채용한다. 선택의 폭도 좁았다. 한 가구사의 경우 법무, 세무·회계 두 직무를 채용 중이었다. 하지만 지원자격을 관련 전공자로 제한을 두고, 세무사·회계사 1차 합격자를 우대하는 등 이제 막 첫 직장을 구하는 청년들에게 높은 장벽으로 다가왔다. 때문에 박람회에 참석한 구직자들은 "회사나 직무 선택 폭이 제한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고졸채용도 턱없이 부족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된 이날 박람회장에는 80% 이상이 교복을 입은 고교생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둘러볼 수 있는 부스는 많지 않았다. 박람회에 참여한 87개 기업 가운데 고졸 채용을 하는 곳은 단 10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고등학교 교사는 "대기업은 정부 정책 때문에라도 제한경쟁으로 고졸 채용이 꾸준히 이뤄지고, 중소기업도 인력난 해소를 위해 고졸 취업이 많이 이뤄진다"라며 "중견기업은 대기업처럼 고졸 채용을 해야한다는 강제성이 없어서인지 대부분이 대졸 이상의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하루 이뤄지는 박람회에서 몇 명의 구직자가 직업을 얻을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중견기업 100만+ 일자리 박람회 현장. 교복 입은 특성화고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사진=뉴스토마토
정재훈 기자 skjj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