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희석·임효정 기자] 지난해 3월 이세돌과 구글 알파고의 바둑 대국을 계기로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이 사회·경제적 과제로 부상했다. 19대 대선에서도 4차 산업혁명이 주요 의제로 등장했다. 반면 현실은 초라하다. 기업과 정부의 4차 산업혁명 준비는 낙제 수준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는 크게 뒤지고 중국 등 신흥국들에게는 따라잡힐 위기에 놓였다.
스위스 금융그룹 USB가 지난해 초 세계 140개국을 대상으로 4차 산업혁명 준비 수준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25위에 그쳤다. 미국, 독일 등 선두주자들은 물론 일본(12위), 타이완(16위), 말레이시아(23위) 등 같은 아시아권 국가들보다도 뒤쳐졌다.
기업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위기의식은 훨씬 심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국내 4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곳 가운데 7곳이 “4차 산업혁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글로벌 기업의 4차 산업혁명 대응 수준을 10점으로 했을 때 우리나라 기업들의 대응 수준은 7.1점에 그쳤다. 산업별로는 제조업이 7.2점, 서비스업이 7.0점이었다. 정부의 대응 수준은 더 심각했다. 선진국의 4차 산업혁명 대응 수준을 10점으로 했을 때, 우리나라는 6.3점에 불과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이 미흡한 이유로는 과도한 규제 및 기반시설 부족이 꼽혔으며, 서비스업 기업들은 제조업 중심의 경제정책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 준비를 위한 자금 마련도 어려운 상황이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 결과, 중소기업의 절반 이상이 스마트공장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80% 넘는 곳이 투자금에 대해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중기중앙회가 지난 1월부터 본부와 지역본부 등을 통해 전국적으로 스마트공장 참여의향서를 접수 받은 결과, 두 달 만에 약 1882곳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중기중앙회의 올해 지원 예산 418억원은 이미 모두 소진된 상태라 선정의 어려움이 있다. 이에 중소기업계가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에 추가 예산을 건의해 관련 부서에서 검토 중이다.
국내 산업계의 뒤쳐진 4차 산업혁명 준비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해외 모델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전자·자동차 등 특정 분야 비중이 높은 국내 경제구조 특성에 맞는 한국형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는 조언도 커졌다. 기업 활동의 역동성을 높이고 창의·혁신적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 시스템 개혁이 필수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조윤정 산업은행 산업기술리서치센터 선임연구원은 "제조혁신의 시급성이 높은 중견·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스마트공장(정보통신기술과 결합된 미래형 공장)을 확산해야 한다“며 ”서비스업은 단기간에 획기적으로 발전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어, 국내 기업들이 경쟁력을 보유한 제조업에 서비스업을 접목하는 우회적 접근이 효과적“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교육·금융·보건·문화 등 생활밀착형 서비스에 ICT를 융합한 새로운 서비스를 조기에 산업화해야 한다”며 “AI,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지식재산의 확보와 활용을 확대하고 연구개발(R&D) 투자의 질적 성장을 위해 정부와 산업계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희석·임효정 기자 heesu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