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해양 소양(素養)과 지·중·해(地·中·海)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

입력 : 2017-05-29 오전 6:00:00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
마크 쿨란스키는 그의 책 '대구'에서 이 흔한 생선이 어떻게 유럽문명 발전사의 중심으로 등장했는지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 한 때 유럽인이 먹던 생선의 60%가 대구였다. 이를 매개로 한 삼각무역으로 신흥 세력인 ‘대구 귀족’이 나타났고, 잉글랜드와 에스파냐는 바다에서 무역 전쟁을 치렀다. 이 작은 생선처럼 바다가 역사의 흐름을 바꾼 예는 많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중세 이후 중국이 급격히 쇠락한 원인을 대양 진출의 쇠퇴로 보았다. 명조 영락제 사후 정화(鄭和)의 대양 원정이 막을 내리면서 해로를 통해 얻던 막대한 경제적 혜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제 발전도 해양력 신장의 역사다. 후발 주자였지만 어느새 해양강국의 대열에 올라섰다. 우리가 관할하는 바다는 국토의 4.5배이고, 선박 보유 척수는 세계 5위, 컨테이너 물동량은 세계 4위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해양생물 다양성, 서울-부산 거리의 33배인 해안선과 갯벌 등 해양자산도 풍부하다. 그러나 이러한 해양 잠재력에 비해 해양산업 규모가 작고, 국가와 지역 경제의 동력으로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세월호 사고, 해운 위기, 연근해 자원량 감소 등으로 해양수산의 침체기가 길어지고 있다. 우리 해양수산이 지금의 어려움을 넘어 강한 체질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재조해양(再造海洋)의 심정으로 새로운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시급한 두 가지를 제안한다.
 
먼저 바다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국민 인식을 높여야 한다. 1994년 유엔 해양법 발효로 해양주권 경쟁시대가 열리면서 각 국이 바다의 가치와 중요성을 재평가 하였다.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 해양강국은 물리적 해양력 뿐만 아니라 경쟁적으로 해양교육에 투자했다. 해양에 대한 국민 개개인의 이해와 관심을 바다를 선점하는 열쇠로 보고, 소위 ‘해양 문맹’을 없애는데 주력했다. 특히 미국은 국민이 알아야 할 7가지 해양 소양(ocean literacy)을 만드는 등 체계적인 해양교육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반면 국내 해양 교육의 양과 질에 있어 아직 갈 길이 멀다. 한 예로 초등학교 교과서 중 바다에 관한 내용은 6%에 불과하다. 이에 우리 정부도 지난 4월 ‘해양교육 종합로드맵’을 발표하며, 해양 과학·영토·산업·문화·진로 등 5개 분야별로 학교·사회를 통한 해양교육 활성화에 발 벗고 나섰다. 어린이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이 다양한 해양 지식과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여 ‘한국형 해양적 소양’을 쌓고, 관련 교육 기관을 확충하여 해양인재를 양성해 나갈 계획이다.
 
바다의 잠재력을 이끌어낼 다음 해답은 ‘지·중·해(地·中·海)’에 있다. 연안 지자체(地)와 중앙 정부(中)가 바다(海)를 매개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27.4%가 거주하는 연안은 국내 GDP의 3분의 1인 약 482조원을 창출하는 국가 경제의 곳간이다. 영국, 일본 등 해양 선진국도 저성장 시대를 넘는 수단 중의 하나로 연안·해양에 주목하고 있으며, 지역과 함께 만든 종합 발전전략을 차근차근 실행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항만, 어촌 등 분야별 전략은 갖추고 있으나, 연안과 해양이라는 공간을 기반으로 이를 아우를 수 있는 거시 전략이 없었다. 그동안 획일적인 기성복만 입었지, 맞춤 정장을 입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에 정부는 ‘6+1 연안·해양 권역별 발전구상’이라는 청사진을 마련하고 있다. 6개 연안권과 1개 내륙권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해양수산 발전 전략이다. 예를 들어, 충남-전북권은 ‘환황해 연계해역권’으로 묶어 대중국산업 유치와 투자 활성화 거점으로 삼고, 부산-울산은 ‘동북아 거점해역’으로 조선·해운·항만 상생을 지원하여 동북아 해양수도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마침 광역·기초 지자체들이 앞 다투어 ‘해양수산 발전계획’을 내놓고 있다. 이를 기초로 중앙 정부의 전략적 지원이 뒷받침되면, 우리 연안·해양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며칠 앞으로 다가온 5월 31일은 올해로 스물 두 돌을 맞는 ‘바다의 날’이다. 134만 해양수산 종사자의 축제일이자, 해양수산의 새로운 비전과 방향을 선보이는 날이다. 이번 바다의 날의 화두는 ‘국민, 지역 사회와 소통하는 해양수산’이다. 해양 문맹이 없는 대한민국, 지방과 중앙이 함께하는 지중해(地中海) 전략을 통해 만들어 가는 새로운 해양수산 강국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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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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