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재훈기자] 2010년 출범한 '세진플러스'는 장애인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는 사회적기업이다. 국내 의류생산을 주력사업으로 하는 이 회사는 OEM, ODM 방식으로 기성복 브랜드에 납품은 물론 근무복, 작업복 등 모든 종류의 의류를 생산한다.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일한다. 세진플러스는 특히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힘든 지적장애인을 고용해 꾸준한 직무교육과 자기개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신사업에도 도전한다. 2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탄생한 '폐섬유로 만든 슬레이트'로 건자재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를 통해 정부 지원 없이도 사회적 활동을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21일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위치한 세진플러스 사무실에 만난 박준영
(사진) 대표는 "세진플러스는 지적장애를 가진 친구들에게 맞춤형 직무교육 개발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회사"라고 소개했다. 20여명의 직원 가운데 10명 이상이 크고 작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다. 여기에는 지적장애인 3명도 포함돼 있다.
딸 세진이 위해 사회적기업가로 거듭나
지난 1976년 불과 13살 나이에 봉제공장에 취직한 박 대표는 40년 넘게 의류·섬유 분야에 종사해왔다. 1988년 회사를 설립하고 유명 기성복 브랜드에 OEM, ODM 방식으로 납품을 시작했다. 또 회사 근무복, 각종 제복, 환경미화원 작업복 등 특수 의류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의류를 만들었다.
박 대표는 10년 전 멀쩡하게 잘 운영하던 의류제조 사업을 돌연 모두 정리했다. 지적장애를 가진 둘째딸 세진이 때문이었다. 그는 "앞으로 세진이가 살아갈 환경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더라"면서 "2년 동안 서울·경기 지역에 있는 장애인시설 100여 곳을 돌아보고 내린 결론이 '직접 세진이와 같은 친구들을 위한 좋은 직장을 만들자'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박 대표는 의류 제조업의 특기를 살려 일자리 창출형 사회적기업을 시작했다. 그는 "우리 딸이 아니었으면 지금도 그냥 원래 하던 사업을 계속하며 평범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사회적기업이라고 하면 굉장히 열심히 좋은 일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나는 단지 우리 딸 그리고 우리 아이와 같은 친구들이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라며 "대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솔직한 소신을 밝혔다.
그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세상 모든 '세진이'를 향하고 있다. 그는 요즘 장애인에게 단순히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들 스스로 왜 일을 해야하는지 깨닫게 하는 '직업의식'을 심어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세진플러스는 지적장애인을 채용할 때 최소 6개월에서 1년간 면접을 진행한다. 그 사람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반대로 못하고 싫어하는 일은 무엇인지를 오랫동안 지켜보고, 개개인의 역량과 특성에 맞는 직무를 찾아주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직업 활동에 대한 동기부여를 위해 자기개발 활동도 지원한다. 그가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뮤지컬이다. 지난 연말에는 사회적기업인 극단 '날으는 자동차'의 도움을 받아 지적장애 직원 3명이 주연을 맡은 뮤지컬 '러브 액츄얼리'가 무대에 올랐다.
40년 의류·섬유 베테랑…친환경 폐섬유 건자재 개발
세진플러스는 '잘나가는' 사회적기업이다. 중견 건설사인 계룡건설로부터 4억원이 넘는 근무복 제작을 수주했을 정도로 품질도 인정받고 있다. 탄탄한 거래처 확보로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고 있다. 박 대표는 "지난해에는 신사업 연구개발에 매진하다보니 매출이 6억원 정도로 주춤했지만, 올해는 의류 제조로만 10억원 이상 매출 달성이 무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진플러스는 올해 전환점을 앞두고 있다. 2년이 넘는 연구 끝에 폐섬유를 압축해 만든 슬레이트 '플러스넬' 개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기술로 각종 건축 내외장재는 물론 공원의 벤치, 심지어 보도블록도 만들어 냈다. 무엇보다 폐섬유를 원부자재로 사용하다보니 생산원가가 저렴하다. 게다가 사용한 제품을 또 다시 재활용할 수 있어서 건축폐기물도 거의 발생하지 않는 친환경 제품이다.
벌써부터 플러스넬에 대한 반응이 심상찮다. 올 초 '스리랑카 트랜스텍스타일'이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산업지속가능성 센터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센터는 의류·섬유산업이 전체 산업 비중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스리랑카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양의 섬유폐기물을 세진플러스의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박 대표는 정식으로 초청을 받아 지난 2월 스리랑카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관련 기술에 대해 강연한 박 대표는 현지 기업들로부터 수많은 러브콜을 받았다. 박 대표는 "스리랑카는 섬유산업이 발달한 만큼 폐섬유 처리에도 골머리를 썩고 있다"면서 "현지 기업들이 우리가 개발한 고밀도 섬유패널을 건축 내외장재로 사용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요청이 있었다"고 밝혔다. 현재 마스(MAS)를 비롯한 스리랑카 대기업 3곳과 관련 기술과 설비 수출에 대해 협의를 진행 중이다. 마스는 의류제조기업 등을 계열사로 두고 16억달러(약 1조8200억원)의 연매출을 올리는 스리랑카 굴지의 기업 가운데 하나다.
최근에는 멀리 아프리카 짐바브웨 정부로부터도 연락이 왔다. 세진플러스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파견돼 있던 짐바브웨 연구원이 세진플러스의 기술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짐바브웨 환경부는 자국의 페트병 폐기물 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세진플러스의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페트병은 폴리에스테르 계열의 화학섬유와 근본적인 성분이 같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서도 똑같이 플러스넬을 만들 수 있다. 박 대표는 "짐바브웨 정부에서 우리 기술에 대해 관심이 굉장히 많다"며 "향후 계획 등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청계천에서도 곧 세진플러스 제품을 볼 수 있게 됐다. 서울시가 낡은 청계천 벤치 정비에 나서면서 기존 목재 벤치를 대신해 세진플러스 제품을 사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플러스넬은 목재처럼 썩지도 않을뿐더러 방수도 된다"며 "또한 목재 사용을 줄여 궁극적으로는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요즘 국내외에서 찾아오는 바이어 손님들 덕에 쉴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는 계획이다. 박 대표는 "딸 세진이와 우리 직원들이 아니었으면 플러스넬을 개발해 보겠다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라며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지 않고도 기업의 활동으로 더 많은 사회적 활동을 하기 위해 플러스넬로 건자재 사업에서 수익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더 많은 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장기적인 플랜도 짜고 있다. 전국 지자체들과 일반기업, 사회적기업 등이 힘을 모아 '공동체마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는 "장애인 복지와 일자리를 함께 제공할 수 있는 이러한 사업모델에 많은 지자체가 적극 나서도록 하고 있다"며 "공동체마을 하나 당 최소 15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준영 세진플러스 대표(가운데)와 직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세진플러스
정재훈 기자 skjj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