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10일 장충기 삼성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의 문자 메시지로 드러난 삼성을 향한 각 계의 로비 청탁 의혹과 관련해 "더 이상 검은 마수로 우리사회의 정의와 상식, 양심이 농락당하는 일이 없도록 삼성의 잘못된 모습을 바꿔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른바 '관리'라는 부정한 로비로 만들어온 삼성공화국의 민낯이 확인됐다"며 "특검이 법원에 제출한 장충기 사장과 언론사 간부, 전직 검찰총장, 학계 교수들 사이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는 노골적이면서도 양심과 상식에 반하는 수많은 청탁과 로비의 정황이 담겨져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공화국' 단어에는 삼성의 힘과 함께 부정부패, 로비 등의 부정적 이미지도 함께 녹아있다. 독일에 본부를 둔 국제투명성기구(TI)에서 발표한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35개국 중 29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무엇보다 부정부패의 중심에 삼성을 비롯한 재벌과 정치권력, 언론 등 이른바 기득권층이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고사하고, 이들이 철저히 자기이해 중심으로 유착하면서 끝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같은 비극을 불러왔다.
우리나라의 부패는 정치인과 재벌 같은 고위층들이 개인적인 부 축적을 위해 함께 뭉쳐 일으키는 '엘리트 카르텔'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모범이 되고 고도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엘리트 집단들이 부패와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다.
김종훈 산업2부장.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는 “도덕성이 살아야 정의도 살 수 있고, 무너진 원칙도 다시 바로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사회의 도덕성은 밑바닥을 보일 정도로 사회지도층에 대한 불신이 크다. 정경유착, 권언유착 등 엘리트 부패가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가 된지 오래다.
문재인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화두로 7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며 그동안 잘못됐던 일들을 바로 잡는데 힘쓰고 있다. 하지만 수십 년 간 이어진 이 강한 유착들이 정의를 추구하는 대통령 한명이 나서 척결하려 한다해서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권력에 자의든 타의든 줄서기를 하는 언론들이 장충기 사장의 문자가 공개된 후에도 정신을 못 차리는 듯하다. 재벌 회장들이 구속되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기사가 ‘회장 부재로 경영차질을 빚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날도 어김없이 삼성증권을 빌미로 경영차질을 빚는다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제목만 읽어도 오글거리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시민들의 지적 수준을 무시하는 처사인지 아니면 그냥 대놓고 권력과 금권에 충성하자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삼성은 경영차질을 빚기는커녕 창사 이래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 영업이익과 매출 등 모든 부분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영업이익 14조700억원에 매출 61조를 벌어들이면서 반도체 분야 세계 1위를 지켜온 인텔마저 추월할 기세다. 삼성 같은 대기업이 총수 한명이 잘해서 굴러가는 조직이라고는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수많은 인재들이 모여 각자 맡은바 소임을 충실히 했기에 이룩한 결과다.
총수가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식의 논리는 이미 국제적으로 웃음꺼리가 됐다. 특히 총수들이 수사대상이 되기만 하면 휠체어를 타고 병원에 드러눕는 사실은 외신에서도 신기해하며 집중 보도하는 아이템이다. 대표적인 게 영국의 경제신문인 파이낸셜 타임스(FT)가 뽑은 "As things get tough, S Korea's bosses get rolling"(곤란한 일이 생길 때마다, 한국의 재벌총수들은 휠체어를 탄다)는 헤드라인이다.
총수가 비리사건에 연루돼 처벌을 받게된 기업들은 광고와 협찬 등을 활용해 언론플레이를 시도한다. 회장의 부재로 회사가 망할 지경이라는 논리를 전파하는 것인데, 시민들의 높은 수준에서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그 정도로 비체계적 회사라면 한국경제를 위해 빨리 없어지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절대다수 국민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언론과 기업의 유착이라는 꼬리표만 남길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민심의 열망은 적폐청산과 정의가 살아 있는 ‘사람사는 세상’을 열어주기를 꿈꾸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사회의 모습이다.
김종훈 산업2부장 f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