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상윤 기자] 한진해운 파산은 하나의 물류회사가 사라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한국 해운산업에 대한 화주들의 신뢰 하락은 수출입 화물 99%를 해상에 의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으로선 중대한 손실이었다. 올해 2월 화물부문 해상운송수지는 4450만달러(5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6년 1월 이래 첫 마이너스였다. 국내 화주들이 국적 선사보다 해외 선사를 더 많이 이용했다는 의미다.
한진해운의 빈 자리는, 부족하지만 현대상선과 SM상선이 이어받았다. 화주들의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 중이지만 한 번 돌아선 화주들의 마음을 되돌리긴 녹록치 않아 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짧은 시간에 청산되면서 관련 업계를 떠난 사람들도 꽤 많다"며 "지난 일이지만 제대로 된 결정은 아니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꽤 영향력이 있었다. 양사는 각각 글로벌 얼라이언스(해운동맹) 'CKYHE'와 'G6'에서 항로 개설과 선복량 조절 등을 주도하며 전 세계 항만을 연결했다. 그러나 이제는 해운동맹에 참여하는 것마저도 위태롭다. 업계는 100만TEU 이상의 '메가 컨테이너 선사' 없이는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한국 해운산업은 소외될 것이란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30일 <뉴스토마토>가 한진해운의 지난해 반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별도기준 한진해운의 총 부채와 자본은 각각 6조285억원과 5958억원이다. 부채비율이 1011%를 웃돈다. 부채는 2008년 금융위기가 불러온 세계 경기 침체로 인한 물동량 감소와 운임 하락에 기인했다. 여기에 한진해운은 직전 해에 다수의 선박을 장기간 용선한 것이 부메랑이 됐다. 용선이란 선주로부터 선박을 빌리는 것을 뜻하며, 용선료는 그에 대한 사용료다.
지난해 상반기 말 기준 한진해운은 컨테이너선 92척(61만TEU)과 벌크선 44척(445만t)을 운영했다. 이중 장기용선 계약을 맺은 컨테이너선과 벌크선은 각각 55척(34만TEU)과 22척(230만t)이었다. 상반기에만 용선료로 1조1112억원을 냈다. 전체 영업원가(3조3478억원)의 33.19%에 해당한다. 또 ▲2016년7월~2017년6월 8595억원 ▲2017년7월~2021년6월 2조9321억원을 비롯해 2021년 7월 이후 1조6639억원 등 모두 5조4556억원의 용선료 부담을 안고 있었다.
문제는 비싼 용선료에 있었다. 글로벌 1위 선사 머스크도 용선 규모는 절반을 넘는다. 머스크의 지난해 연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컨테이너선 639척(324만TEU) 가운데 용선은 347척(131만TEU)이다. 한진해운의 컨테이너선 용선 규모와 비교하면 척수로는 6배, 선복량으로는 4배 이상 많다. 반면, 머스크가 지불한 용선료는 25억9000만달러(2조9163억원)다. 전체 영업원가 286억9800만달러(32조3139억원)의 9.02%에 불과하다.
한진해운의 비싼 용선료는 재무건전성에 악영향을 줬다. 전직 한진해운 관계자는 "해운사는 사선과 용선 비율을 비슷한 규모로 유지해 원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면서도 "한진해운은 글로벌 경기 침체를 예측하지 못하고 비싼 값에 대규모 용선 계약을 한 결과가 악영향으로 작용해, 버는 것보다 용선료가 더 많이 나가면서 부채가 늘었다"고 말했다.
현대상선의 용선 규모도 80%를 넘는다. 전체 101척 선박 가운데 용선이 82척, 사선(회사 소유 선박)은 19척이다.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은 "그동안 높은 용선료로 고생한 측면이 있는데, 올해 5월부터 내년 1월까지 고 용선료 선박 10척 정도를 반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싼 용선료를 내고 빌려온 선박 10척을 선주에게 돌려주겠다는 뜻이다.
한진해운과 머스크 용선료 비교, 글로벌 상위 3개 선사와 국적 선사 선복량과 시장 점유율 비교. 제작/뉴스토마토
한진해운 파산과 함께 글로벌 해운시장도 재편됐다. 소수의 선복량 상위 선사들이 중소 선사들을 흡수하며 선대를 확장했다. 프랑스 해운분석기관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이달 기준 머스크 선복량은 354만TEU로 16.7%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MSC(309만TEU)와 CMA CGM(246만TEU)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14.6%와 11.7%다. 이들은 지난해 8월 한진해운 파산 직전보다 선복량이 20만~30만TEU 늘었다. 시장점유율도 15.4%(머스크), 13.4%(MSC), 11.1%(CMA CGM)에서 0.6~1.3%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국적 선사는 절반 넘게 줄었다. 이달 기준 현대상선(38만TEU)과 SM상선(5만TEU)의 시장점유율은 모두 더해도 1.9%에 불과하다. 지난해 8월 한진해운(62만TEU)과 현대상선(44만TEU) 시장점유율 5.1%보다 절반 아래로 급감했다.
낮은 점유율은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운신의 폭을 좁혔다. 올해 4월 글로벌 얼라이언스가 재편될 때 한국 선사가 정식으로 참여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해운동맹은 선복량을 확대한 선사들을 중심으로 기존 4개 체제에서 ▲2M(머스크·MSC) ▲오션(CMA CGM·코스코·에버그린·OOCL) ▲디얼라이언스(하파그로이드·NYK·K-LINE·MOL) 등 3개로 재편됐다. 이 과정에서 한진해운은 파산했고, 현대상선은 2M과 3년간 전략적 제휴를 맺는 데 그쳤다. SM상선은 논의 대상조차 안 됐다.
조봉기 한국선주협회 상무는 "현대상선이나 SM상선의 선복량을 무작정 늘리자니 한진해운처럼 과도한 부채로 이어질 수 있어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며 "선복량만 늘리는 게 전부가 아니라 화주의 신뢰 회복과 영업망 확보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많은데 마땅한 해법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신상윤 기자 newm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