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숫자 빠진 요식행위' 당정협의 결과 발표

입력 : 2017-10-26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차현정 기자] “상세 내용은 내일 발표됩니다.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고위당직자가 고위당정협의 결과를 브리핑하기에 앞서 꺼낸 말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집권여당인 민주당 지도부와 정부 간 당정협의와 당과 정부, 청와대 간 당정청협의회가 잇따라 열렸다. 최근 들어 일주일에 한번 꼴로 열린 협의회에선 가계부채 대책과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대책 등을 다뤘다. 협의 끝엔 당이 오전에 먼저 결과를 발표하고 정부 각 부처는 오후 중 공식 발표에 앞서 자료에 엠바고를 걸어둔다.
 
그 때문에 오전 당정협의 기자브리핑에서는 알맹이가 빠진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23일 당정협의에서 14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내년 1월부터 새로운 총부채상환비율(DTI) 산출 방식을 도입하고 내년 하반기부터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당정은 또 취약차주 지원, 가계부채 연착륙 유도, 상환능력 제고에 중점을 두고 가계부채를 관리해 나가기로 했다. 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가계부채 문제는 다양한 문제가 복합돼 단기간 내 해결이 쉽지 않은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종합 대응을 한다는 원칙 아래 취약차주 지원, 가계부채 연착륙 유도, 근본적 상환능력 제고에 중점을 두고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추진하기로 했다”며 원론적인 지침으로 끝맺었다. 핵심인 신DTI·DSR 도입 등은 일찌감치 전에 예고됐던 내용이다.
 
그야말로 내용이 없다. 구체적인 정책과 숫자는 없고 노력하겠다는 말만 담겼다. 최종 조율이 남아 있어 언론에 먼저 알릴 수 없음은 이해된다. 그렇더라도 이번 당정협의는 발표 직전 보고조차 부실했다.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런 요식행위에 불과한 자리였다면 참석하지도 않았을 거라는 취재기자들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취재 나온 기자가 줄어든 건 당연하다. 이날 브리핑 자리엔 열 명 정도의 기자가 참석했다. 통상 스무 명 넘게 자리하던 때와 대조적이다. 당에 힘이 빠진 거다. 급기야 ‘청정당(청와대 정부 당)’이란 소리마저 들린다.
 
통상 당이 정부와 청와대보다 우선한다는 의미로 ‘당정청(당 정부 청와대)’이라고 한다. 통치권과 군통수권이 대통령이 있음에도 청정당 대신 당을 앞세워 당정청이라 칭하는 것은 당이 정치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의정치는 당을 중심으로 운영됨이 마땅한 것이다.
 
당이 민감한 현안에 뚜렷한 입장을 갖고 있지 못한 것도 문제다. 무엇보다 당정협의는 정부 정책이 제대로 된 정책인지, 탁상행정은 아닌지를 확인하는 자리다. 현장 민심과 가까운 당이 이를 거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의 현실은 집권여당이라면서도 정부 정책결정 과정에서 소외되고 입장도, 뚜렷한 행동도 없다. 정부에 영향력을 미치는 역할을 못하는 여당엔 무늬만 있다. 포즈를 취하고 사진만 남는 당정행보는 많이 낡았다. 발표직전 보고하는 수준에 그치는 형식적 당정회의 발표라면 없어도 된다. ‘다들 아는’ 요식행위에 불과한 자리일 뿐임은 집권여당인 민주당도 자인했다.
 
차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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