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원석 기자] 30년 이상 업력을 가진 대기업 계열 제약사들이 시장에서 연이어 철수하고 있다. 의약품 판매 수익성 저하와 신약 R&D 역량 한계로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이 철수 배경으로 보여진다.
대기업이 제약사업에 진출한 것은 1980년대로 거슬러올라간다. 경제 성장과 맞물려 건강에 대한 관심 증진으로 의약품 시장이 호황을 누렸다. 국내 제약산업은 복제약과 내수 영업 중심으로 급성장했다. 대기업 계열 제약사들은 제약을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하고 제약업계에 진출했다. 하지만 대기업이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있지만 제약업계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다는 평가다. 오랜 업력을 바탕으로 영업 기반을 갖춘 전통 제약사들이 제약업계를 주도하고 있다.
대기업이 제약 산업에서 부진한 이유는 의약품 시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주력 사업이 제약업이 아니어서 의약품 개발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졌다. 의약품은 정부 규제가 많아 시장 진입 장벽이 높다는 특성을 보인다. 단기간에 수익을 내기도 어렵다. 신약 1개를 개발하기 위해선 10년 동안 300억~500억원을 투자해야 한다. 전세계에서 임상을 하기 위해선 4000억원 이상 R&D 비용을 사용해야 한다. 변수가 너무 많아 신약 개발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신약 개발 성공 확률은 4000~1만분의 1에 불과하다.
신약 개발의 높은 불확실성과 투자 부담 등으로 그룹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투자에 나서지 않았다. 기존 제약사들과 마찬가지로 복제약와 내수 영업 위주 사업 구조를 보였다. 그룹 차원의 지원보다 독자 경영 형태에 그쳤다. 2010년 무렵 전문의약품 약가인하와 리베이트 규제책 등으로 내수 시장이 위축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2010~2015년 의약품 시장 성장률은 1%미만에 불과했다. 수익성이 저하되자 대기업 계열 제약사는 사업 재편에 나선 것이다.
다만 제약사 매각을 결정한 한화, 태평양제약, CJ와 달리 삼성, SK는 제약을 핵심성장 사업으로 선정해 엇갈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주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글로벌 제약업계에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제약산업은 수익이 없어도 장기간 연구와 투자를 강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결국 오너 사업일 수밖에 없다"며 "대기업 제약사들은 그룹 차원의 주력 사업도 아니었을 뿐더러 CEO 경영 체제여서 신약개발에 10년 장기 투자의 의사결정에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원석 기자 soulch3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