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책임지는 사람 없는 한국정치

입력 : 2017-12-05 오전 6:00:00
한국정치의 개선·발전은 요원한 것일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리가 양파껍질처럼 벗겨지고 있는 현실 앞에서도 보수 정치인들은 ‘계파정치를 넘어 보수우파를 재건’하고 ‘문재인 정부를 견제’하겠다는 미사여구만 늘어놓고 있다. 이들은 과연 정치인으로서 일말의 양심을 가지고 있는가. 거창하게 도덕적 양심을 물을 필요도 없다. 간단히 “부끄러움은 있는가”라고 묻고 싶다.
 
공자는 논어에서 “자신의 말에 대한 부끄러움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천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유한국당을 바라보면, 홍준표 대표와 일부 의원들이 당을 쇄신하고 환골탈태하겠다고 호언장담하지만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두 전직 대통령이 저지른 실정에 대해 수치심은커녕 누구 하나 책임지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 그 뿐인가. 박 전 대통령의 일탈로 조기대선을 거쳐 국가의 운명을 짊어지게 된 새 정부를 “문재인정부, 좌파 천국을 만들고 있다”고 비난하며 여론몰이에 매진하고 있다. 그들이 진정한 정치인이라면 새 정부를 비난하기보다 잘 되기를 기원하고 국가재건을 위해 협조할 줄 알아야 한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된 책임을 통감하고 정계를 물러나는 정치인들도 나와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수치심도 책임감도 느끼지 못한 채 개인의 생존만을 위해 몇 개월째 진흙탕 싸움만 벌이고 있다. 그들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이라는 한자성어를 들어보지 못한 모양이다. 어디 이래서 대한민국 보수의 미래가 있겠는가.
 
우리보다는 조금 나은 정치를 하고 있는 프랑스의 보수는 어떤 모습일까. 프랑스의 정치인들 중에는 선거패배만 해도 책임을 통감하고 정계를 떠나는 신사들이 있다. 지난달 말 프랑스에서는 공화당의 한 거물급 정치인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주인공은 전직 장관이었던 프랑수아 바루앙(Francois Baroin). 바루앙은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로 정계에 입문해 27살에 하원의원이 되었고, 30살에 정부 대변인, 40살에 장관이 되어 프랑스 공화국에서 가장 멋진 이력을 지닌 인물 중 하나다.
 
바루앙은 지난 6월 전진(En marche)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내각을 꾸릴 때 수상 물망에 오른 인물이기도 하다. 52세인 바루앙은 2005년에서 2012년까지(시라크·사르코지 대통령 시절) 해외영토부 장관, 재정부 장관, 경제부 장관을 역임했고 최근에는 우파의 미래로 촉망받는 우파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기자회견을 열어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마크롱 대통령이 성공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나는 더 이상 공화당 당원으로서 활동하지 않겠다. 25년간 해 온 정치를 미련 없이 접겠다”. 바루앙은 자신의 은퇴 이유를 “올해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공화당 오픈프라이머리에서 니콜라 사르코지를 위해 뛰었고, 대통령 선거에서는 프랑수아 피옹을 위해 뛰었다. 그러나 참패했다. 그리고 하원의원 선거 때 선거캠페인을 담당했는데 이 또한 참패했다”고 설명했다.
 
바루앙은 유럽의 비전을 놓고 자신의 생각이 알랭 쥐페(보르도 시장)와 에마뉘엘 마크롱(대통령) 중 어느 쪽에 가까운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나는 아침, 점심, 저녁 시간을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코멘트하는 데 쓰고 싶지 않다. 나는 더 이상 그러한 것에 흥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는 주요 노선을 바꾼 젊은 대통령을 맞이했다. 나는 대통령의 이러한 투쟁이 어쨌든 성공하길 바라고 우리나라가 성공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그의 애정은 공화당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나는 대중운동연합(UMP·공화당 전신)을 창당한 사람 중 하나이고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때까지는 여기에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어느 날 공화당의 생각이 극우(FN)에 가까워진다면 그때는 거리를 두겠다고 분명히 했다.
 
이처럼 프랑스의 공화당 정치인은 보수의 잇따른 실패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정치인생을 마감하는 길을 택했다. 수치심도 책임감도 없이 살아남고자 새누리당에서 바른정당으로, 바른정당에서 한국당으로 옷을 갈아입고 다니는 한국의 정치인들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보수정치인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정치인들이 신사의 품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정치교육을 처음부터 다시 받아야 한다. 수치심을 모르는 사람들, 책임질 줄 모르는 사람들이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아 대의정치를 실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는 우리를 한 없이 부끄럽게 한다. 수치는 수치를 낳는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한다.
 
프랑스의 바루앙처럼 보수의 실정과 실패를 부끄럽게 여기고 책임을 통감하는 정치인이 한국당이나 바른정당에서 이제라도 한 명쯤 나와 살신성인하는 모습을 보여라.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계속해서 서로를 물고 뜯는 밥그릇 싸움만 한다면 보수의 재건은커녕 미래도 없을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려면 건전한 보수·진보가 존재하고, 이들 간 선의의 경쟁이 치열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한 차원에서 한국 보수가 하루빨리 재건되길, 무엇보다 품격 있는 정당으로 탄생하길 바란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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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