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 이런 적이 없는데 이번에 늦네요." 서울시의회 예산담당 공무원이 난처한 듯 말했다.
지난 11월20일이었다. 서울시 집행부가 시의회에 예산안을 제출한 시기는 11월9일이었는데, 그 이후에도 예산안 항목들에 딸린 사업계획 설명서를 계속 수정해서 다시 내고 있었다. 31조원이 넘는 서울시 예산안 세부 내역은 두툼한 책자에 담기는데, 이날에도 수정된 책자를 다시 들고 왔다고 한다.
예산안 수정·제출이 되풀이된 이유는 집행부 예산 담당 부서의 뒤숭숭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지난 9월 과로에 못 이긴 예산 담당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일부 인사가 단행되면서 어쩔 수 없이 차질이 생겼다는 설명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의회가 내년도 예산안을 이번달 15일에 통과시킨 일은 조금 놀라웠다. 5년 만에 법정 처리시한을 지켰으며 하루 앞당기기까지 했다.
집행부 측에서 예산을 총괄한 윤준병 서울시 기획조정실장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시의회가 법정시한을 지킬 수 있었던 요인을 설명했다. 시의회는 상임위원회가 할 일과 예결위원회가 할 일을 분명하게 나눴다. 상임위가 감액한 사업을 예결위가 살릴 수 없으며, 증액 요구 사업은 예결위만 다룰 수 있다는 원칙을 세웠다. 집행부는 상임위의 예비심사과정에 적극 참여할 동기가 생겼고,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시의원들의 '쪽지예산' 등 무리한 증액 요구는 이전보다 줄어들 여지가 생겼다. 상임위는 또 서울시가 제출한 핵심사업을 깎고 나서 다시 복원하는 대신에 다른 사업을 증액하는 관행을 폐기했다. 예결위는 증액 요구 사업 제출을 지난 5일로 못 박고, 계수조정위원 모두가 참석한 전체회의에서 심사를 진행했다.
예산안 통과 권한이 시의회에 있는 만큼, 예산안이 빨리 통과할 수 있었던 이유를 시의회에서 찾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여기에 집행부 예산 담당 공무원들의 노력도 한 몫 했으리라. 올해는 특히 불행한 일로 더 촉박한 시기였다. 윤준병 실장도 페이스북 글 말미에서 "9월의 아픈 상처에도 불구하고 예산작업을 차질없이 마무리해준 (담당 부서에게) 수고하셨고 고맙다"고 적었다.
지방선거를 앞뒀는데도, 지자체가 합리적이고 이성적 태도로 국회도 못한 법정시한 준수를 해낸 것은 칭찬할 만 하다. 그러나 아직은 이르다. 예산의 집행이 남아 있다. 내년 예산 집행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합리적 재량에 따라 오로지 시민을 위해 쓰여야 한다.그것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완성이다.
신태현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