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분리 완화' 반대에 업계 실망…노동이사제 조기도입 우려도

금융혁신위 권고안, 금융감독에 초점…출범 한달된 초대형 IB는 규제 된서리

입력 : 2017-12-20 오후 7:03:00
[뉴스토마토 이종용·양진영 기자] 금융행정혁신위원회가 산업진흥정책보다는 금융감독에 초점을 맞춘 금융행정혁신 권고안을 내놓았다. 인터넷전문은행을 위한 은산분리 완화 반대, 금융사 노동이사제 도입 권고, 초대형 투자은행(IB) 감독강화 등이 핵심 내용으로, 기존 금융권에서는 그동안 정부에 요구했던 규제 완화는 상당 부분 반영되지 않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금융행정혁신위의 권고안을 집행하는 금융위원회도 대부분 권고안을 수용할 것으로 보이는만큼, 업계는 이제 막 출범한 인터넷전문은행이나 초대형 IB 등 금융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신사업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혁신위가 20일 발표한 최종권고안의 주요 내용은 ▲금융행정의 투명성 및 책임성 제고 ▲금융권 인사의 투명성·공정성 확보 ▲인·허가 재량권 행사의 적정성 확보 ▲금융권 영업관행 개선 등이다.
 
금융행정의 투명성 제고 방안으로는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기능의 분리가 관심사다. 혁신위는 금융 정책-감독 체계 개편을 정부 조직 개편과 연계해서 검토하라고 최종 권고했다. 정부 조직 개편 전 단계로 우선 금융위가 자체적으로 '금융 산업 진흥'과 '금융 감독'으로 제대로 구분하라고 주문했다.
 
현재 금융당국은 권역별 조직이다. 산업진흥과 감독, 소비자 보호 등 서로 상충하는 업무를 한꺼번에 통합하다보니 감독 기능이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밀린다는 지적이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금융 감독과 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해 금융 정책과 금융 감독 체계 개편을 공약했었다. 금융위의 금융 정책과 감독 기능을 분리하고, 금융위와 금융감독원 모두에서 소비자 보호 기능을 따로 떼어낸 별도 기구를 만드는 것이 골자다.
 
다만 혁신위에서 권고한 금융감독개편 내용은 금융위 내부에서 정책과 감독 업무를 자체적으로 구분하라는 것이라 금융위원회 해체 또는 감독기구 신설 등 대대적인 금융감독체계 개편으로 이어지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내년 정부조직개편과 연계해 진행될 예정인데, 어떤 모델로 조직이 개편되든 금융위의 권한은 지금보다 쪼그라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금융위원회를 해체하는 수준까지의 방안은 아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혁신위는 금융권 인사에 대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금융지주사의 제왕적 CEO 권한 구조를 문제삼았다. 그러면서 금융사의 근로자추천이사제 도입과 지배구조 개선 등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금융공기업 기관장에 대해 선임과정의 투명성과 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절차 등을 합리적으로 개선하라고 지적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해 금융지주회사 회장 자격요건을 명문화해 부당한 낙하산을 견제할 수 있도록 하고, 셀프 연임을 견제하기 위해 임원(후보)추천위원회 구성을 다양화하도록 했다.
 
특히,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근로자추천이사제도를 금융공기업에 우선 도입하고 민간금융사도 적극 검토해야한다고 권고했다.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이 사실상 노동이사제 도입으로 결론을 지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케이뱅크 등 인터넷은행 인가 과정에 대한 언급도 있었는데, 혁신위는 "인터넷은행을 위한 은산분리 완화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석헌 혁신위원장은 "인가 과정에서 특혜 논란을 얻은 케이뱅크의 경우 은산분리 완화 등에 기대지 말고 자체적으로 국민이 납득할 만한 발전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혁신위는 은산분리 완화에 대해 금융발전의 필요 조건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윤 위원장은 "자본금 부족 문제 등 우려가 해소되지않고 있으나 출범 이후 고객의 편의성 제고, 기술기반 서비스 대중화 등으로 당초 예상보다 높은 호응을 받았다"며 "케이뱅크가 은산분리 완화 없이도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국민들이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위는 아울러 은행권과 증권업권이 신경전을 벌인 초대형 IB에 대해 건전성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용공여 대상을 IB의 고유업무나 신생·혁신 기업으로 제한하고, 건전성을 은행에 준하는 수준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혁신위의 권고안에 대해 업권에서는 '금융 혁신'이 빠진 규제 일변도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신용공여 대상을 신생기업으로 제한해놓고 건전성은 은행과 같은 수준으로 강화한다는 것은 사업을 하지 말라는 의미"라며 "혁신위가 대형 IB가 정상적인 발전 모습을 보일 때까지라는 전제를 뒀지만 은행 수준의 건전성 규제를 두는 것도 지나치다"고 말했다.
 
은산분리 완화 반대 권고의 경우에도 인터넷은행들은 입장 밝히길 꺼리는 분위기지만, 은산분리 완화를 기대했던 케이뱅크는 상당히 상당히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인터넷은행 관계자는 "경영상 의사 판단이나 사업 추진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동이사제 도입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혁신위가 사례로 들었듯이 외국 금융사에서는 성공 사례가 있겠지만, 우리나라와 외국은 금융지주사 지분 구조나 노조의 성향 등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채희율 경기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혁신위가 짧은 시간 내에 결론 내려다 보니 노동이사제 등 논란이 있고 깊은 논의가 필요한 정책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것 같다"며 "건설적인 방안이 나와야 하는데 이번 권고안이 금융 혁신을 위한 의견이 나왔는지는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종용·양진영 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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