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진영 기자]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자금이 거래소 대표이사와 임원명의의 계좌로 이체된 것으로 밝혀졌다. 많게는 500억원 넘는 규모로 이 과정에서 사기·횡령·자금세탁 등 범죄행위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위원회는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상통화 취급업소 현장조사 결과 및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금융위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금융감독원은 가상화폐와 관련된 금융거래에 대한 은행들의 자금세탁방지 의무 이행 여부를 점검을 목적으로 지난 8일부터 16일까지 집중점검을 실시했다.
농협은행, 기업은행, 신한은행, 국민은행, 우리은행, 산업은행 등 6개 은행이 대상에 올랐다.
점검 결과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은행에 개설된 일반 법인계좌를 통해 이용자의 자금을 모은 뒤 그 일부 금액을 가상화폐 거래소 대표자나 임원 명의의 계좌로 이체하는 소위 벌집 계좌들이 적발됐다.
가상화폐 거래소 A사는 5개 은행의 계좌를 통해 이용자의 자금 109억원을 모은 뒤 A사 명의의 한 계좌로 자금을 집중시켰다. 이 109억원 중 42억원은 대표자 명의의 계좌로 입금됐으며 33억원은 사내이사 명의의 계좌로 이체했다.
또 거래소 B사는 4개의 일반계좌를 통해 모은 586억원을 사내이사 명의의 은행 계좌에 집중시켰다. 이중 576억원은 가상화폐 거래소 C사 명의의 은행 3곳에 376억원, 200억원, 10억원씩 각각 나눠 이체했다.
일반 법인계좌를 통해 자금을 모을 경우 가상화폐 거래소 법인과 대표자간 금융 거래에서 사기, 횡령, 유사수신 행위 등이 발생할 수 있다. 금융회사 측면에서도 입출금 등 금융거래에 대한 분석이 어려워 의심거래 여부 판단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이 외에도 은행들은 가상화폐 거래와 관련한 내부통제 및 위험평가가 미흡하다고 지적받았다.
자금세탁방지업무를 총괄하는 부서와 가상화폐 담당 부서간 역할 및 책임이 불분명한가 하면 거액이 오가는 가상화폐 관련 금융거래를 자금세탁위험 평가상에서 ‘고위험’으로 분류하지 않기도 했다.
특히 가상화폐 거래소 대상 가상계좌 발급 과정에서 적절한 승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경우도 확인됐으며 은행이 거래소간에 가상계좌를 사고 파는 행위를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오는 30일부터 시행되는 ‘가상통화 관련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을 함께 발표했다.
가상화폐 취급업소에 대해 높은 수준의 주의의무를 이행하고 가상화폐 관련 자금세탁 의심거래를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이사회 및 최고경영진에 자금세탁방지 관련 의무를 부여하고 교육·감사를 실시하도록 했다.
금융당국은 FIU와 금감원 합동 상시점검팀을 설치하고 은행권의 가이드라인 이행상황을 따져 위반시 엄중 조치한다는 방침이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번 대책으로 가상통화 거래가 범죄나 자금세탁·탈세 등의 불법행위에 활용될 여지가 축소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특히 자금세탁에 악용될 위험이 큰 가상통화 취급업소를 사실상 퇴출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이 가상통화 투기근절을 위한 특별대책 중 금융부문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 훈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 최성일 금감원 부원장보,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 정완규 금융정보분석원장, 김홍식 금융정보분석원 기획행정실장. 사진/금융위원회
양진영 기자 camp@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