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지윤 기자] 세계 석유시장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중동 산유국들이 미국과 중국에 이어 '제3의 에틸렌 생산기지'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발 셰일혁명으로 고유가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석유화학산업 육성을 통해 석유 중심 경제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으로 분석된다. 특히 중동 산유국들은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 기반의 범용 석유화학제품 생산에 집중하고 있어 향후 세계 시장의 주요 공급처로 도약할 전망이다.
6일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지난 2016년 중동지역 에틸렌 생산능력은 3400만톤으로, 세계 생산능력의 20%를 차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세계 1위 원유 생산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1700만톤으로 최대 규모를 기록했고, 이어 이란(730만톤), 아랍에미레이트(350만톤), 카타르(260만톤), 쿠웨이트(170만톤) 순이었다.
중동 산유국들이 석유산업을 넘어 석유화학 산업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은 석유 중심 경제구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일종의 몸부림이다. 중동 산유국들은 2012년 미국발 셰일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들만의 카르텔을 통해 고유가로 몰고갔다. 하지만 강력한 경쟁상대인 셰일가스·오일의 등장으로 오일달러로 가득했던 곳간이 비어가고 있다. 석유화학 산업은 석유 수출 의존도를 낮추는 동시에 고용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인 셈이다.
중동 산유국은 석유화학 사업을 펼치기에 유리한 환경으로 평가받는다. 석유화학의 원재료인 원유를 생산하고 있어 원료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또 유럽과 미국, 일본, 한국 등 해외 기업과 합작사를 설립해 부족한 기술력을 보완하고, 선진기술을 도입하는 점 역시 경쟁력으로 꼽힌다.
이런 노력의 결과 중동은 에탄분해시설(ECC)에서 생산한 에틸렌을 이용해 폴리에틸렌(PE)과 에틸렌글리콜(ER) 등 범용 석유화학제품을 아시아 지역으로 수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중동지역이 미국과 중국에 이은 석유화학 제품 생산거점으로 자리매김 할 것으로 전망한다.
중동산 석유의존도가 높은 국내 정유업계 역시 본업인 석유사업보다 석유화학 사업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정유사들이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낼 수 있었던 비결도 석유화학 산업을 꾸준히 키워온 덕이다.
실제로 지난해 실적을 발표한 SK이노베이션과 S-Oil은 연간 영업이익 중 석유화학사업이 42%, 23%를 각각 차지했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도 비정유 사업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어 앞으로 국내 정유 4사 실적에서 석유화학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국, 중동지역과 기술격차가 크지 않은 범용제품에 치우쳐 있어 고부가가치 제품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잔사유 고도화 콤플렉스등 설비 구축에 4조8000억원을 투자한 S-Oil의 경우 원유를 정제하고 남은 부산물인 잔사유의 활용도를 높인 것일 뿐, 제품 자체를 고부가화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SK이노베이션 역시 다우케미칼의 포장재사업을 인수했지만, 석유화학사업의 주력은 여전히 범용제품이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고부가가치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일은 벼락치기로 성공할 수 없다"며 "국내 정유사들이 그간 중국 시장만 보고 범용 석유화학품의 생산능력을 늘려왔다면 이제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신사업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지윤 기자 galile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