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광표 기자] 신동빈 회장의 승리로 마침표를 찍는듯 했던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다시 안갯속에 빠졌다. 신 회장이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수감되자 기다렸다는 듯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반격의 포문을 열고 나선 것이다.
신 전 부회장은 그동안 줄기차게 경영권 탈환을 시도해왔지만 번번히 동생의 막강한 지배력 앞에 무릎을 꿇었고 최근엔 대중의 관심에서도 멀어졌다. 그러나 신 회장이 법정구속되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되면서 경영권 분쟁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재계 안팎에선 그가 롯데의 경영권 탈환을 위해 필사적인 반격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신동빈 회장이 구속수감된 다음날인 14일, 신 전 부회장은 동생의 사임·해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롯데 경영권 정상화를 요구하는 모임' 홈페이지에 '신동빈씨에 대한 유죄 판결과 징역형의 집행에 대해'라는 제목의 자료를 냈다. 이 글을 통해 "한·일 롯데그룹 대표자 지위에 있는 사람이 횡령·배임·뇌물 등 범죄 행위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되는 것은 롯데그룹 역사상 전대미문의 일"이라며 신동빈 회장의 즉시 사임과 해임을 주장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신 전 부회장은 오는 6월로 예정된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물밑작업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전 부회장측 관계자는 "설 연휴가 끝난 뒤 구체적 움직임에 나설 것"이라며 "신 회장의 해임 결의를 위해 6월 정기주총 이전 임시주총이나 이사회를 소집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신 전 부회장은 2015년 1월 열렸던 일본 롯데홀딩스 임시주총에서 신 회장 측에 의해 이사직에서 해임되면서 롯데그룹 경영권에서 밀려난 바 있다. 그 이후에도 반격을 계속했고 2015년 8월, 2016년 3월과 6월, 2017년 6월 등 4차례나 걸쳐 주총 표 대결을 벌였지만 신 회장에게 잇따라 패하면서 사실상 경영권 분쟁에서 완패로 끝나는 듯 했다.
그동안 신 회장은 검찰 수사와 기소, 재판 등 거듭된 위기에도 경영권만큼은 '철벽방어'에 성공했지만 이번만은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 특히 롯데 지배구조의 한 축인 일본에서는 벌써부터 신 회장에게 불안한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일각에선 일본 롯데홀딩스가 조만간 이사회나 주주총회 등을 소집해 실형을 선고받은 신 회장의 대표이사직 유지 문제를 논의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 경우 신 전 부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의 단일 최대주주인 광윤사 대표 자격으로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복귀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 롯데의 지주사인 일본 롯데홀딩스는 광윤사(28.1%), 종업원지주회(27.8%), 관계사(20.1%), 임원지주회(6%) 등이 주요 주주다. 신 전 부회장은 광윤사의 지분 50%+1주를 보유한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로, 반격의 카드를 쥐고 있는 셈이다.
최근 일본에서 벌어진 광윤사 관련 소송에서 신 회장이 패한 것도 불안 요소다. 광윤사는 경영권 분쟁이 한창이던 2015년 10월14일 임시 주총과 이사회를 열어 신동빈 회장을 등기이사에서 해임하고, 신동주 회장을 신격호 총괄회장을 대신할 새 대표로 선임했다. 이에 대해 신 회장은 "당시 주총 결의는 서면으로 제출된 신 총괄회장 의사에 따른 것이지만 신 총괄회장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어 효력이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최근 일본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니혼게이자이 등 일본 언론들도 신 회장의 실형 선고와 관련해 '사령탑 부재로 장기 전략에 어두운 그림자', '롯데 일본 상장에 먹구름, 기업 이미지 훼손 우려' 등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이에 대해 롯데 관계자는 "광윤사를 제외한 종업원지주회와 관계사 임원지주회 등 일본 롯데홀딩스 주요 경영진이 신 회장을 지지해 큰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계 관계자는 "경영진의 비리에 대해 엄격한 일본에서는 회사 경영진이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으면 책임을 지고 이사직에서 사임하는 것이 일반적 관례여서 신 회장의 대표이사직 해임을 결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롯데가 황각규 부회장 중심의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했지만 일본 내 지지세력 설득작업은 신 회장이 직접 해왔던만큼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과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 사진/뉴시스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