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이끄는 ‘대북 특별사절대표단’(특사단)이 평양에 도착한 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찬이 진행된 것을 놓고 북측의 남북관계 개선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필수조건인 북미대화 분위기 조성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청와대에 따르면 방북 특사단은 평양 순안공항 도착 직후인 오후 3시40분부터 15분간 방북 일정을 놓고 북측과 합의를 진행한 후 오후 6시부터 김정은 위원장을 접견해 만찬을 함께 했다. 지금까지의 북한의 행태에 비춰볼 때 이례적인 환대라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은 그간 경호상의 이유를 들어 최고지도자의 일정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아왔으며 면담이 잡히더라도 정확한 시간을 막판에 공지하거나 협의 과정에서 면담이 불발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2003년 1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북했던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지 못한 채 귀환했다.
우리측 대표단은 이같은 분위기를 북미대화 분위기 조성으로까지 이어가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정 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김상균 국정원 2차장,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등으로 구성된 특사단의 방북 의제를 두고 청와대는 ‘북미대화 여건 조성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 교류협력 활성화를 출발점으로 하는 남북관계 개선’으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비핵화를 전제로 한 북미대화에 응하겠다는 답을 얻어낼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날 <tbs>라디오에서 특사단 면면을 놓고 “북미대화에서 시작해서 남북정상회담으로 건너가자는 구도가 드러나 있다”고 설명했다. 정 실장이 특사단 수석특사를 맡은 것을 두고는 “미국과 그동안 얘기를 많이 해왔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가서 직접 김 위원장에게 미국의 여러 정책과 속내를 얘기해줘야 김 위원장도 입장을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당장은 ‘비핵화 논의없는 북한과의 대화는 불가능하다’는 미국과 ‘핵 보유는 자주권 영역’이라는 북한의 입장을 중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북한은 이날 노동신문 기명 논평에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최근 대북 독자제재 대상 56개를 추가한 사실을 거론하며 “주권국가의 정당한 대외 무역활동을 차단하기 위한 날강도적인 전횡으로서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과 존엄을 유린하는 악랄한 도발행위”라고 지적했다.
북미대화를 바라보는 미국 측 고위관료들의 반응도 차갑다. 미 국무부 관계자는 이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는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워싱턴 주재 언론인 만찬에서 “김정은과의 직접 대화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어느 정도의 진정성이 담겼는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 측 특사단 일행을 맞은 김 위원장이 어떠한 답을 내놓는 지 주목된다. 정 실장은 출국 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한반도 비핵화와 진정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만들고자 하는 문 대통령의 확고한 뜻과 의지를 분명히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쾨르버 연설’을 통해 밝힌 “북한이 도발을 멈추고 비핵화 의지를 보여준다면,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받을 수 있도록 앞장서서 돕겠다”는 구상에 대한 반응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미국 측도 특사단 방북 결과에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북한이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진솔한 대화에 임할 것을 촉구하는 바”라며 “우리 정부는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고, 북한의 비핵화 로드맵을 그려나가기 위해 미국과 긴밀히 공조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특사단 일행 중 정 실장과 서 원장은 귀국 직후 방미 길에 오를 예정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형성된 남북대화 국면을 이어가는 추가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겨레말큰사전 사업과 같은 비정치 분야에서의 교류나 남북 최고지도자 간 핫라인 구축까지 논의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이끄는 대북 특사단(오른쪽)이 5일 평양 도착 후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왼쪽 첫 번째) 등 북측 인사들과 일정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