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상윤 기자]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에서 구조조정 모범 사례라고 치켜세웠던 한진중공업도 적자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당시 금융당국은 "한진중공업의 자율협약 사례가 앞으로 이뤄질 조선업 구조조정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필리핀 수빅조선소가 수익성의 발목을 잡으며 건설 등에서 번 돈을 조선사업에 메꾸는 데 급급한 실정이다.
한진중공업은 지난해 연결기준 잠정 매출액 2조4475억원, 영업손실 110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매출액은 13.0% 줄었고, 영업손실은 39.1% 확대됐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2013년 69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한 이래 5년째 흑자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조선업황 침체에 지난 2015년 부채비율이 388.5%를 기록하며 경영이 악화됐다. 결국 이듬해 5월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체결했다. 채권단은 2500억원의 신규 자금을 지원했고, 2000억원의 보증지원도 했다. 한진중공업은 2조원대 자산 매각을 골자로 한 자구계획을 이행키로 했다. 또 조선사업은 영도조선소를 특수선(방산), 필리핀 수빅조선소를 상선 중심의 투트랙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한진중공업 경영실적. 제작/뉴스토마토
그러나 한진중공업의 경영정상화는 요원해 보인다. 지난해 부채비율은 자율협약 이전보다 높은 628.6%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업계 일각에서는 한진중공업의 유동성 위기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순차입금 규모가 연간 매출액과 맞먹는 3조원대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선박수주 환경도 녹록지 않다. 지난해 말 기준 영도조선소는 수주잔량이 27척, 수빅조선소의 수주잔량은 18척에 그친다. 영도조선소는 방산 물량을 수주하는 만큼 일정 수준의 영업이익이 보장된다. 반면, 수빅조선소는 연간 40척이 넘는 선박을 건조할 수 있지만, 일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수빅조선소는 지난 3분기 기준 1485억원의 분기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진중공업은 필리핀법인에 잇따라 자금 지원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진중공업은 지난해 12월 1125억원을 출자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같은 해 3월에는 2464억원을 출자전환한 데 이어 6월(569억원)과 9월(791억원) 등 지난해에만 50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이 지원됐다. 수빅조선소 등의 운영자금 부족 해소와 유동성 확보 차원이라는 게 한진중공업의 설명이다.
문제는 건설사업에서 번 돈을 조선사업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향후 건설사업이 수주 부진으로 어려움에 처할 경우 동반부실에 빠질 수 있는 위험한 구조다. 자산매각을 통해 유동성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선사업 경쟁력을 점검하고 사업을 다시 가다듬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비건설부문만 봤을 때 한진중공업의 구조조정 효과는 크지 않다"며 "특히, 필리핀 수빅조선소는 경영 개선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오히려 계속 한국에서 돈을 지원하는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올해 조선업황이 회복되고 있는 만큼 인건비 등이 상대적으로 낮은 수빅조선소가 상선 수주에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며 "자율협약 당시 맺었던 2조원 규모의 자산 매각을 마무리 지어 자금을 확보할 것"이라고 했다.
신상윤 기자 newm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