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울려퍼진 #미투·#위드유

2018분 릴레이 발언…고발·연대 이어져

입력 : 2018-03-22 오후 2:55:19
[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어렸을 때부터 다녔던 교회에는 어린이가 놀 수 있는 작은 골방이 있었다. 7세 내지 초등학교 1학년 때쯤 확실한 골방에서의 기억이 있다.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키가 큰 중학생 오빠가 재밌는 놀이를 하자며 내 팬티 속에 손을 넣고 입 속에 혀를 넣었다.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그 오빠는 나보다 1살쯤 많은 다른 오빠에게도 나한테 입을 맞추라고 시켰다. 그리고 그걸 보며 자위를 했다. xxx야. 십수년 전 그 경험 때문에 아직도 제대로 된 이성관계를 못하고 있다. 유병장수하길 바란다.”
 
성희롱·성폭력·성차별 경험을 폭로하는 미투, 그리고 피해자와의 연대인 #위드유가 광장으로 나왔다.
 
340여개의 여성·노동·시민단체와 미투운동을 지지하는 400여명의 개인이 출범시킨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22일 오전 9시22분부터 23일 저녁 7시까지 청계광장에서 2018분 동안 이어말하기, 대자보 광장 등을 진행하고 있다.
 
행사의 처음 시작은 성폭력 피해자와의 연대를 상징하는 끈 잇기였다. 참가자 34명은 9시22분부터 검은 끈을 들고 차례로 매듭을 지어 매듭 34개를 만들었다. 2018분이 약 34시간에 해당한다는 점에 착안한 퍼포먼스였다. 참가자들이 끈을 매는 동안 새 시대의 민중가요로 해석되고 있는 ‘다시 만난 세계’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광장에서 여성들은 각자가 경험한 성희롱·성폭력·성차별 경험을 직접 말하거나 대독을 통했다. 자신을 ‘꽃마리’라고 밝힌 첫 발언자는 모르는 아저씨, 성당 수사, 아버지 직장 동료, 담임선생, 남자친구로부터 성추행 당하거나 겁탈당할 뻔한 이야기를 하며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일본군 성노예제 역사를 연구하는 머리 하얀 여성은 “위안부에 대한 인식이 현재 성폭력에 대한 인식과는 연결이 잘 되지 않아 안타깝다”며 어느 남성 위안부 연구가가 연애라는 이름으로 성폭력을 저지르고 결혼을 한 뒤 이혼한 사례를 고발했다.
 
국방부 관련 연구소 출신이라고 밝힌 1950년대생 여성은 6세에 당한 성추행, 논문 지도를 한다며 자신의 집으로 부른 후 성관계 제안을 암시한 교수, 회식 자리에서 ‘여자가 술을 따라야 한다’며 자신의 옆자리로 앉을 것을 요구한 ‘투스타’ 등 경험들을 이야기하며 “남성이 대화법을 몰라 여성에게 ‘펜스’를 치는 게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 인정하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나가다가 행사를 접하고 이어말하기에 합류한 사람도 있었다. 광화문에서 야외 수업을 끝낸 대학생 A씨는 “어렸을 때 성추행을 당해 어머니가 알게 됐지만, 어머니는 그 일을 잊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며 “이 자리 이전에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지만 머릿속에서는 지울 수 없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발언 내내 청중은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하거나 박수와 환호성으로 격려했다.
 
22일 오전 한 여성이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2018분의 이어말하기’에 참여해 문화예술계에서의 성폭력과 성차별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사진/신태현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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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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