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포스텍은 가치창출 대학…지식가치가 산업가치로"

" 사회·경제적 가치 창출에 매진…4세대 방사광 가속기로 글로벌 제약시장에도 도전"
"취임 3년…'개방을 통한 혁신'이 포스텍의 갈 길"

입력 : 2018-04-02 오후 2:45:10
한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롯데월드타워다. 지상 123층, 높이 555m 규모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가장 긴 건물은 무엇일까. 포항 포스텍(옛 포항공대)에 있는 '제4세대 방사광 가속기'다. 길이가 1.1㎞ 규모로, 건물 한쪽 끝에서 맞은편 끝이 보이질 않는다. 창립 50년을 맞은 포스코는 최근 포스텍의 제4세대 방사광 가속기와 연구 인력을 연계한 바이오산업 진출을 선언했다.
 
포스텍은 지난 1986년 포스코 창립자 고 박태준 명예회장이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했다. 이와 관련해 재미난 일화가 하나 있다. 박 회장이 포항제철(포스코의 옛 명칭)에 들어온 보험회사 리베이트 6000만원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달하려고 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이 다시 돌려주며 마음대로 사용하라고 했다는 것. 박 회장은 이 돈으로 제철장학회를 설립했고, 효자제철유지원을 시작으로 초·중·고에 이어 연구중심 대학 포스텍을 설립하게 된다. 연구중심 대학을 선언한 포스텍은 지난해 영국 <더 타임즈>가 발표한 세계 소규모 대학 평가에서 유수의 대학들을 제치고 세계 3위를 차지했다. 지난달 30일 본지는 포항 포스텍에서 김도연 총장을 만나 포스코 등 산업계와의 사회·경제적 가치 창출에 대한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포스코와 어떤 방식으로 협력하나.
제약시장은 글로벌 시장 규모가 1200조원에 달한다. 자동차(1000조원)나 반도체(400조원), 조선(100조원) 등보다도 크다. 그러나 한국은 글로벌 제약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을 1%도 차지하지 못한 미개척 분야다. 포스코는 최근 제약 관련 인재 영입에 주력하고 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도 제약 등 바이오산업에 진출할 것을 공식 발표했다. 포스텍의 제4세대 방사광 가속기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와 더불어 포스텍의 우수한 연구 인력들이 낸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포스코의 제약 분야 산업화 전략이 융합해, 제약시장에서 성공하는 산학협력을 이뤄내겠다.
 
제4세대 방사광 가속기는 어떤 역할을 하나.
많은 병의 원인은 단백질의 형태와 관련이 있다. 제4세대 방사광 가속기는 단백질의 온전한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연구시설이다. 특히, 외부 침입 병원균과 다양한 유전병 등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들은 관련된 단백질에 대한 정확한 구조 정보가 필요하다. 자물쇠를 여는데 그 자물쇠 내부구조를 알아야 꼭 맞는 열쇠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정확한 단백질 구조정보는 생명과 질병 치료에 직결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알려진 단백질의 5% 정도만 정확한 구조를 아는 데 그친다. 여기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줄 수 있는 것이 제4세대 방사광 가속기다. 제3세대 방사광 가속기로는 구조 해석이 불가능한 단백질에 대해서도 해석이 가능할 뿐 아니라 주변 환경과의 반응도 실시간 연구가 가능하다. 세포 속에서 작동하는 구조체들의 3차원 영상도 원리적으로 산출 가능해 신약 개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포스코를 비롯해 산업계와의 산학협력은 어떤 방식으로 추진하나.
포스텍이 확보한 인력을 활용해 고유의 창업 생태계를 조성할 계획이다. 우선 구성원들의 벤처 육성을 위한 1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다. 이 자금은 연구 인력들의 활발한 창업 환경을 조성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포스코를 비롯해 LG디스플레이와 효성, 삼성SDI, LG화학 등과 산학일체 연구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포스텍은 필요한 연구를 수행하고, 기업은 미래지향적 연구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바탕으로 지식 가치가 산업 가치로 이어질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 아울러 포스텍 동문기업 협의체인 APGC(Association of POSTECH Grown Companies)를 중심으로 실습과 창업, 보육 프로그램이 연계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 학생들은 기업가 정신을 함양하고, 창업을 위한 교육과 멘토링, 경영 자문 등 다양한 지원책을 받을 수 있다.
 
김도연 포스텍 총장. 사진/포스텍
 
포스텍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올해로 취임 3년을 맞았다. 총장 취임 당시 '개방을 통한 혁신'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국내 대학사회에 제시하고, 선두주자 역할을 수행할 것을 강조했다. 지난 30년간 국내 최초의 연구중심 대학으로 한국 사회에 영향을 준 포스텍의 미래를 준비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치창출 대학'이란 새로운 지향점을 제시했다. 이는 대학이 얻는 연구 성과와 지식을 창업과 창직(직업을 만드는 일)으로 연계해 사회·경제적 발전에 직접 기여해야 한다는 취지다. 인재 가치와 지식 가치, 사회·경제적 가치를 중점 추진 과제로 삼아 혁신적인 대학교육과 연구정책을 모색하고 있다.
 
포스텍의 교육 목표는 지혜와 지식을 갖춘 포스테키안(포스텍 구성원을 아우르는 총칭)을 양성하는 데 있다. 특히,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인재 양성이 목표다. 그동안의 대학은 교육과 연구에 그친다는 한계가 많았다. 이제는 창업과 창직 등 사회·경제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포스텍의 교육 목표인 가치창출 대학의 대표적인 예가 지난 1999년 창업해 자산가치가 2조원대에 이르는 신약 개발회사 '제넥신'이다. 포스텍에서 연구하던 성영철 교수가 창업해 사회·경제적 가치를 창출한 사례다. 포스텍은 제넥신과 같은 회사 10개를 만들어 보자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포스텍의 교육 철학은.
대학의 최우선 사명은 미래 세대를 교육한다는 철학이 바탕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 교원 채용부터 입시제도와 학부교육, 학과구조 개편 등 여러 방면에서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단일 계열의 '무학과' 선발 제도가 대표적인 예다. 지식이 산업으로 이어지려면 대학이 잘 하는 연구인력을 활용해 미래 먹거리를 제시하며, 사회적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탁월한 연구 성과들은 한층 더 발전시켜 새로운 지식 창출은 물론, 직접적으로 지역과 국가의 사회·경제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무학과 제도에 대해 설명해 달라.
21세기는 융합의 시대다. 이제 대학은 지식만 가르쳐선 안 된다. 지혜를 가르쳐야 한다. 지혜는 경험의 산물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졸업 후 60년에서 길게는 70년까지 이어지는 사회·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게 해야 한다. 무학과 제도는 여기서 출발했다. 신입생 전원을 단일 계열로 선발하게 되면 학생들이 전공 선택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학생들이 공부하고 싶은 학과를 선택하고, 교수 및 선배들과 교류하면서 자기 주도적인 학습 동기를 얻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어떠한 제한 요소도 없다. 예를 들어 기계과를 다니다가 수학과로 교육 과정을 변경하는 등 학생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학습하게 된다. 학과 역시 학생들에게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력을 높이는 데 힘을 쓸 것이다. 이를 통해 학교도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발전하리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4월 '효성-포스텍 산학일체연구센터' 개소식에 참석한 김도연 포스텍 총장(왼쪽에서 여섯 번째). 사진/포스텍
 
학생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과거에는 하나만 잘 하면 성공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다양한 분야에서 잘 해야 성공할 수 있다. 충분한 사회 경험을 쌓아야 한다. 포스텍은 여름방학을 3개월로 확대했다. 인턴십과 해외프로그램, 봉사활동 등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고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다. SES(Summer Experience in Society) 인턴십 프로그램 참여도 장려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산업체와 연구소, 벤처기업 등 200여개 기관에서 사회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2016년 275명이 활동했으며, 지난해에는 528명이 참여했다.
 
또 온라인공개강좌(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를 통해 취득한 학점을 국내 대학 최초로 인정하고 있다. 학생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주도적으로 지식을 쌓는 습관을 기를 수 있는 혁신적인 교육방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포스텍 학생들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가치창출 대학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아울러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해 학교가 할 수 있는 것은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다. 학생들이 하고 싶은 일에 다양하게 도전하고, 경험하면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학교의 일이다. 무학과 제도를 도입한 것도 이와 맞물린다. 학생들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문화와 지식이 활발하게 오가는 속에서 학교와 사회의 발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활발한 도전을 기대한다.
 
신상윤 기자 newm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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